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남북한은 국내,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전략과 전술을 조정하고 수정하고 있으나 그 기본목적은 확고히 유지되고 있다. 또한 정세나 세력대비에 변화가 있더라도 기존개념의 타성에 의하여 새 정세에 적응하는 데에는 상당기간이 필요하며 따라서 과도기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바. 남북한의 대결, 경쟁의식, 상대방의 기본의도에 대한 상호 불신은 같은 구상, 같은 안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제의하였을 때에는 일응 이를 반대하고자 하는 심리가 강력히 작용하며, 어떤 안의 파괴적, 부정적 유해요소를 찾아내고 추측하는 작업이 당연히 선행되며 그 안이 내포하고 있을 수 있는 긍정적 요소는 간과되거나 홀시되기 쉽다.
사. UN가입 문제에 대한 북괴태도의 표변, 3자회담에 대한 남북한 태도의 변화 등은 같은 안이라 하더라도 그 안을 제기하게 된 기본의도, 관련된 정세 및 어느 측의 이니셔티브에 의한 것인가 등에 따라 이러한 관련된 요소를 종합 고려하면 전혀 내용적으로 다른 안이 될 수도 있고 자기 측의 이익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 설령 과거에 자기 측이 제의한 안이라 하더라도 관련요소의 변화에 따라 이미 유리한 안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 정세가 안정(stable)된 시기에는 안전(security, safety)을 누릴 수 있으나 정세가 급변하는 유동기에는 이미 수립된 정책의 묵수(墨守)로는 부족하며 그 타당성 및 유효성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즉 정세가 안정되어 있을 때에는 면밀히 사려깊게 수립된 종합계획을 인내성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며, 정세가 변화하는 유동적 시기에는 그 변화의 의미를 검토하고, 그것이 내포하는 위험과 기회 등 이해득실을 정확히 분석 평가해서 이에 적당한 새로운 전략, 전술을 수립하여 기민하게 대처함이 필요한 것이다.
자. 남북한관계, 통일문제와 같이 국가민족의 기본적 목적이며 역사적 사명이 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먼저 목표를 확정하고 기본전략을 수립, 이를 확고한 일관성과 인내성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 시행하되 전술적, 응기적(應機的) 문제에 대하여는 유연성과 포용성을 겸용하여 부동의 목표, 확고한 전략과 더불어 탄력성 있는 운영과 추진이 필요한 것이다.
차. 현재까지의 남북한의 통일 및 대화전략을 보면 북괴는 뚜렷한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미리 준비된 계획을 가지고 공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이에 비하여 남한은 대화개시 및 진행을 위하여 몇 가지 중요한 이니셔티브(1970년 초의 적십자회담과 남북공동성명 발표 및 1980년 초 이래의 정상회담 제의,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 및 20개 시범사업 실천방안 제의 등)를 취한 바 있으나, 대화 자체에 있어서는 대체로 대응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카. 정책은 현실에 비추어 타당하여야 하며 바람직(desirable)하고, 가능(possible)하여야 한다. 또한 그것은 조건성과 시의성(opportune timing)에 적합하여야 하며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현실여건에 맞지 않고 또한 그것이 타당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는 것이며 또한 적절한 기회를 잡지 못하고 미리 조산하던가 또는 시기를 놓치면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이다.
타. 또한 전략은 주도권(이니셔티브)을 잡는 것이 중요하며 같은 안이라도 상대방이 선수(先手)를 써서 자기의 안으로 제기할 때 이를 선뜻 수락하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아 측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기 쉬운 것이니 비유컨대 바둑에서 선수를 중시하며 또한 요점을 선점하는 것이 승리의 요체인 것과 같은 것이다.
