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대표부 설치를 위한 협정 체결 교섭에 있어서 아 측의 주안점은 북한과 싱가포르가 5월 13일 무역협정을 체결하였음을 감안하여 조속히 통상협정을 체결하고 상주대표부를 설치하여 무역, 기타 경제협력 증대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있었다. 이에 대하여 싱가포르 측은 한국과의 공식관계 수립의 인상을 최소화하고 싱가포르 상품의 대한(對韓) 수출을 극대화하는 계기로 삼을 심산으로 교섭에 임하였다.
즉, 대표부의 명칭을 'MISSION' 대신 'TRADE REPRESENTATION'으로 하고, 무역량을 확정하되 한국의 대(對) 싱가포르 수출액과 동액의 싱가포르산 공산품(Singapore manufactured goods)을 의무적으로 100% 수입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고집하였다. 북한과의 협정에 싱가포르 제품의 100% 수입이 규정되어 있으니 한국도 동일한 조건을 수락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신기분(Shin Ki Boon) 재무차관의 엄명이라 한다.
그러나 북한-싱가포르 간의 당시 무역고는 3만 달러(US$)에 불과하여 한국-싱가포르 간 무역고 약 600만 달러(US$)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 체제하에서 민간 기업에게 국가가 일정품목의 일정량 수입을 강제할 수 없고, 또 싱가포르 제품이 제한되어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물품을 찾기 힘들었으므로, 이러한 실제 이행불능의 조약 의무를 부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싱가포르 측의 실리추구의 의욕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 주지 않으면 도저히 이 교섭을 성사시킬 수 없음이 분명하므로 아 측은 68년에 100만 불의 싱가포르 상품을 수입할 것을 제의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대표부 명칭은 경제통상대표부(Economic and Trade Mission)로 합의하고, 연계수입(Counter-import)과 이를 위한 특별계정(Special Account)문제가 걸림돌로 남았다.
항공협정에 관하여는 싱가포르 측의 초안이 대체로 말레이시아와 체결한 항공협정과 유사하여 별 문제점이 없었으나, 싱가포르 측이 통상 협정이 타결되지 전까지는 논의할 수 없다는 태도로 나왔으므로 진전이 없었다.
이러한 싱가포르 측의 태도는 10월 7일 강경일변도로 돌변하여 10월 9일에는 자기 측 입장은 절대부동이라고 언명하였다. 아 측이 양보하지 않는 한 교섭은 결렬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부에 보고한 바, 본부에서는 결렬 인상은 절대로 피하라고 하였다.
|
|
| ▲ 싱가포르 통상협정 교섭 경제사절단과 함께 |
|
나는 교섭이 최종 단계에 도달하였음을 인식하고 곡(Kok) 수석대표를 라플스(Raffles Hotel)로 초청, 정원에서 만찬을 함께 하였다. 이 자리에서 나는, 지금의 우리 입장이 법적, 현실적으로 양보할 수 있는 최종 한도임을 설명하고, 우선 이렇게 시작하면 내년도의 일은 그때 가서 상호 협의하여 새로 정할 수도 있으니 이쯤에서 타결하자고 간곡히 설득하였다.
곡(Kok) 국장은 내 말을 이해하는 것 같이 보였으며 만찬은 남국의 시원한 바닷바람과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우호적으로 끝났다. 나는 약간의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
그 다음날, 즉 10월 19일 싱가포르 측은 회의를 동구라파 및 뉴질랜드 통상사절단과의 회담을 이유로 취소한다고 통고해 왔다. 10월 20일 회의에 나가니 곡(Kok) 수석대표가 교체되어 신임 무역국장 탄 수 쳬(Tan Soo Chye)가 나왔다. 그는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한국이 300만 달러(US$)의 싱가포르 공산품(Singapore manufactured goods)을 수입할 것을 요구하였다. 나는 100만 달러 수입이 아 측의 최종 입장임을 확언하였다.
싱가포르 측은 한국이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고가(高價)의 경제적 대가를 치를 것으로 믿고, 또한 교섭지가 싱가포르이므로 앉아서 버티기만 하면 시간은 자기 편이라는 생각에서 초강경의 입장을 고수, 요지부동이었다.
본부에서는 될 수 있으면 교섭 결렬이나 외교 실패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하라고 지시하여 왔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으나 진전이 없는 것이 명확해졌으므로 나는 교섭을 중단하고 본국 정부와 협의차 귀국한다고 통고하고 11월 12일 서울로 귀환하였다.
싱가포르와의 교섭 기간 중 조갈과 빈뇨 증세가 있어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니 당뇨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외교연구원에서 사람을 접견할 때마다 커피를 마시고 특히 구기자차가 몸에 좋다고 하여 하루에 서너 잔씩 설탕을 넣어 마셨는데, 당분의 과다 섭취와 운동부족으로 당뇨병이 된 모양이었다. 폐결핵과 류머티즘이 나의 생 전반(前半)의 옆구리에 박힌 가시라면 당뇨병은 후반(後半)의 가시가 되어 나의 의지력을 시련하는 채찍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