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는 우리보다 앞서 북한이 총영사관을 설치하고 자리 잡고 있어서 코리아(Korea)하면 으레 북한으로 알고 모든 우편물이 북한 영사관으로 배달되는 형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을 시정하는 것이 급한 일이었으므로 우편국과 주요 관청, 단체, 회사 및 외교 기관에 한국 총영사관의 개설을 통지하고 카이로 시장과 우방국 대사를 예방하였다.
독일 대사를 예방하였을 때 독일 대사는 라디오를 크게 틀며 말하기를, 이 나라는 도청(盜聽) 기술이 발달하여 우리의 대화를 10여 미터 밖에서도 도청 녹음하니까 이를 방해하기 위해서는 라디오를 가동시키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우편물이 북한 쪽으로 가는 대신 간혹 북한 쪽으로 갈 우편물이 우리 쪽으로 배달되는 일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그쪽으로 돌려보내주기로 하였다. 재외 공관에서 가장 중요한 우편물은 파우치이다. 파우치가 북한 쪽으로 가면 안 되므로 반드시 이부영사가 카이로 공항에 나가서 이를 직접 받아왔다.
나세르 치하의 애급은 모든 일이 권위주의적이었다. 은행에 구좌를 여는 일도 은행장에게 구좌 개설을 허가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해야했다. 나는 이 신청서 양식을 찢어 버리고 공문서를 보내어 은행장에게 귀 은행에 총영사관 구좌를 개설코자 하니 협조 바란다고 통고하였다.
공관을 물색하기 위하여 이 부영사와 함께 카이로시를 돌아다녔다. 외교 공관들은 카이로 구시가에서 떨어진 나일(Nile)강 건너편의 자말릭(Zamalic) 지구에 많이 몰려 있었는데 북한 총영사관도 이 지구에서 2층 벽돌집을 빌려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구는 웬만한 집은 이미 다 임대되어 적당한 집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총영사관과 너무 가까이 있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어 우리는 다른 지역을 두루 찾아 다녔다.
기자(Giza)와 도끼(Dokki) 지역도 외국 공관이 산재해 있는 지구인데 우리는 기자에서 나일강을 면접한 위치에 있는 좋은 집을 발견하였다. 2층집에 넓은 정원이 딸려 있고 근처에 애급 외무성과 터키 대사관이 있어서 모든 면에서 매우 적당하였다. 유명한 안과 의사의 미망인이 집주인이었는데 내 생각에는 매수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우선 임차하는 것으로 교섭하여 본부의 허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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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로 총영사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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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급에서 자동차를 사는 것은 관청의 허가와 주문 및 수송 등으로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으므로 나와 이부영사가 가지고 간 자동차를 공사(公私)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본부로부터 재정, 기타 지원이 신속히 시행되지 않아 많은 곤란을 겪었다. 한번은 월말이 되어 비서, 운전기사, 정원사 등 고용원의 봉급을 지불해야 하는데 송금이 오지 않아 은행 구좌에 돈이 없었다.
서방 국가의 은행과 달라 대부를 받거나 일시 차용할 수도 없어 한국 공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본부에 긴급 전문을 보내 어느 어느 날까지 전보 송금을 하지 않으면 부득이 총영사관을 임시 폐쇄하겠다고 통고하였다. 기대한 대로 그 기일 내에 송금이 접수되었다.
1962년 11월 10일부터 12월 24일까지 아프리카 10개국(에티오피아, 케냐, 로데시아(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 콩고 킨샤사(현재는 자이르), 콩고 브라자빌, 나이지리아, 가나, 라이베리아 및 모로코)을 통상조사단장의 자격으로 순방하였다.
본부의 이종한(李鍾漢) 사무관과 조선견직의 김영구(金榮球) 사장이 수행하였다. 당시 한국은 제1차 경제5개년계획의 초기로서 아직 이렇다 할 상품은 없고 다만 의류, 신발 등 섬유 제품이 수출 상품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니 그들에게 고무신을 신기면 상당한 고무신 시장이 개척될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하였다. 10개국 순방을 통하여 아프리카의 자연과 인중, 문화와 사회 및 정치, 경제를 주마간산 격이나마 대개 파악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