파. 대화교섭에 있어서는 기본적 본질적 문제에 대한 확고한 의연성과 지엽적 기술적 문제에 대한 유연성, 탄력성을 겸용하여야 하며 비록 동 민족 간의 남북대화라 하더라도 국제관계에 있어서 사용되는 모든 외교교섭 수단을 충분히 구사하여 유리한 교섭진행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6. 제3단계
대체로 1960년대까지를 남북한관계의 제1단계, 1970년대를 제2단계로 본다면 1980년대 전반 특히 남북대화가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는 현 단계는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제3단계의 시초 또는 제3단계로 이행하는 과도기라고 보는 것이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즉 남북한 간의 세력대비에 있어서 남한의 우세가 점차 명확하여지고 북한이 아직 우세를 보유하고 있는 군사 면에 있어서도 미군의 계속 주둔으로 군사모험의 감행이 극히 어려운 형편이며, 마지막으로 1988년까지의 남한 국내사태의 불안정에 유일한 요행수를 기대하고 대화와 내부교란을 병행하고 있는 북한의 애매한 태도가 이 과도기를 특징지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의 국내정세가 설령 다소의 불안정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지혜와 성숙성으로 이를 극복하고 1988년의 국제적 대행사인 서울올림픽을 무사히 성공적으로 끝마쳤을 때에 남북한의 세력균형은 결정적으로 북한에 불리하여지며 그러한 정세 하에서 북한은 수세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때까지 북한이 통일문제, 남북한관계에 있어서 공세적이니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첫째, 북한사회는 철통같은 통제와 절대적인 폐쇄정책으로 남한이나 기타 외부세력의 침투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 둘째, 이에 반하여 남한은 개방사회로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각 분야에 분열과 모순이 그대로 노출되어 이를 조작, 교란할 여지가 많다는 판단, 셋째, 군사적으로 북한이 우세하며 공격을 위하여 편성, 장비, 배치되어 있고 특히 수도권이 휴전선에 근접하여 있다는 지리적, 전략적 조건으로 전격 점령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하시라도 미국이 철수하고 남한이 내부가 혼란하게 되는 사태가 야기될 때 이를 이용, 무력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괴의 기본 전략인 미군의 철수, 남한내부 교란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북괴의 전략은 근본적으로 현실성, 타당성이 없는 것이며 1990년대에 들어서 남북한의 전반적 세력대비가 압도적으로 불리할 때에 북한의 종래 기본전략은 저액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고 그야말로 순전히 하나의 망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7. 건의
이때까지 남북한관계 및 통일문제에 대하여 많은 연구와 의견이 제시되었으나 대개는 북한의 의도에 대한 분석평가 또는 앞으로의 북한의 정세 및 태도 추측 그리고 한반도 주변 열강의 태도 및 상호관계 등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이 정부의 정책으로서 수립되어 있으며 또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20개항 시범사업 제시가 있고 또한 남북대화 운영진행을 위하여 수시 관계기관에서 전략협의 및 회담진행에 관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남북한관계 제3단계로의 이행을 앞두고 북한의 정책전환이 불가피하게 되는 시기에 있어서 이 변화가 우리의 목적과 이익에 합치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함이 절실히 요망되는 바 이를 위하여는 통일 및 남북한대화에 관한 전략기본계획(strategic master plan)을 작성하는 것이 긴요하다.
이 전략기본계획에 있어서는 관련된 모든 정세와 요소가 분석, 평가되고 그것들이 아국의 기본목표에 비추어 이용되고 동원되는 방법과 모양을 규정하며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모든 요소를 상호관련 시키고 남북 간의 대화 추진과 외교적 조치를 종합 조정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책이 시기적으로 배열되어 적시에 적절한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그 효과를 확실케 하고 또한 극대화함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단기 ‧ 중기 ‧ 장기의 세 시기를 구분하고 편의적으로 현재로부터 1988년까지를 단기, 1989년~1995년을 중기, 그 후 2000년까지를 장기로 배분하고 각 시기의 정세를 가급적 예측하며 그 정세에 타당한 전략기본계획을 작성하는 것이다. 한편 예측한 정세가 그대로 맞지 않을 경우가 물론 있을 것이므로 항시 변천하는 정세에 감하여 기본계획을 재검토, 수정보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정세전망의 원안과 대조가 되는 한두 개의 다른 예측안을 준비하여 이에 상응한 예비계획(contingency plan)도 미리 준비하여 두면 예측하지 못한 돌연한 정세변화에 따른 경악과 당황을 면하고 항시 유효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기본계획이 미리 준비되어 있으면 남북대화의 운영 ‧ 진행에 있어서 더욱 자신을 가지고 공세적 기동(offensive maneuver)과 이니셔티브를 취할 수 있으며 아국의 기본목표 달성을 위하여 모든 가능한 역량을 동원할 수 있고 사태발전에 수동적으로 고심 분투하거나 기정사실에 직면하게 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이 막연하고 이를 달성하려는 구체적 계획이 없으며 이 계획을 시행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initiative)가 없을 경우 우리는 상대방인 북한이나 또는 주변 열강들의 이니셔티브에 뒤늦게 대응하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으며 결국 우리의 의도와 이익에 반하는 사태에 당면하게 될 것이다. 공백은 채워지는 것이며 그 공백을 우리가 채우지 않으면 남이 채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