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각 후보의 문제점과 약점으로는 김 후보는 조직과 자금의 열세, 바 ㄱ후보는 공천 탈락 후에 탈당하고 여러 정당을 거쳤다는 점, 나는 농촌 실정을 모르는 귀죽이고, 고자세라느 ㄴ점, 그리고 여당 조직 내부에 있었던 공천후유증 등이 거론되고 있었다.
선거에 임해 보니 예상치 못했던 여러 문제점에 부닥치게 되었다. 민주공화당은 방대하기는 했지만 능동적인 활동태세가 되어 있이 않아서 새로운 인물을 기용하여 조직을 보강해야 했다. 과거 야당에 가까웠던 능력 있는 인물로 최남수, 김우인, 이상태, 사무처요원으로 유재현 씨, 그리고 청송에서는 박명준, 박영규, 조용걸 씨등이 선거운동의 핵을 이루었으며, 씨족, 친인척으로 문석봉, 강성기 씨등이 동참하게 되어서 선거중반까지는 조직이 잘 정비되었다.
야당성이 강했던 대부분의 핵심참모들은 관과의 협조를 기피하고 여당 프리미엄으로 생각돠고 있는 관의 지원을 우리 힘으로 이긴다는 각오가 대단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뛰고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별로 큰 변화가 일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는 국가발전에 필요한 일꾼을 뽑겠다는 것보다는 사적인 관계, 목전의 사소한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 중에서 씨족과 인척관계, 지연과 학연, 청탁 그리고 후보자들의 인상 등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었으며 입후보자의 정견이나 경륜, 그리고 사생활 등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음식물 제공, 선거운동비, 당원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위장살포된 돈은 위력을 발휘했다. 선거공약 특히 지역개발에 대한 공약, 예를 들어 상수도 시설, 도로개설, 교량 가설, 저수지 건설 등 지역주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공약들은 여당의 큰 무기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지방사업에 관한 요망 중에는 예산 문제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도 많았다.
나로서는 순진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속이는 일은 하지 않았으므로 이로 인해 참모들과 의견차이가 많았다. 참신한 정치인이 되려면 정직해야 된다고 나는 믿고 싶었는데, 이것이 선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직 부탁을 위시한 여러 청탁들이 끝없이 들어오는데 참모들의 주장에 밀려서 불가능하게 보이는 청탁이라고 안 된다고 잘라서 거절하지 않고, 노력해 보겠다, 또는 고려해보겠다는 등의 막연한 표현 방법을 사용하기로 양보하게 되었다.
선거브로커, 즉 선거 때만 되면 한몫 하는 사람들이 자지가 몇백표, 몇천표를 좌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요구조건을 내세우는 데는 분통이 터지고 괴롭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없는 것이 고민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선거 분위기를 혼탁하게 만들고 타락시키는 것이고, 아직도 이런 행위는 계속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빠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자금 소요가 상식선을 넘어 높은 것은 우리나라 선거와 정치 전체에 큰 부담이 되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좋아지지 않고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큼 문제이다. 나는 돈으로 표를 얻는 선거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참모들도 나의 뜻을 같이 해서 비교적 적은 돈으로 선거에 이길 수 있었다.
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10대 선거에 이르기까지 나는 합동강연회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거에서 돈 많이 쓰면 정치가 나빠지고 국가 발전에 장애가 됩니다. 여러분이 요구하는 기부나 헌금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자면 나는 한국은해 금고를 털 수밖에 없습니다. 돈 많이 뿌리는 사람을 경계 하십시오. 만일 당선되면 선거에서 쓴 돈을 보충하고 다음 선거를 위해서 돈 준비하니 옳지 않은 일을 하게 되고, 결국 손해 보는 것은 바로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선거 전날 저녁에 밤늦게까지 문 열어놓고 개잡아 매놓고 불 켜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듣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돈봉투를 슬그머니 놔두고 가면 몇장이 들어 있나 세어보고, 또 다른 후보가 보내는 걸 기다린다고 칩시다. 옆에서 잠자는 척 하고 있는 아이들이 조용히 보고 있을 겁니다. 우리 아버지 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아이들이 커서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아이들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돈 몇 만원에 양심 저버리고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일은 하지 맙시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참모들은 강하게 반대했지만 나는 국민 계몽적 차원에서 말해야 되겠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근래의 상황을 보면 큰 효과가 없는 것 같이 느껴져서 실망하고 있다.
7대 선거 때 박정희 총재의 지시가 민주공화당 후보들에게 내려졌다. 그 내용인즉 선거기간동안 산림의 도벌을 묵인하도록 관에 압력을 가하는 후보자는 처벌하겠다는 것과 합동강연회에서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산림을 보호해야 하며 도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연설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농촌에서는 연탄이 잘 보급되고 있지 않아서 난방, 취사에는 나무를 때고 있었다. 연료림을 지정해서 그곳에서만 벌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지만 무차별로 나무를 베는 사람도 있었고, 선거 때를 이용해서 업자들이 도벌을 하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지시가 내려왔던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신념과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산에는 나무가 꽉 들어차 있어 한국이라면 산이 헐벗은 나라라는 좋지 않은 인상을 씻을 수 있게 되었다.
산림녹화를 위한 박 대통령의 열성은 대단했다. 외국여행에서 돌아와 귀국 인사를 하면 비행기 위에서 볼 때 우리나라 어느 곳의 산이 헐벗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외국에서 귀국할 때마다 비행기 창가에서 열심히 밑을 내려다보면서 마치 산림청 직원처럼 산의 녹화상태를 주의 깊게 점검하는 것이 습관이 되다시피 했다.
합동강연회는 후보자들이 정견을 발표하고 유권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가장 종요한 선거운동방법으로 되어 있었다. 근래에 와서는 후보자들이 청중을 사전에 동원하고 박수 치는 것도 지휘, 조정하며 후보자들이 운동원을 빼면 순수한 유권자들은 얼마 안 되고 뒷전에 밀리는 것이 새로운 선거풍습처럼 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합동강연회의 기본취지가 살아 있었다.
첫 합동연설회를 하고 난후 참모들과 평가회의를 했는데, 내용도 좋지만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것 같으니 좀 더 목소리의 고저을 강조하고 제스처를 쓰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좋겠다는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일본의 정치학자가 쓴 선거전략책을 보니 연설회는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득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고, 연설을 듣고 난 후에 투표할 후보자를 결정하거나 변경하는 일은 청중의 약 3%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농촌 실정에서는 연설 전후에 막걸리나 소조 한잔 하고 집에 돌아갈 때쯤 되면 후보자의 포부나 정견이 어떻고, 하는 것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고 풍채 좋더라, 말 잘하더라, 욕 많이 하더라 하는 정도의 막연한 인상만 남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이런 대규모 연설회보다 소수와 무릅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