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부재중 국회가 열리면 차관이 국회에 나아가 답변을 하는 것이 통례였다. 정일권 총리에게 “국회답변을 잘 하는 요령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정 총리는 “국회의원들은 정부의 답변이 거만 불손한 것을 제일 싫어하니 고개도 높이 쳐들지 말고 목소리도 나지막하게 하며 될 수 있는 대로 공손하게 대답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하였다.
이 충고를 따라서 그랬던지 국회답변에서 4년 동안 별로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았는데, 딱 한 번 외무분과위원회에서 신민당 위원 한 분이 질문을 하면서 나보고 거짓말 보고를 한다고 질책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나의 답변이 충분하지 못하여 만족하지 않으시는 데 대하여는 송구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나 내가 거짓말 보고를 한 일은 절대로 없으니 이 발언은 철회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분위기가 이같이 험해지자 이동원 외무위원장이 무마에 나서서 이 일은 질문 도중에 별다른 의도 없이 나온 말로 야기된 것이니 그리 알고 없던 일로 하자고 하여 무사히 가라앉았다.
다음 시(詩)는 국회심의와 남북대화에 대한 소감(所感)을 읊은 것이다.
국 회 : (國 會ㆍ1972년)
예산심의시하물(豫算審議是何物)
세입세출당야부(歲入歲出當耶否)
고성대어일야발(鼓聲大話日夜發)
경국제민수선무(經國濟民誰先務)
야정여수호상대(野政與守好相對)
정부국회사맹우(政府國會似盟友)
당당의정단상하(堂堂議政壇上下)
태산명동무일서(泰山鳴動無一鼠)
정칙예어침(政則銳於針) 수야유어면(守也柔於棉)
언재장어행(言哉壯於行) 시혜귀어금(時兮貴於金)
성여사부모(誠如事父母) 신사이박빙(愼似履薄氷)
의정막중임(議政莫重任) 원군위국충(願君爲國忠)
남 북 : (南 北ㆍ1972년)
국망반세기(國亡半世紀) 분단삼십년(分斷三十年)
골육호상쟁(骨肉互相爭) 형제작이인(兄弟作異人)
열강모기리(列强謨其利) 국연기무능(國聯旣無能)
천혜자조자(天惠自助者) 일통시오명(一統是吾命)
차관 재임 중 수차 외국 방문 여행을 하였다. 정부의 수출증대 운동의 일환으로 각 지역 주재 경제담당관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이 회의를 차관이 주재하였다. 1971년 8월 30일~9월 13일 구주, 동남아 지역 경제담당관 회의를 주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을 방문하였다.
8월 31일일에는 핀란드(Finland)의 헬싱키를 방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바이노 레스키넨(Vaino Leskinen) 외상을 만나 통상문제 및 통상대표부의 설치문제를 협의하였고,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는 크리스테르 비크만 외상과 만나 의견을 교환하였다.
1971년 9월 2일~3일에는 북대서양상의 아이슬란드(Iceland)를 친선 방문하였다. 이 나라는 주산업이 어업으로서 해양법 회의에서 연해의 어업권을 생존권 문제로 필사 주장하는 나라이다. 인구 24만의 소국이나 전략상 요충을 점거하고 있으며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1972년 4월 3일~8일에는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후쿠다[福田] 외상과 마에오[前尾] 법상(法相)을 예방하였다. 모리[森] 외무차관의 빈객으로 갔었는데 때마침 야스카와[安川] 심의관의 여비서가 미일(美日) 안보관계 비밀문서를 누설한 사건이 발생하여 시기적으로 그리 유쾌한 편이 못되었다.
야스카와 심의관은 내가 마닐라에 있을 때 주 필리핀 일본대사로 같이 근무하여 서로 잘 아는 처지였다. 신칸센[新幹線] 철도편으로 쿄토[京都], 오사카‘[大阪], 나라[奈良]를 방문하여 교포들과도 만나고, 토다이지[東大寺], 호류지[法隆寺] 등 문화고적도 보았는데, 한반도에서 건너간 문화임에 틀림이 없었다.
1972년 7월 8일~23일까지 아주 순방에 올랐다. 방문지는 라오스, 미얀마, 네팔, 인도 및 싱가포르 등이었고 유종하 과장이 수행하였다. 7월 9일부터 11일까지는 라오스(Laos)를 방문, 수상 수바나 푸마(Prince Souvanna Phouma)공을 만나 국교수립을 협의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새는 비행기를 타는 괴이한 경험을 한 기억이 난다. 비엥티안느(Vientiane)에서 방콕으로 나올 때의 일이다. 구름이 낮게 끼어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날고 있었다. 나는 문 옆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머리 위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위를 쳐다보니 문 사이에 틈이 있어서 그 사이로 비가 새는 것이었다. 비행 고도가 높지 않아 그래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