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전략 구상을 위하여
머리말
본직(本職)이 지난 7월 통일원장관으로부터 남북대화자문위원으로 위촉을 받은 이래 남북대화 준비과정의 일부에 참여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남북대화의 진행을 관찰하고 또 남북관계 및 통일문제 전반에 대하여 사색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아래에 몇 가지 관찰과 의견을 정리하여 이 문제에 대한 정책수립의 참고에 자(資)하고자 하는 바이다.
’86. 1. 18
외무부 본부대사 윤 석 헌
1. 문제의 종합적 파악
남북한관계 및 통일문제는 1945년 해방과 동시 미 ‧ 소에 의한 한반도 분단 점령 이후 특히 남북한에 대한민국과 북괴의 대립된 체제 및 정권 수립 이래 우리 민족의 중심과제가 되었다.
남북한의 대결은 6 ‧ 25동란이라는 군사충돌로 그 극한에 도달하였고 문제의 본질을 숙제로 남긴 채 휴전이 체결되고 휴전체제가 30여 년 간 계속됨으로써 불안정한 평화가 대결, 경쟁, 긴장과 함께 계속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대결과 긴장 속에서 제1차적인 급선무는 평화의 유지 정착이며, 이를 위한 긴장완화 그리고 제반분야에 있어서의 남북한 교류의 시행을 통한 평화공존상태의 실현, 이러한 정상적(normal)인 관계실현을 기초로 한걸음 더 나아가 상호 신뢰구축과 민족의 동질성 회복 및 이를 통한 민족적 화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평화와 자유 속에서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요 사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민족의 분열을 극복하고 통일을 회복한다는 민족적 지상목표이기 때문에 제1차적으로 우리 민족 자신의 문제이며 이 문제해결에 있어서 우리 민족 자신이 주동자가 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 민족만의 관심사는 아니며 국토분단의 연유, 그 후의 한반도 및 극동지역에 있어서의 열강의 이해관계를 기초로 한 힘의 정치(power politics)를 고려에 넣지 않을 수 없고 또한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차이 및 남북한 국내정세의 변천 등에 감하여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 이해하려면, 역사적 조망(historical perspective)과 국제 ‧ 국내정치의 상호 관련 속에서 이를 종합적으로 파악함이 필요한 것이다.
2. 역사적 고찰
2차대전 말기 및 종결 직후에 미국의 대(對)한반도정책이 애매하였던 틈을 타서 소련이 한반도 북반부에 진주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한반도가 군사적 분할 점령으로부터 정치적 분단으로 고착된 사정은 여기에 상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차대전 직후는 미국의 국력이 절정에 달한 시기로서 소위 미국평화(Pax Americana)가 명실공히 가능하였던 시기이나 전쟁종료 후 성급한 복원조치(demobilization) 등으로 소련의 현실주의적인 팽창정책에 유효하게 대항하지 못하였고 이러한 상황이 북괴의 남침을 유발하게 된 것이다.
미국 측으로 볼 때 한국전쟁은 제한전쟁이었으며 이의 확대를 극력 회피하였으므로 전쟁의 시발점인 38도선 주변에서 승패 없는 휴전으로 끝을 맺게 된 것이다.
여하간 1950년~1960년대까지는 미국이 국제관계에 있어서 다수 국가의 지지와 동조를 얻을 수 있었던 시기였으며 국제연합에 있어서도 한국문제는 거의 자동적인 다수표를 획득하여 매번 아 측의 제안 즉, 유엔 감시 하의 남북한 자유총선거에 의한 통일안을 가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내지 1970년대 초에 와서는 아프리카 신생국가들의 족출 특히 이들 대다수의 반식민주의, 반서방주의의 경향으로 인하여 미국의 다수표 지배가 점차 침식되고 필경은 미국이 유엔에서 소수파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비동맹그룹이 형성, 확대되어 국제정치에 있어서 미 ‧ 소 양대진영의 중간지역으로서 하나의 세력권을 자처하게 되고, 1975년 페루 리마에서 북괴의 가입과 한국의 가입 신청 거부 및 동년 유엔 총회에서 상호 모순된 두 개의 한국 문제 결의안이 가결됨으로써 유엔에서의 한국의 전승(全勝)기록이 흠을 입고 국제사회에 있어서 남북한의 지위가 백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1975년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패퇴로써 더욱 인상깊게 느껴졌다.
우리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상태는 다행히도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한국의 급속한 결제발전이 1970년대 후반 이후 전 세계의 인정을 받게 되고 대북괴경제우위가 확고히 되었으며, 또한 비동맹권의 개발도상국가들이 점차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노선을 수정, 경제적 ‧ 실리적 이익중심의 노선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화됨에 따라 북괴의 투쟁적이며 대결위주의 이데올로기 선전이 효력을 잃고 아국의 평화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정책이 더 호소력을 갖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북괴는 이를 뒤늦게 인식하고 경제기술면에서의 낙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으며 중공의 권유로 부분적인 개방정책, 대서방 자본 및 기술도입책(합영법 제정) 등을 강구하고 있으나 북한공산체제의 경직성으로 보아 앞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장래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곤란한 일이나 대체의 추세로 보아 앞으로 10여년 후, 즉 2000년에 가서는 남북한의 국력대비의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 예상되며, 한편 현재까지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군사력의 대비에 있어서도 군사투자비의 축적이 대등하여지는 1990년 초를 고비로 하여 그 후에는 아 측의 열세가 교정되고 점차로 대북 군사력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 전망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북한은 소련의 원조를 얻어 최소한 군사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남북한의 정치 ‧ 경제 ‧ 사회체제의 차이와 국력의 격차를 감안할 때 남북한이 비록 부분적이나마 상호 문호를 개방하고 교류를 실시할 경우 체제 유지에 더 큰 위험을 부담하는 것은 북측이며, 따라서 북괴로서는 남북 간의 교류(인적 및 물적)를 극히 제한적으로 또한 신중하게 다루게 되고 혹시라도 자기 체제나 정권유지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는 이를 중지하고 폐쇄정책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남북한관계에 있어서 앞으로 남측에 유리한 상황이 더욱 강화될 것이며, 북괴는 이러한 추세 하에서 어떠한 정책을 추구할 것인가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처하여 있다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