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친구에게 또 하나의 큰 시련을 주셨다. 위암이다.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좋다는 약을 구하여 복용하였다. 수술 후 5년을 무사히 넘기면 된다는데 금년까지가 고비이다. 위암수술을 받았으니 조금씩 자주 식사를 해야 하고, 그 좋아하던 소주는 한잔도 못 마신다.
항상 친구의 곁에는 부인이 정성껏 마련한 과실과 간이음식이 마련되어 있다. 건강을 지탱하고 있음은 순전히 아내의 정성이다.
친구가 회갑을 맞자 가까운 친척과 명훈, 해룡, 우리 부부만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우리는 마음껏 축하했다.
나는 수시로 전화하고 때때로 방문하여 안부를 확인한다. 해룡, 명훈, 나는 부부동반으로 네 쌍으로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출판사에 들렀다가 가게에 들렀더니 창자협찹증으로 3일간 입원하였다가 퇴원하였다고 한다. 전보다 얼굴이 야윈 것을 보니 불길한 예감이 스쳐간다. 일주일 후에 다시 들러 건강을 확인하고 왔다.
그런데 친구 부인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급히 가게로 오라는 것이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가게에 도착하니 위암이 재발되어 백병원에 입원하였다. 우려하였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나는 택시를 타고 백병원으로 급히 달려갔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배 아픈 것 나았어?”
“응, 창자에 암세포가 조금 남은 모양이야. 잘라내면 된대.”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 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 별 것 아니구먼.”
“목요일(2005년 10월 27일)에 수술하기로 했어.”
복개하고 보니 암세포가 전신에 전이되어 수술도 못하고 다시 봉함했다. 가슴이 찢어진다. 눈물도 말랐나보다. 길어야 앞으로 1년, 짧으면 3개월이 시한부인생이다.
“...... 기적이 일어나야 하는데, 기적이 일어나야 하는데......”
친구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요, 나의 큰 아픔이다. 불쌍하여 참을 수가 없다. 온 세상이 온통 먹구름으로 덮인 것 같다. 해룡이, 명훈이에게 전화로 한익이의 수술상황을 말하는데, 목이 메어 말을 못하겠다.
“...... 한익아, 너는 살아야 해! 너는 산전수전을 다 겪었고, 심지어 공중전, 지하전까지 다 이겨냈잖아. 이번에는 암세포와 싸워 이길 차례야. 너는 반드시 이길 거야. 나는 확신해. 너의 그 강인한 의지 앞에는 암세포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우리 앞에 암세포 정도야 한 주먹 감이야. 그렇지 한익아......”
“...... 하나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저를 도와주십시오. 친구를 살려주십시오......”
일반병동으로 옮긴 후 아내와 함께 문병을 갔다. 수술이 잘 되어 다행이라고 안심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가슴이 찢어진다. 내 기도에 다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기대는 것 외에는 내가 도울 일이 없구나.
암에 청국장이 좋다고 하여 담양청국장을 사고, 집에서 담가먹는 것이 더 좋다고 하여 아내는 시골에서 콩을 사왔다.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 중인 친구를 방문했다. 친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안심하고 있다. 처음 수술할 때 창자의 암세포를 발견 못한 의사를 원망도 한다. 다만 기운이 점점 쇠잔해지고 눈이 침침해진다고 한다. 독한 약을 복용하니 미각이 상실되어 마치 나무껍질을 씹는 것처럼 입맛을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전보다 얼굴이 더 야위었다. 가슴이 메어진다. 청국장의 효험이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친구야! 빨리 건강하여 우리 잘 먹던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해야지.”
“응, 그래. 체중도 늘리고 기운도 회복해야 되겠어.”
자기가 시한부인생으로 죽거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으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친구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이 회고록의 교정을 위해 출판사에 가는 길에 친구의 가게에 들렀더니; 친구는 이런저런 재단업무를 지시하는 등 한결 달라진 모습으로 직접 일을 챙기고 있었다. 2006년 초가을 접어들면서 친구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너무도 놀랍고 또 반가웠다. 내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읍하였다.
대학 삼총사 박영훈, 해룡이, 명훈이, 나는 자칭 대학 삼총사라 한다. 명훈이는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사업의 여의치 않아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았다. 유유상종이라더니 가난한 놈들끼리 친구가 되었다.
친구는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음악적 소양을 길러 교회 성가대를 지휘할 만큼 수준급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에도 조예가 깊어 학부 때 학교 신문에 소설을 등재도 하고 문학지에 투고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구가 쓴 소설의 특징은 등장인물 중 누군가는 죽게 된다.
명훈이는 ROTC1기이다. 그런데 등록금이 없어 휴학을 하겠다고 한다. 휴학은 곧 배움의 중단이요, 설령 복학한다고 해도 고생스럽게 받은 군사훈련이 무효가 된다.
국문과에는 부유한 친구들이 많았다. 신사복에 넥타이를 매고 번쩍이는 구두에 머리는 기름을 짜르르 발라 파리가 앉으면 낙상할 정도이다. 그때의 다방 종업원(다방레디)은 일류급 미녀였다. 지금은 영화배우이거나 룸살롱에 미인이 많다고 들었다.
“어느 다방 누구는 내 거니까, 너희들 건들지 마.”
부유층 친구들의 대화이다. 내가 상상도 못하는 딴 세상의 이야기다. 먹을 것, 입을 것, 숙소, 학비를 벌며 도서관이나 찾는 가난뱅이들과는 사는 세계가 달라 외계에서 온 친구들 같다. 고급공무원, 기업가, 국회의원의 자녀들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