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포르투갈에는 스피놀라 장군을 대통령으로 하고 소와레스(Mario Soares)를 수상 겸 외상으로 하는 새 정부가 조직되었으므로 나는 다시 리스본에 가서 1974년 6월 3일 신임장을 제정하였다.
스피놀라 장군은 외눈 안경을 쓰고 단장을 짚고 다니는 전형적인 군인으로 보였는데, 신임장 제정식은 연미복 차림을 한 매우 격식을 갖춘 의식이었다. 소와레스 수상 겸 외상은 오랫동안 파리에서 경제할 교수를 한 사람으로 영어보다는 불어를 상용하는 지식인이었다.
후일 UN 한국문제 토의에서의 한국 지지를 요청하기 위하여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다른 구라파 국가들의 태도를 물었다. 공산국가를 제외한 모든 구라파 국가들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대답하였더니, 그는 “그러면 포르투갈이 한국을 지지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하며 지지를 약속하였다.
포르투갈은 그 후 공산당과 좌익 세력이 점차 증대되어 파리에 주재하는 대사가 겸임하는 것으로는 충분한 대책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되어 리스본에 상주 대사관을 설치할 것을 본부에 건의하였다. 본부에서도 이에 동의하여 1975년 8월 상주 대사를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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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칼 신임장 제정 후 스피놀라 대통령과 만찬을 하고 있다 /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스피놀라 대통령은 외눈 안경을 쓰고 단장을 짚고 다니는 특이한 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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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5월 튀니지에 조그만 문제가 발생하여 본부로부터 가서 해결하라는 연락을 받고 튀니스를 방문하였다. 행정격인 문제로 무난히 그 일을 해결하고 난 후, 간 김에 카르타고의 유적을 둘러보고 서양 역사의 영광스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고사를 상기하였다.
차드는 아프리카 대륙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리비아 남쪽)에 위치한 나라로 그 수도는 은자메나(N’Djamena)이다. 인구는 약 400만의 유목민으로 구성되고, 프랑스의 아프리카 경영을 위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전략적 가치가 있는 나라이다. 1974년 12월 9일 톰발바이(François Tombalbaye)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였다.
그는 얼굴에 몇 줄기 칼자국 흉터를 지닌, 전통적인 지도자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음해, 즉 75년 군부 쿠데타로 살해되고 말룸(Felix Maloum)을 의장으로 한 9인 최고회의가 집권하였다. 차드도 파리에서 겸임하는 것이 적당치 않다고 생각되어 아프리카 내의 다른 공관장에게 겸임시킬 것을 본부에 건의, 건의한 대로 되었다.
주불대사는 또한 파리에 본부가 있는 UN 전문기구인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의 상임 대표의 임무도 겸하고 있었다. 매 2년마다 개최되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본국에서 대표단이 오면 이들을 지원하는 것 외에는 별일이 없어, 대사관의 참사관 한 명을 담당관으로 지정, UNESCO 관계서류를 챙겨서 본부에 송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1974년 8월 15일 아침 9시쯤이었다. 프랑스에서는 8월 한 달은 바캉스(Vacances)로 전 국민이 일을 전폐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대사관에서 국경일 경축 행사를 한다 해도 사람들이 오지 않으므로 10월 3일 개천절을 국경일로 지키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며칠간 독일 방면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운전기사인 프랑수아(François)가 차를 닦고 있다가 나를 보고 대뜸 박대통령이 죽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물으니 박대통령이 죽었다고 반복하였다. 누가 그러더냐고 하니 라디오에서 들었다고 하였다. 깜짝 놀라 급히 3층 관저로 뛰어 올라가 공보관 집으로 전화를 걸어 서울에서 무슨 소식이 있느냐고 물었다. 공보관은 라디오 방송과 AFP 통신에 의하면 8․15 경축식장에서 무슨 사건이 난 모양인데 육영수 여사가 부상을 입은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대통령은 괜찮으시냐고 물으니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고 하였다. 나는 전 직원에게 대기 명령을 내리고 초조히 다음 소식을 기다렸다. 오후에 청와대 조상호 의전 비서관이 전화를 걸어, 당시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불어 연수중이던 박근혜 양을 곧 서울로 귀환토록 조치하라는 급명을 전달하였다. 나는 해안 지방에 가 있던 박 양에게 연락하고 아내가 서울까지 동행하도록 하였다.
대사관 사무실은 파리 17구 빌리에 로(29, Ave. de Villier)에 있었는데 건물이 협소하고 위치도 중심지에서 떨어져 있는데다가 외국 공관이라고는 한국과 월남밖에 없어서 그리 좋은 지대라고 할 수 없었다. 한국은 당시 경제 발전과 공업화 정책이 궤도에 올라 신흥 경제세력으로서 성망이 높아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에 걸맞게 국가의 상징인 대사관을 잘 차려 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새 대사관 물색에 나섰다.
각 방면으로 알아 본 바, 제7구에 있는 캐나다 선교회의 회관을 판다고 하여 구매 교섭을 진행하였다. 대지 5,000평방미터에 건물이 두 채가 있어 대사관용으로 넉넉히 쓰고도 남았는데 가격 문제와 상관 없이 한 가지 장애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