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북한 접근을 더욱 확실히 방지하기 위하여 두 가지 계획을 추진하였다. 하나는 외무성의 실무 책임자인 굳만 차관과 꽁발 국장을 방한 초청하여 한국의 실정을 직접 보게 하고 한국정부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여 이 문제에 대한 외무성의 입장을 아국에 유리하도록 못 박도록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대외무역 및 관광성 장관인 크레송(Edith Cresson)의 방한을 1985년 초에 실현시켜 한불경제협력을 협의하는 것이었다. 크레송 장관은 미테랑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가까운 친구로서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굳만 차관과 꽁발 아주국장이 84년 11월 21일~23일 서울을 방문하였다. 서울에서는 프랑스의 북한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표명하였고, 이 사실이 도하(都下)의 각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파리에 돌아온 후 서울의 인상을 묻는 나에게 그들은 많은 환대를 받았다고만 하고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1984년 12월 11일 프랑스 정부는 우리 측에 사전 통고 없이 파리에 와 있는 북한의 통상대표부(Délégation Commeciale)를 일반대표부(Délégation Générale)로 개칭하는 동시에 과거 통상 분야만 다루던 것을 문화 사회 등 다른 분야의 일에 대하여도 프랑스 정부 해당 부서와 접촉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확대시켜 주었다.
북한 방송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 정부는 크게 놀라 곧 주불대사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굳만, 꽁발, 그로스우브르 등 관계관을 만나 북한대표부 승격 문제의 진상을 문의한 바, 그들은 이 조치가 결코 외교관계의 수립이 아니라 다만 명칭의 변경과 기능의 확대에 불과하며 또한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예비조치도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한국 측에 사전에 알리지 않은 점에 대하여는 개인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말끝을 흐리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하건데 그 진상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1. 프랑스 정부는 당초 집권 정부가 하는 일은 모두 비판하던 재야시기의 성향과 습관으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도 남한만 지지하며 친미 정권과 우호친선을 유지하는 정책을 변경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 사회당의 사회주의 이론과 공산당과의 정치적 연합전선의 구성으로 북한과의 관계 수립이 더욱 필요해졌다.
3. 미테랑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전(前)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김일성에게 한 약속이 그에게는 이행해아 할 하나의 정치적 도의적 의무가 되었다.
4. 그러나 국정의 책임을 맡은 후 한반도 문제가 그렇게 간단히 다룰 문제가 아니며, 한국과의 경제관계, 특히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 참여 및 앞으로의 유익한 경제협력 가능성(고속전철 TGV 사업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이 극력 반대하는 일을 강행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5. 그러나 이 문제를 무작정 미결로 질질 끌 수도 없으며, 더구나 미테랑 대통령의 임기의 절반이 이미 지난 오늘날(1984년 말) 계속 무작정 흐지부지 파묻어 둘 수는 없었다.
6. 외무차관과 아주국장은 한국 방문으로 한국 정부의 프랑스-북한 간의 외교관계 수립 절대반대 의사를 확인하였으나 모든 관계 개선에 똑같이 절대반대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고 여기에 출구(出口)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7. 그 방법으로서 북한의 주 프랑스 통상대표부를 일반대표부로 명칭을 바꾸고 그 기능을 확대시켜 줌으로써 북한에게는 관계 개선을, 한국에게는 외교관계 불수립(不樹立)의 카드를 내밀어 무마하려 한 것이었다.
8. 85년 12월 셰이송 외무장관이 구라파공동체(EC) 집행위원으로 전출되고 듀마(Ronald Dumas)가 외무장관으로 임명되는 것을 기회로, 퇴임 장관이 이 문제를 자기 책임으로 떠맡고 신임 장관에게 짐을 넘겨주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9. 한국 측에 알리는 여부에 대하여서는, 만약 사전에 알리면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약 파기 등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한국 측이 이에 동의하여 주기보다는 결사적으로 반대하여 일을 강행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궁지에 빠질 것이 확실하며, 또 한국대사가 프랑스 정부 요로 및 정계 경제계 여러 곳을 쑤시고 돌아다니며 운동을 하여 이 문제가 골치 아픈 국내 정치 문제화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숫제 알리지 않고 단행하여 기정사실로 만든 후에 적당히 설명 무마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하였다.
나는 12월 18일 크레송 무역장관을 만나 프랑스 정부의 북한대표부 승격 조치로 인하여 지금 서울이 매우 흥분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녀의 명년 초 방한이 시기적으로 적당치 못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므로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알리었다. 그녀는 이해는 하면서도 매우 유감이라는 뜻을 표하였다.
12월말, 정부로부터 조속히 귀국하여 상황을 보고하라는 지시가 왔다. 그 동안 서울에서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서울 고위층에서는 ‘북한 통상대표부의 일반대표부 승격은 한국이 일본과의 국교 수립 이전에 일본 동경에 둔 주일대표부와 같이 사실상 외교대표부나 마찬가지이며 외교관계 수립 직전의 예비조치이다. 그러므로 프랑스-북한 국교 수립 저지 외교는 실패하였다. 이번 외교 실패로 명년 초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의 표가 많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 외교 실패의 전 책임을 물어 윤 대사를 소환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12월 31일 굳만 차관 및 꽁발 국장을 만나 프랑스 정부의 의사를 최종 확인한 후 1월초 서울행 KAL기에 탑승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