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 본 국가원수 중 똘똘이로 영리하게 보인 사람이 카메룬의 아히죠(Ahmadou Ahidjo)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그 똑똑하게 보이던 사람이 자기가 암에 걸린 줄 알고 만사가 귀찮아져서 정권을 자기 친구에게 넘겨주고는 병을 고치는데 전념하기 위해 프랑스로 와서 다시 진찰을 해 보니 암이 아니었다. 그는 권력을 되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믿던 친구는 권력이 너무나 좋은 것임을 알게 되어 반환을 거부하였다는 것이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종신 대통령이었다가 후에 황제가 된 보카사(Jean-Bedel Bokassa)를 종신 대통령 시절에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수도 방기에 있지 않고 피서지 별장에 가 있어서 대통령실 비행기로 외상과 함께 별장으로 찾아갔었다. 점심 때가 지나도록 점심 준비 연락이 없어 외상과 우리 일행은 맥주 한 병으로 때우고 점심을 굶었다.
오후 5시쯤 되어 별장에서 보카사 대통령을 만났다. 박 대통령의 친서 전달과 양국의 우호협력을 다짐하는 상용대화가 오고 갔다. 보카사 대통령은 박대통령의 친서를 읽어내려 가면서 “Trés gentil, trés gentil(친절하셔라).”를 연발하였다.
면담 후,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여 옆방 식당으로 갔다. 보카사 대통령은 자리에 앉은 후 자기 부인을 불러 인사를 시켰는데, 30세 미만의 백인여자로 예쁜 편이었다. 얼마 전 그가 루마니아를 방문하였을 때 루마니아 정부에서 그의 수종을 들도록 이 여자를 배치하여 주었는데, 귀국할 때 데리고 가기를 원하니 루마니아 정부가 기꺼이 응낙하여서 자기 아내로 삼았다고 하였다.
나는 보카사 대통령이 월남에서 프랑스군 하사관으로 복무할 때 월남 여자를 부인으로 데리고 온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므로, “각하께서는 자녀를 몇이나 두셨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27명이라고 했다가, “아니,” 하더니 한참 속셈을 하고 난 후 28명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종신대통령(Président à vie)으로도 모자라서 황제로 등극, 대관식을 나폴레옹을 본 따서 성대하고 화려하게 거행하였다. 물론 오래 갈 수는 없었다.
1976년 봄, 민병권(閔丙權) 정무 제1장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친선사절단이 수단의 수도 카툼(Khartoum)을 방문하였다. 나는 이 사절단에 차석대표로 참가하였는데,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 근무하는 이상열(李相悅) 공사, 경제계에서 대우의 김우중(金宇中) 회장과 한진의 조중훈(趙重勳) 회장이 동행하였다.
대표단은 대통령(Maj. Gen. Guafar Nimeiry)을 만나 양국 우호친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국교 수립에 대하여는 외상과 내가 별도 협의를 하기로 하였다. 외상과의 협의에서 외상은 나에게 애급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총영사 관계라고 대답하자, 그는 “그러면 우선 총영사 관계로 시작하여 보자.”고 하였다.
수단은 전통적으로 애급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데다가 외교 문제에 있어서 긴밀히 협조하고 있었으므로 우선 영사 관계로 시작하자는 생각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무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사 관계 수립에 합의하고 돌아왔다. 그 해 4월 21일 수단에 총영사관이 개설되었다.
1977년 카메룬 대사로 부임하는 채의석(蔡義錫) 대사가 파리를 경유하게 되어 점심을 같이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점심식사 도중, 일전에 박 대통령과 몇몇 대사와 함께 오찬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박대통령이 “파리 윤 아무개 대사의 아들이 병역 기피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 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 하였다.
나는 기가 막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통탄하였다. 세중이는 파리의 정치 대학(속칭 Science Po)을 졸업하고 병역 의무를 먼저 하겠다고 공수부대(空輸部隊)에 자원 입대하여 당시 낙하산 부대의 위험하고 어려운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 어느 누가 모략을 한 것인지, 또는 과오로 허위 보고를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경우는 채 대사가 나에게 알려주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나는 곧 박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내, 아들 세중이 자원 입대로 현재 공수부대에서 복무중임을 밝히고 잘못된 보고로 오해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얼마 후 김정렴(金正廉) 비서실장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박 대통령이 내 편지를 받아보시고 “그러면 그렇지, 윤 대사가 그럴 사람이 아니야.”라고 하셨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