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주변 열강의 대한반도(對韓半島) 정책
구한말에 우리나라는 국력이 쇠잔하고 국제정세에 암매하여 주변 열강의 세력각축의 희생물이 될 뿐 자기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수호하는 능력을 상실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주권을 상실하고 40년간 외세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2차대전에서의 일본의 패배로 해방이 되었으나 민족의 운명이 계속 주변 열강에 의하여 결정되고 이의 여파로 남북한이 분단되고 이제까지 상호 대결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남북한이 각각 어느 정도의 국력을 보유하고 있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주변 열강의 대(對)한반도 영향력이 전보다 덜하여진 것은 사실이나 이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감소된 것은 안며 아직도 한반도 문제의 고찰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래에 주변 열강의 대한반도 정책 및 태도에 대하여 간단히 검토하기로 한다.
가. 미국
미국은 한반도 군사분단점령국가의 하나로서 그리고 한국전쟁시 북괴침략을 격퇴하는 유엔 노력의 주동자로서 이때까지 한반도 문제에 지대한 영향력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며 특히 한 ‧ 미 상호방위조약의 당사자로서 한반도 평화유지 및 북괴의 재침략 저지에 있어서 중요한(essential)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49년 미군의 철수 및 1950. 1. 12. 애치슨 발언(한국이 미국의 서태평양 방위권 밖에 있다는 내용) 및 그 후 수시 미국 정계 및 여론의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미군철수론(닉슨 대통령의 괌 닥트린 및 카터 대통령의 주한 미지상군 철수정책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남한이 일본 방위에 도움이 되는 전위기지(Forward base)로서 그 가치를 인정하나 필수적인 것은 아니며 정치 ‧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이 클 때에는 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전략적 또는 외교적 사고가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국가가 되고 군사적으로도 소련의 극동 및 서태평양 지역에서의 세력증강에 비추어 한국과 일본 ‧ 중공 ‧ 미국을 포함하는 포괄적 대소전략을 구상하게 됨에 따라 한국의 전략적 ‧ 경제적 가치가 미국에 대하여 더욱 증대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같이 한 ‧ 미 양국의 기본적인 중대 국가이익이 일치함으로 인하여 앞으로 양국관계는 더욱 안정된 기초 위에서 상호 이익이 되는 협조 관계가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 일본
일본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가장 가까운 나라이며 역사적 ‧ 문화적으로도 긴밀한 관계에 있으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수차 불행한 상극관계를 겪었으므로 양국관계는 복잡한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서방자유진영에 속하고 특히 미국과 안보 ‧ 경제 면에서 불가분의 상호의존관계에 있으며 한국이 지리적으로 북방공산세력의 대일(對日)침공로를 막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의 건재가 일본의 중요한 국가이익이 되는 것임에 틀림이 없으며 일본의 역대 위정자들도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하여는 평화유지와 남북한 간의 긴장완화를 희망하고 있으며 동시에 북한과의 관계개선 특히 경제관계 발전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되는 바, 대한민국의 중대 국익에 위배하는 것을 무릅쓰고 대북접근을 할 것으로는 예상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국으로서는 그 가능성을 전연 배제할 수 없음을 염두에 두고 일본이 조급하게 앞질러 나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 소련
소련은 미국과 더불어 한반도 분단 점령국가의 하나이며 이데올로기와 팽창주의 정책의 입장에서 뚜렷하고 확고한 한반도 적화정책을 가지고 김일성 북괴정권을 수립, 6 ‧ 25침략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대조적인 정책을 추구하였다.
무력에 의한 남침적화정책이 한국 및 미국 등 자유세계의 저항으로 실패로 돌아가자 한반도의 분단, 현황을 시인하고, 북괴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위한 중공과의 경쟁에 들어갔으며, 따라서 국제관계에 있어서 북괴의 통일정책 지지, 유엔 가입 반대 등 외교적 지지와 더불어 군사장비 제공, 경제기술 원조 등을 필요에 따라 제공하고 있는 상태이다.
최근 중공의 실용주의 노선 및 대서방 개방정책 채택과 더불어 북괴가 중공의 노선을 추종할 기미를 나타내었으므로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북괴가 필요로 하는 신예무기(MIG-23, SA 3 등)를 제공하고 상호 군사 및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련으로서는 가급적 북괴를 자국의 영향권 내에 두기를 원하며 이에 방해가 되는 중공의 대북괴 영향력을 계속 견제할 것으로 관찰된다.
한편 소련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의 관계개선도 북괴와의 관계긴밀화 못지 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며, 또한 대미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위태롭게 하는 한반도에서의 북괴의 모험을 원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으로서는 북괴가 소련의 지원을 필요로 할 정도로 적당한 긴장이 한반도에 계속 되는 것을 해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나 평화가 깨지고 전쟁이 재발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사태는 원치 않을 것으로 관찰되는 바이다.
라. 중공
1949년 중국 본토를 통일한 중공은 자연 북괴를 동조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였으며 한국전쟁 발발 후 유엔군이 한 ‧ 만(韓 ‧ 滿) 국경선에 가까이 진격하게 되자 소위 의용군을 대량 투입하여 한반도에서 군사적 균형을 회복하고 승패없는 휴전으로 유도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 후 문화대혁명, 모택동세력 몰락, 등소평의 집권 등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는 대서방세계 개방 및 실용주의 경제정책 등 온건노선을 추구하게 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하여서도 남북대화, 긴장완화, 평화공존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며 북귀에 대하여 개방정책을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5년 사이공 함락 직후에 김일성이 북경을 방문하여 미국이 베트남 패퇴 후유증(Vietnam Syndrome)으로 심히 약화되어 있는 기회에 무력남침을 다시 감행하여 베트남식의 통일을 성취하는 데 대하여 중공이 지지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을 때 주은래(周恩來)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것이 자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 것임을 명백히 하였던 것이다.
이제 실용주의노선 추구와 대미, 대일, 대서방 관계의 발전을 토대로 하여 자국의 현대화와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중공으로서 이에 중대차질을 초래하게 될 한반도에서의 전쟁 또는 심각한 긴장격화 등은 원치 않는 바이며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유지, 긴장완화 및 이를 실현하기 위한 남북대화의 계속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의 대북괴 영향력은 제한되어 있으며 북괴가 원하는 군사 ‧ 경제원조를 제공할 수 없는 형편이므로 북괴를 상대로 한 소련과의 세력경쟁에 있어서 때로는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최근의 북괴-소련의 관계 긴밀화는 이러한 영향력의 부침 또는 이를 이용한 북괴의 기회주의적인 외교적 책략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