한국전쟁 중인 1953년 2월 25일자, 서울에 있던 아내가 대구시 봉산동 203-25번지(나의 하숙 주소)로 보낸 편지
이월 십오일부(二月 十五日付) 뜻깊은 서간(書簡)은 몇 번이고 다시 배견(拜見)하였습니다.
근면(勤勉)하신 일일(日日)을 보내시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자랑스러운 감(感)을 느꼈습니다.
우리들의 장래(將來)에 대(對)한 견해(見解)가 늘 최선(最善)만을 바라보고 기대(期待)하였던 까닭에 실망(失望)이 컸다는 말씀도 잘 알겠습니다. 지금(至今)의 저의 심리 상태(心理 狀態)는 잔잔한 바다와도 같이 고요하며 아무 불만 불평(不滿 不平)도 없습니다. 단지 현실(現實)에 순응(順應)할 따름입니다.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산다고 해서 최악(最惡)의 경우(境遇)가 다다를 때 당황하게 된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당신(當身)이 말씀하신 것같이 새옹득실(塞翁得失)이라 시일(時日)이 문제(問題)이지, 좋은 상태(狀態)가 올 것을 믿고 싶고, 또 믿어요. 당신(當身)이 이 세상(世上)을 올바르게 사시고, 또한 제가 올바르게 사는데 신(神)께서 최악(最惡)을 선물(膳物)로 지시지야 않겠지요.
요전 일요일(日曜日) 21일(二十一日) 정릉리(貞陵里)에 갔었습니다. 큰댁 형님도 가 뵙고 우리집에도 가 보았습니다. 우리가 가서 살게 되면 하수도(下水道)도 고쳐야겠고, 판장도 다시 해야겠고(지붕 챙이 없어졌더군요), 가구(家具)도 고쳐야겠고, 돈이 좀 들 것 같습니다.
세훈(世勳)이 일로 아주버니가 또 상경(上京)하셔서 뵈었습니다. 원서(願書)를 가지러 오셨다고 찾아오셨더군요. 땅을 팔아서 집을 한 채 서울에 살까 하신다구요.
당신(當身)의 소식(消息)을 기다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이곳은 여전(如前)합니다. 세화(世華)도 잘 있습니다.) 안녕(安寧)히 계십시오.
(오늘 월급(月給) 탔습니다. 개학(開學) 때 삼일(三日) 늦어서 제(除)하고 만육천(万六仟)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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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의 이화여대 졸업 사진 / 둘째 줄 맨 오른쪽이 아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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