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려대에 입학하여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저녁도 못 먹고 배가 고파 수돗물만 꿀꺽 꿀꺽 마셨다.
누가 어깨를 툭툭 쳤다. 대화할 수 있는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너, 국문과지. 나도 국문과야. 너 참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친구는 마산고등학교를 나와 고려대에 와서 학교 앞에서 하숙을 한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저녁을 먹고 와보니 그 자리에 꼼짝도 안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 김해룡이야.”
“나는 김응모야.”
“너, 커피 한잔 할래?”
“커피 사주려면 가락국수를 사다오.”
“너, 저녁 못 먹었구나. 가자.”
학교 앞 분식집에 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대학가의 응식점은 양이 많다. 다른 곳은 잘 몰라도 고려대 앞 음식점은 매우 친절하다. 가락국수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살 것 같다. 그때의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배고픈 사람에게 식사대접을 하는 것보다 더 큰 보시(普施)가 이 세상에 있을까?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며 대학생활을 즐겼다.
이 친구도 가정교사를 전전하며 겨우 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을 마치고 군에 자원입대하려고 휴학을 하고 고향 마산으로 내려갔다. 자원입대도 힘들던 때라, 자원입대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친구는 학비를 마련하려고 마산 시내에서 가정교사를 하고 있었다.
여름방학 때 마산에 가서 처음으로 친구의 어머니, 형, 동생을 만났다. 큰 여동생이 참하고 예뻤고 목소리는 은방울이 굴러내리듯이 고왔다. 나는 한눈에 반했다. 그러나 알거지인 나에게 누가 딸을 주겠는가? 나는 속마음을 귀띔도 못했다.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는데 나는 자신의 주제를 생각하고 수줍어서 청혼도 못한 것이다.
우리는 친구의 집에서 마산시로 와서 배를 타고 마산의 가포해수욕장으로 갔다. 탈의장이 없던 때라 숲속에 가서 수영복을 갈아입고 난생 처음으로 바닷물에 들어갔다. 충청북도 태생이니 바다는 나에게 신비하기만 했다.
바닷물이 정말 짠물인지 확인하기 위해 입에 대어 보았다. 그 많은 물이 짠 것도 신기했다. 친구가 바닷가재 비슷한 것과 이름 모를 해산물을 사주었다. 이런 맛을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표현하리라. 신학기가 되어 마산에서 친구가 올라왔다.
“이 돈 받아. 내 등록금에는 턱없이 모자라니 네 등록금에 보태어 써라. 아무래도 군대나 가야겠다.”
등록금이 없으면 피난처는 입대하는 것이다. 나는 이리저리 변통하여 해룡이의 등록을 마치고 영수증을 친구에게 주었다. 대학친구들은 명훈이와 해룡이의 등록금을 해결하는 것을 보고, “너는 아스팔트에 씨앗이 떨어져도 싹이 나고 싱싱하게 자랄 수 있는 지독한 놈이야.”라고 평가한다.
해룡이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네 학비에 보태서 쓰라고 했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은 안했다. 이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지만 모든 스포츠에 만능이다. 탁구, 당구, 배구, 축구, 테니스 등 모두 잘한다. 특히 테니스는 프로급이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국문과는 친목체육대회를 하였다. 나는 키가 작으니 아예 후보 선수에도 끼어주지 않는다. 나는 늘 음료수나 들고 다니는 콜라보이(cola boy), 볼보이(ball boy)이다.
고려대는 신입생에게 체력검사의 일환으로 3km 운동장을 달리게 했다. 그때는 문과대, 이과대를 합쳐 문리과대학이라 했다. 나는 문리과 대학에서 1등으로 골인하였다. 축구부, 럭비부 선배들이 뛰어와 같이 운동을 하자고 한다.
“고학생인데요. 시간이 없어서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선배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나는 국문과 선수들에게 ‘......짜식들, 운동은 키로만 하나......’
후보에도 못 낀 나는 불만이 많았다. 해룡이가 배구에 뛰어보라고 했다. 나는 킬러는 못되지만 후위에서 리시브는 잘하며 내 서브는 가공할 정도로 강하여 서브 득점을 하니 내 실력을 인정한다.
친구가 군대 복무 중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백방으로 노력하여 파병을 모면하게 하였다.
친구가 군대복무 중 엉덩이에 악성종기가 나 창동의 육군병원에 입원하였다. 나는 아내가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들고 의정부행 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는 직행이기 때문에 중간에 서지 않는다고 한다. 차장 아가씨에게 사정하였으나 중간에 세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나 여기서 뛰어 내릴 거요.”
“마음대로 하세요.”
고속으로 달리는 직행버스의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버스가 달리는 방향으로 뛰어가다가 앞으로 넘어졌다. 버스가 저만치에 급정거를 하기에 나는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보였으나 괜찮지가 않았다. 손바닥과 팔뚝이 찢어지고 문드러져서 피가 낭자하다.
어려서부터 무모하게 용감한 것이 나의 큰 병이다. 내 생각에도 정말 못 말리는 사나이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붕대를 칭칭 감고는 면회를 갔다. 해룡이는 “죽으려고 환장했냐? 아니 직행버스에서 뛰어내려. 네가 무슨 황금박쥐라도 되냐? 넌 지나치게 용감한 것이 고질병이야.”
가지고 간 음식을 여러 군인환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결혼 후 꽃으로 장식한 해룡이의 승용차는 남산을 한 바퀴 돈 후 온양관광호텔로 향했다. 친구들 몇이 승용차로 신혼부부의 뒤를 따랐다. 미친놈들이다. 친구 신혼여행지까지 따라가서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참으로 짓궂은 친구들이다. 따라간 친구들은 여관에 들어가 온천욕을 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상경하였다.
친구의 어머님은 철저한 유교가문에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양반 어르신이다. 무남독녀로 자란 신여성인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하늘처럼 받든다. 과묵한 친구 부인은 말없이 순종한다. 친구가 형제자매를 위하여 경제적으로 돕는 것을 옆에서 내조하는 최신형 요조숙녀이다. 이 친구도 하늘이 맡기어준 자기의 사명, 형제자매를 돕는 일을 즐겁게 실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