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SCO는 교육, 과학, 문화, 통신 등 각 분야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는데, 한국은 통신 분야에서 국제 커뮤니케이션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훈련생을 초청하여 정보매체, 방송기술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1989년 5월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나는 10억의 문맹 인구가 상존하는 현시점에서 유네스코의 가장 우선적인 중점사업은 문맹퇴치 사업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1990년 <세계 문맹퇴치의 해>에 임하여 문맹퇴치상으로 세종대왕상을 창설할 것을 제의, 집행이사국 회원국으로부터 적극적인 호응을 얻었다.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글자가 어려워 뜻을 펴지 못하는 실정을 어엿비(딱하게) 여겨 배우기 쉽고 쓰기 편한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거룩한 백성 사랑의 정신을 전 세계 인류에게 널리 알리어 세종대왕이 배달민족의 대왕일 뿐 아니라 전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되도록 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註
또한 컴퓨터 기증, 실크 로드(Silk Road) 사업에 적극 참가하여 문화외교를 통한 한국의 국위 선양에 공헌하도록 하였다.
UNESCO 집행위원회에서 전 호주 수상 휘틀람(Whitlam)을 만나 우의를 돈독히 하였다. 그는 수상 퇴임 후 UNESCO의 호주 집행위원이 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좌석이 내 왼쪽으로 한 사람 건너 자리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20여년 전 호주 북부의 농장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기연(奇緣)이었다.
1986년 6월 대우 그룹의 김우중(金宇中) 회장이 나를 고문으로 초청한다고 하여 그 해 6월부터 주식회사 대우에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문의 직책이라는 말이 있다가 결국 부회장(副會長)으로서 무역 부문의 일을 돕는 것으로 되었다. 매주 열리는 운영위원회에 참석하고 일이 있을 때에 자문 역할을 하는 일이었다. 대우에 나가게 되면서 그 동안 잠시 비상임 연구원으로 관계를 가졌던 일해연구소의 일은 그만두었다.
대우의 부회장으로 있는 동안 외국의 저명 신문사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사가 1989년 6월 모스크바 1990년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국제민간경제협의회의 중국방문단의 일원으로서 북경을 방문하였다. 원래는 여행기간이 9월 2일까지로 다른 사람들은 천진(天津)도 방문하였으나 나는 8월 31일 한글학회 창립 82돌 기념 연구발표대회에서 <한글과 외래어 표기>에 관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먼저 귀국하였다.
이 밖에 알제리와 리비아도 방문하였다. 또 구라파 공동체(EC)의 형성으로 이것이 국제경제에 막대한 영향과 비중을 갖게 됨에 따라 이를 주시하고 분석하는 일도 도왔고 현장을 시찰하기 위하여 헝가리,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를 순방하기도 하였다. 1992년 1월 대우경제연구소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986년 11월 15일 파리에 있는 세중이가 지방도시(Villedieu) 근처 고개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전화가 왔다. 파리에 있는 정치대학(Science Po)과 구라파 경영대학원(INSEAD)을 졸업하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L’OREAL) 사의 고문으로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발전하더니 32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것이다.
아, 이 기막힌 이야기를 어찌 다 여기에 쓰랴. 우리 내외가 현지에 가서 시신을 운반하여 와서 고향의 부모님 산소 밑에 묻었다. 나의 사생관(死生觀)이 변하였다. 운명의 힘이 강해졌다.
註 훈민정음 창제의 뜻을 밝힌 세종대왕의 어지(御旨)
국지어음이호중국여문자불상유통고우민(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
유소욕언이종부득신기정자다의여위차민(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爲此憫)
연신제이십팔자욕사인인이습변어일용이(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