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한으로 떨며 대전행 버스에 올라 혼미한 상태로 우리 마을 근처에서 내렸다. 도로가에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나는 주사를 맞은 쇼크로 생각하고 죽는 줄로 알았다. 육촌동생 응만이가 뛰어와 “형! 왜 이래.” 나를 업고 집에 왔다. 한여름에 두꺼운 이불을 덮고 한동안 잠이 들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일어나보니 살아 있었다. 허벅지를 꼬집어보니 아프다. 확실히 나는 살아 있었다. 지옥의 문턱을 갔다 온 심정이다.
이튿날 청산행 버스를 탔다. 몸이 시원찮은 나를 혼자 가게 할 수 없다며 응만이가 따라나섰다. 응만이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바보처럼 보일만큼 마음이 착하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며 인정이 많고 의리의 사나이다.
청산에서 화성리로 향하다가 원두막에서 잠깐 쉬었다. 그 사이에 응만이는 잠이 들어 잠꼬대를 한다. 얼마나 피곤하면 잠꼬대까지 할까. 안쓰럽다. 지금도 응만이를 만나면 잠꼬대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화성리로 항하며 ‘형제는 용감하였다.’며 지친 몸을 달래며 걸었다.
초등학교 동창들이 돈으로 마련한 것을 문식이네 집에서 수합하였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20여일 만에 등록금이 75만환이었는데, 113만환을 벌었다. 이것이면 2학기 등록을 하고 한 학기동안 하숙까지 할 수 있는 돈이다. 천지개벽의 기적이 1960년 여름에 일어난 것이다.
기적의 주인공들은 동이초등학교 13회 동창들이 일익을 담당했다. 동무들아! 나는 너희들의 고마움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고 열심히 살았다. 이 자리를 빌어 옥천군, 영동군, 보은군민들과 스승님, 보은보건소 의사선생님들, 여관집 아줌마, 응만이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학비를 벌려고 비누장사를 하는 것을 보고 숙부님이 보리쌀 두말을 가져오셨다.
“비누장사가 의외로 잘되어 학비를 넉넉하게 벌었습니다. 이것 없어도 충분합니다.” 나는 집안의 누구에게 한 푼도 도움을 받지 않았다. 받지 않은 것보다 못 받았다. 나는 숙부에 대해서 섭섭함이 많이 남아 있어서 받기가 싫었다.
셋째형은
“야! 너 어른이 주는 것을 어떻게 매정하게 도로 갖다 주니?”
“형, 그것 받았다가 평생 큰 빚은 지게 돼.”
맞는 말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선생을 하며 삼청동에 살고 있을 때에 숙부님이 오셨다. 말씀인즉슨 큰 형이 숙부의 명의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갚지 않아 소의 뿔에 차압딱지가 붙었으니, 네가 갚아달라는 것이다. 농사일에, 부역에 그렇게 부려먹고 연필 한 자루도 안 사준 숙부이다. 나는 숙부께 조용히 말씀 드렸다.
“숙부님! 죄송합니다. 그럴만한 현금이 없는데요. 언젠가는 형이 갚겠지요.”
숙부님이 내려가실 때 셋째형이 서울역에 가서 차표를 사드리고, 배웅하고 왔다.
“형! 그것 봐. 그때 보리쌀 두말 받았더라면 평생 빚이 되었을 거야.” 하니 형은 “그랬을 것 같다.”고 했다.
고려대생들의 4.19 참여
1960년 4월 18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에 있는 5개 대학의 총학생회장들이 동시다발로 데모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무산되어 결국 고려대 단독으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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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로 나선 고려대 학생들 이것이 민주화를 위한 4.19혁명의 시작이었다 [출처 ; 현이의 이바구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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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당 정권을 좌지우지하던 국회의장 이기붕이 이승만 대통령보다 더 미웠다. 나는 이기붕을 없애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생각하여, 자살테러를 결심하였다.
영락성경락부 유병춘 국어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이기붕을 죽이면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겠느냐? 현 상태라면 제1 제2의 이기붕이 등장할 것이다. 힘을 길러라.”
선생님의 충고에 따른 것이 잘한 일이다.
4월 18일에 고려대학은 새내기 신입생환영회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안암의 언덕에 울려 퍼졌다. 품속, 책가방에 간직했던 대자보가 캠퍼스 안 곳곳에 놓여진다. 빗자루를 매어 현수막이 급조되었다.
도서관에는 중앙운동장으로 모이라는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생들이 대운동장에 운집하자마자 바로 트럭 한대가 교문을 통과했다. 트럭 위에서 <고대>라고 새긴 수건이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에게 뿌려진다. 우리는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맸다. 이세기, 이기택 등 학생회장들이 단상에 올라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하자!”고 소리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스크럼을 짜고 교문을 나섰다.
그 당시에는 정보과 형사들이 교내에 상주하고 있어 누가 학생인지, 형사인지 알 수가 없어서 비밀이 새지 않도록 보안조치를 철저히 해야만 했다.
우리는 안암동 로터리에서 경찰과 부딪쳤다. 최루탄이 난무하고 소방차에서는 붉은 물대포를 무차별로 쏘아댔다. 붉은색의 물은 데모에 가담한 자를 색출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몽둥이와 돌멩이로 대응하며 경찰의 저지선을 밀어붙였다.
나는 제기동으로 빠져 동대문 쪽으로 향했다. 시청 앞의 국회의사당이 우리의 최종 결집지다. 의사당 앞에 도착한 학생은 3000명 중 1,500명 정도였다. 우리는 경찰에 완전히 포위되었다. 맨 앞에 일반경찰들이 포진하고 그 뒤에는 기마경찰, 빅차, 트럭, 소방차 등으로 우리 고려대학생들을 겹겹이 둘러쌌다. 늦게 도착하는 학생들이 속속 도착하여 학생수가 점점 불어났다.
우리는 목이 말랐고 배가 고팠다. 수많은 바리게이트를 뚫으며 경찰봉에 얻어맞고 시청앞에 도착했으니 기진맥진한 상태다. 조선일보 옆 아카데미극장 종업원들이 양동이로 수돗물을 날라다 주었다. 이 종업원들을 데모대에게 물을 제공했다는 죄로 모두 파직되었다가 대통령이 하야한 후 복직되었다.
경찰포위망 밖의 시민들은 건빵, 과자, 깨지지 않을 음료수를 사서 공중으로 던져주었다. 수도 없이 날아들었으나 우리의 갈증과 허기를 달래기에는 부족하였다. 그분들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4.19혁명은 온 국민이 하나가 된 의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