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의 종교는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알게 된 것이다. 예수는 이 왕국사상을 그 후기형태에 대하여 조매(嘲罵)함이 없이 윤리적 완성으로 이끌어 올렸다. 그러므로 어느 모로 보든지 기독교를 그리스-동양의 종교사상에 소급함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은 비교종교학상의 일개 환상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가 창시한 것이며, 그의 정신적 배경은 후기 유대의 경신사상이었다.
후에 기독교가 세계의 조속한 종말과 신의 왕국의 즉시 실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야 했을 때, 그리고 그리스인 신도를 통하여 그리스 사상의 영향을 받게 되었을 때 기독교는 어느 정도 그리스-동양의 신비종교의 세계에 들어갔으며 그에 의하여 빈약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가 그 필연적 발전 중에 어떻게 하여 유대사상을 버리고 그리스화하였는지 그 과정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다음의 사실만은 확실하다. 즉, 유대적 외모가 사라짐에 따라 예수의 가르침의 독특성과 위대성을 구성하는 사상—신의 왕국과 그 왕국으로 지향하는 윤리의 사상—은 기독교에서 그 생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 그리스화 된 기독교의 최초의 대표자는 1세기 후반 및 2세기 초의 이그나치우스(Ignatius)였다. 그의 서간 중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의 간요(肝要) 부분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주로 성찬예식과 그것이 유효하게 되는 방식에 관하여 관심을 가졌다. 그는 주(主)의 만찬을 <영생의 약>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가 그리스-동양형의 종교심에 그 연원을 둔 것이 아니고 갈릴리에서 역사하고 예루살렘에서 죽은 예수의 인격에 귀속하는 독창적인 것이라고 확증하는 것에 만족하여서는 안 된다. 기독교와 그리스-동양종교 간의 차이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본질적으로 기독교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사람으로 하여금 거듭 그리스-동양형 종교심과 기독교의 종교심이 동일한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으로 인도케 하는 것은 양자가 다 비관론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연의 세계에 절망한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가장 중요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리스-동양적 경신사상은 단지 비관적인 것에 그친다. 그것이 관심을 갖는 유일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정신적 요소가 물질세계로부터 해방되느냐 하는 것이다.
2세기의 노스틱 파(Gnostic파:派)註는 기독교를 그 비관론적 견지에서 재해석하여, 기독교를 정신의 물질로의 하강과 그 본원으로의 귀환에 관한 그들의 인상적인 교리 체계에 맞추려 하였다. 3세기에 일어난 마니교도 이와 동일한 사상에 지배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게 이로(理路)가 일관치 않다. 비관론적 기반 중에 낙관론적 혈맥이 통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속의 종교일 뿐만 아니라 신의 왕국의 종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세계의 변화를 원망(願望)한다.
이와 관련된 하나의 사실은 기독교의 윤리가 그리스-동양종교의 그것과 전연 다르다는 것이다. 후자는 세계로부터의 해방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동적 윤리가 아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예언자와 짜라투스트라(이 사람은 예언자들과 같은 점이 많다)와 같이 우리는 이 세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고 요구함과 동시에 이 세계에서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스-동양형 종교심이 아는 유일한 경험은 정신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은 신의 사랑의 의지에 의해 파악되어야 하며, 또 작은 일에나 큰 일에나 구원에나 사면에나 신의 의지가 이 세계에서 실현도도록 돕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사람에게 요청되고 있는 임무는 이 불완전한 세게에서 신의 사랑의 즐거운 도구가 되는 것으로, 이는 완전한 세계인 신의 왕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천복(天福)에의 준비단계를 이루는 것이다. 신의 사랑의 의지를 행하는 데 있어서 그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메시아와의 교통을 경험한다. 이 경험을 근거로 그들은 심판일에 메시아의 명에 의하여 신의 왕국에 들어간다. 이것이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마태복음 25장 40절> 라고 한 예수의 중요한 발언의 의미인 것이다.
