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에서는 상업도시 요하네스버그(Johannesberg)와 수도인 프리토리아(Pretoria)를 방문하였는데, 그곳을 돌아보면서 인종 차별의 실상을 목격, 체험하면서 난치(難治)의 중병에 걸린 나라임을 직감하였다.
남아공화국의 백인은 대체로 화란인 후예인 아프리카너(Africaner)와 영국인 후예의 두 부류가 있는데 전자의 인종 차별 의식이 더욱 강렬하다고 하였다. 우리 사절단을 안내하고 돌보아준 사람은 아파테이트(Apatheid) 정책의 무리함은 인정하였으나 실제에 있어서 이 문제의 해결이 매우 어려움을 개탄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절망 섞인 호소를 하였다.
요하네스버그에서 하루는 우리 일행이 점심 때 중국음식점에 가기를 희망하였으나 안내자는 못들은 척 이를 피하고 호텔 레스토랑으로 안내하였다. 아마도 우리가 인종차별의 불유쾌한 일을 당할까봐 일부러 그렇게 한 모양이었다.
저녁에 상공회의소 주최 만찬에서 상공회의소장은 한국전쟁 시 남아프리카 공군이 참전하여 공산군을 격퇴하는 등 두 나라가 혈맹 관계임을 강조하였다. 만찬이 끝난 후 호텔 방에 돌아와 약 30분쯤 후, 동행자 두 사람과 함께 밤거리 구경을 나가려고 복도를 걸어 나가는데 그때 복도 끝에 있는 방의 문이 열리며 안내자가 나와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저녁산보 좀 하러 나간다고 하니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우리를 어느 바(bar)로 안내했는데, 그가 먼저 들어가 정부의 손님인 동양인을 데리고 올 터이니 양해해 달라고 사전 교섭을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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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상 조사 차 아프리카 순방 중에 / 오른쪽은 본부의 이종한 사무관, 그 다음은 조선견직 김영구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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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실업인들과의 상담에서 나는 그들이 한국을 섬유산업의 경쟁자로 보고 경계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마침 UN총회에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을 규탄하고 통상거래를 금지하는 경제 제재조치가 부과된 때이라 우리 사절단의 방문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게 되어 처신이 곤란하였다. 신문, 방송, TV 등 기자들이 회견을 청하였으나 될 수 있는 대로 이를 피하고, 피하지 못한 경우에도 일반적인 무난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콩고 킨샤사(현재의 자이르)는 당시 레오폴드빌(Leopoldville)로 불렸는데 정치 정세가 혼란하여 UN 평화유지군이 진주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이지리아(Nigeria)의 라고스(Lagos)에서 상공회의소가 마련된 경제인들과의 상담에서 우리는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소개하고 앞으로 아프리카 제국들과 통상 및 경제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을 희망한다고 말한 후, 나이지리아는 한국으로부터 무엇을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상공회의소장은 “무엇이든지 모두(Anything and Everything)”라고 단언하고, 쌀을 팔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쌀은 아직 국내 수요 충족에도 모자라서 수출을 할 수 없으나 섬유 제품이나 기타 솔(Brush) 등 각종 잡화를 수출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당시 우리의 산업 능력을 돌아다 볼 때, 우리 통상사절단은 너무나 빨리, 약 10여 년 정도나 빨리 돌아다니고 있음을 통감하였다.
가나(Ghana)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황금해안이라고 불린, 경제사정이 가장 풍요하고 교육을 받은 사람도 비교적 많은 나라이다. 당시 엔크루머(Nkrumer)가 수상으로서 강력한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태리 회사가 볼타(Volta)강을 막고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도중에 시골 풍경을 보니 당시 우리나라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고 오히려 더 윤택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 후 엔크루머가 좌경 영웅병에 걸려 소련을 흉내 내면서부터 경제와 정치가 파탄이 나기 시작하여, 내가 12년 후에 다시 수도 아크라(Accra)를 방문하였을 때에는 경제상태가 12년 전보다 후퇴하고 모든 것이 퇴락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한 나라 백성들이 지도자를 잘 만나야지, 악하고 무능한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어떻게 고생하는가를 실제로 보여준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Rabat)에 가기 위하여 카사블랑카(Casablanca)에 들러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우리나라 가곡이 축음기에서 흘러나왔다. 우리들이 일본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일본 노래를 틀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세히 물어보니 얼마 전에 동양인 여행자가 기념으로 주고 간 것인데 주인은 이때까지 그것이 일본 노래인줄로만 알고 동양인 손님이 오면 늘 이 노래를 튼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상한 문화보급이었다.
1963년 4월 19일 차남 세욱(世郁)이가 카이로 가톨릭병원에서 출생하였다. 출생시간이 정오경이었으므로 4․19기념식을 마친 후 병원에 달려가는데 큰 불편이 없어서 모두들 효자가 나왔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