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 있는 동안 아랍어를 배우기 위하여 책을 사서 자습을 하는 한편,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모하메드(Mohammed)의 전기를 탐독하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아랍 문화의 중심지인 카이로에서 근무한 것이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의 카이로 근무도 단기간으로 끝나게 되었다. 김정열 장군은 주미대사로 임명되자 김용식 외무부장관에게 믿을만한 차석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두 분이 상의한 결과 카이로에 가 있는 윤을 공사로 임명하여 주미대사관으로 보내기로 합의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963년 5월 25일자로 주미대사관 근무 발령이 났다.
나는 13개월 만에 중단된 애급 근무를 마치기 전에 나세르가 야심적으로 큰 꿈을 걸고 소련과 연합하여 진행하고 있는 아스완댐(Aswan Dam)에 가보고, 도중에 있는 룩소(Luxor)의 신전에도 가 보았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Sphinx)의 신비와 더불어 룩소의 신전과 아부 심벨(Abu Simbel)의 조각은 고대 애급문명의 정화로서 자랑할 만하다고 느꼈다.
1963년 6월초에 뉴욕을 경유 워싱턴 대사관에 부임하였다. 두 번째 근무하는 공관이라 별로 새로운 맛은 없었으나 그동안 공관 인원이 20여 명으로 곱절이나 늘었고 미국 정부도 공화당에서 민주당 정부로 바뀌어 있었다.
김정열 대사는 공군 일반참모비서실에 있을 때 수 개월 간 옆방에서 모신 일이 있어 서로 아는 사이였으며, 외교에 처음인 그는 대사관 운영을 공사인 나에게 일임하다시피 맡기고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은 나의 의견을 묻는 등, 우리는 곧 긴밀한 관계를 수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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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번째 주미대사관 근무 시절 / 앉아서 서명하는 이가 김정렬 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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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성에는 딘 러스크(Dean Rusk)가 장관으로 있었고 그 밑에 동북 아시아 담당 차관보로 윌리암 번디(William Bundy), 다시 그 밑에 부차관보로 서울에서부터 잘 알고 지내던 마샬 그린(Marshall Green)이 있어서 공사(公私)로 매우 가깝게 지냈다. 패터슨(Patterson) 내외와는 옛 정을 다시 계속 이어가게 되었는데, 그의 소개로 베데스다(Bethesda)에 있는 그의 집 근처에 집(9419 Holland Ave.)을 마련하여 같은 동네에 살게 되었다.
11월 22일 케네디(John F. Kennedy)대통령이 암살되었다. 나는 이 사건의 첫 뉴스를 자동차의 라디오로 들었는데 이 엄청난 사태의 추이를 통하여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체를 좀 더 깊게 파악하게 되었다.
미국의 인종문제, 권력의 대통령 집중, 위기상황에서의 민주주의와 애국주의의 발동, 타협, 시시각각으로 전개되는 이러한 요소들의 작용을 지근거리에서 목격, 실감하였다. 웨렌 위원회(Waren Commission)의 오스왈드(Oswald) 단독범행 결론, 루비(Ruby)의 오스왈드 제거, 잇따른 루비의 사망은 어느 탐정극보다도 극적이며 가상(fiction)적이었다.
11월 24일 케네디 대통령 국장(國葬)에 박정희 의장이 대통령 당선자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나는 대사관의 행정적 지원활동을 총괄하는 책임을 맡아 대사관의 정 위치에서 지휘, 연락을 취하였다. 박 의장은 장례 후 25일 존슨(Johnson) 대통령과 면담하여 한미 우호를 다짐하였다.
박 의장 일행이 귀국한 후 들리는 말에 의하면, 윤 공사는 왜 박의장 숙소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느냐고 박 의장 측근에서 의아해 했다는 것이었다. 나의 책임 수행에 골몰하고 출세에 별로 관심이 없는 탓이 아닌가?
1964년 여름, 김 대사는 외무관계 인사문제에 대하여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신(私信)으로 직언을 한 일이 있는데 그 해 11월 주미대사에서 해임되었다. 정부가 다른 공관장 자리를 제의하였으나 김정열 대사는 이를 사절하고 외교계를 떠났다. 그 후임으로 내각 수반을 지낸 김현철(金顯哲) 씨가 주미대사로 임명되어 부임하였다.
65년 11월 13일 나는 본부 근무로 발령을 받았다. 본부 근무라 하였으나 무슨 보직이 마련된 것이 아니고 소위 대기실에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