그리스-동양의 경신주의, 플라톤, 신비종교 및 노스틱파 등은 모두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세계로부터 네 자신을 해방하라>고. 예수는 말한다. <이 세계로부터 네 자신을 해방하라. 신이 너를 더 완전한 저 세계로 옮길 때까지 이 세계에서 신의 뜻과 사랑 안에서 일하기 위하여>라고. 어디에 차이가 있는가? 그리스-동양종교에는 신의 생생한 개념이 없다. 거기에서는 신은 순수한 영성에 불과하다. 예수의 신은 사람 속에 역사하는 활동적인 신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종교는 완전히 체계화된 이로일관(理路一貫)한 비관론이 아니라 비관론과 낙관론의 혼돈스러운 혼합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의 종교철학은 단일적이 아니다. 자연세계에 대한 그의 판단이 비관적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신은 이 세계에서 작용하고 있는 여러 힘의 합계 이상의 그 어떤 것이며, 이 세계 속에 잃어버린 그 일부분을 다시 찾아야 하는 순수한 영성 이상의 그 어떤 것이다. 그 신은 선을 위한 동적 힘이며 신비스러운 의지이며 이 세계와는 판이하고 우월한 것이다. 그에게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굴복시킨다. 그에게 우리는 세계의 장래를 맡긴다. 세계와 윤리적 인격인 신의 대조, 그리고 비관론과 낙관론 간의 특이한 긴장 속에 예수의 종교의 독특성이 있다. 그것이 단일적 체계가 아니라는 사실이야말로 그 위대, 그 진리, 그 심오, 그 힘을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들 현대인은 예수의 사상을 현대식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각 개인의 능동적인 윤리적 행위에 의하여 신의 왕국이 이 지구상에 실현될는지도 모른다 라고 하는 사상을 잘 알고 있다.
예수가 윤리적 활동에 대하여 말하고 또 신의 왕국에 대하여 말한 것을 보고 우리는 예수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양자를 관련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예수는 신의 왕국에 대하여 말하기를, 인간사회의 발전을 통하여 이 세계상에 실현되는 것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신이 이 불완전한 세계를 완전한 세계로 변화시킬 때 신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예수의 생각에는 사람의 윤리적 행동은 신이 그 왕국으로 하여금 지체 없이 실현케 하시기를 원하는 강력한 기도와 같은 것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 즉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신의 왕국(천국)은 침노를 당하나 침노하는 자는 빼앗나니라> 라는 말을 이런 의미로 취하여야 한다.
과거 약 150년간 예수의 사상의 현대적 해석은 하나의 당연한 일로서 신교신학(新敎神學)을 지배하였다. 겨우 최근에 이르러서야 세계의 종말에 대한 후기 유대적 기대 속에 살았던 예수가 천국에 대해 우리와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수가 사람의 윤리적 행동과 신의 왕국 사이에,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생각되는, 유기적 관련을 맺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대단히 심중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기대 때문에 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 필연으로부터 윤리적이어야 하며, 그리하여 신의(神意)의 자녀가 되고 이 세계상에서 이미 신의 의지에 합입(合入)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는 어떻게 완전히 윤리적인 사회를 조직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 하에 그의 윤리를 건설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신의 의지에 완전히 복종시키도록 공동노력하는 인간의 윤리를 설교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공리적(功利的)인 생각을 멀리 하였기 때문에 절대윤리를 얻을 수 있었다.
공리적 원리의 기초 위에 성립된 윤리는 항상 상대적이다. 일례(一例)를 들자면, 예수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항상 용서하여야 하며 우리의 권리를 위하여 싸우지도 말고 악에 저항하지도 말라고 한다. 그는 이 계명의 준수가 인간사회에 법적 질서를 가능케 할 것인가 하는 여부에 대하여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우리를 모든 공리적 사고를 초월하여 신의 의지를 실천하는 내적강제(內的强制)로 인도한다.
현대인으로서의 우리는 완전한 인간사회의 상태는 법적 조직과 사랑의 실천 간에 조화가 있는 그런 상태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예수는 정의와 사랑을 조화시키려고 기도(企圖)치 않고 다만 이렇게 말한다. <만약 네가 신의 뜻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면 사랑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외에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라고.
예수의 사상과 우리의 현대적 견해 간에 이렇게 현저한 대조가 있는 것은 예수가 공리적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이 세계에 순응치 않는 절대윤리에 따라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 대조를 경험한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예수와의 관련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견해를 현대화하려 하거나 우리들의 사상을 그의 언어 속에 억지로 또는 부주의하게 불어넣으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에 대한 예수의 의의는 그가 현대세계의 정신과 싸워서 그 현대정신 중 최선의 사상이라도 면치 못하는 저급한 수준을 버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의 우월한 의지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고, 인간의 공리주의의 용어로 사고치 않고 오직 신의 의지를 행하여야 하는, 즉 신의 윤리적 인격의 역군이라는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높은 단계로 올라가도록 강제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참뜻이다.
註 기독교 신비철학자들—바실리데스(Basilides), 발렌티누스(Valentinus), 마르키(Marcion)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