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모든 용품 즉 군복, 군화, 철모, 소총 등은 내게는 꼭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특히 군화는 커서 헐렁헐렁 한다. 입소하여 천막 막사로 들어가니, 양쪽에 마루가 있고 가운데가 통로이며 뒤에는 관물함이 있어 사물을 정리하게 되어 있다.
훈련소의 밥은 화기 냄새가 확 풍기어 비위가 확 상한다. 모두들 먹지 못한다. 돈을 가져온 훈련병들은 주보에 가서 빵이라도 사먹건만 나는 무일푼이다. 제식훈련을 거쳐 총검술 단계에 이르니 밥이 양에 차지 않아 배가 고프다. 국에 말아 빨리 먹어야 간에 기별이 간다.
국가에서 규정한 정량을 주면 배불리 먹을 것이나 훈련소장, 연대장, 취사병이 떼어먹으니 모자랄 수밖에 없다. 부정부패의 온상은 군대 같았다. 참으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다.
일주일에 고깃국을 한번 주게 되었다. 고기는 하나도 없고 고기기름 방울만 둥둥 떠다닌다. 소나 돼지가 개울을 지나간 국이라 하여 우리는 ‘도레미탕, 황우도강탕, 양돈도강탕’이라고 불렀다. 1954년 한미합동급식위원회에서 규정한 군인의 1일 열량 3800칼로리에 턱없이 모자란 열량이다.
훗날 입대한 아들의 면회를 갔다. 커다란 그릇에서 먹고 싶은 대로 밥을 떠다먹는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오늘날은 군인의 비만을 줄이려고 웰빙짬빰을 급식한다니 좋은 세상이 온 것이다.
이가 많아 이 잡는 시간을 줬다. 그러나 그 많은 이를 언제 다 잡겠는가. 손톱으로 이를 죽이면 옷이 피범벅이 되므로 잡아내어 종이에다 죽여야 했다. 먹은 그릇은 수도도 부실하고, 휴지도 없으니 손으로 대충 담아야 하니 불결하기가 그지 없었다. 옷이 찢어지면 대충 꿰매야 했다.
훈련 중 쉬는 시간이면 몇 명이 막간을 이용하여 노래를 부르게 했다. 나는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불렀다.
바람이 쌀쌀 부는 논산훈련소
오늘도 씨부랄 것 훈련이라네
언제봤던 원수라고 이다지도 볶느냐
모여라 헤쳐라 날을 보낸다
내 노래 가사에 훈련병 조교 모두 깔깔대고 웃는다.
나는 초등학교를 열 살에 들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입대하였으니 다른 훈련병들보다 나이가 3~5세 정도 많았다. 더욱이 일류대학 졸업생이 무슨 죄가 있다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조교들은 트집을 잘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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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대 훈련장 수도에서 물을 마시는 훈련병들 [출처 ; 논산문화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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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야! 대학 나왔으면 다야.”
주먹이 날아온다. 까닭 없이 구타를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
“....... 새끼, 밖에서 만나기만 해봐라. 그때는 네 제삿날이다......”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다.
목욕탕에 갔다. 훈련과정에 목욕하는 교과 과정이 있나보다. 1개 중대가 모여 1개 분대씩 탕에 풍덩 들어가자마자 ‘휘익~’ 호각소리가 난다. 황급히 나와야 한다. 목욕도 시켰다는 훈련기록을 남기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개판이다.
이따금 버터가 나온다. 그 기름기를 종이도 없이 손으로 닦아야 했다. 물이 귀하여 세수도 못할 지경에 식기를 씻을 수 없어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여 나는 생손을 앓게 되었다. 멀쩡한 손가락이 화농이 되니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생손앓이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아픔이요, 고열을 동반한다. 의무대에 가니 빨간약만 발라준다. 손가락이 곫아 터질 지경이니 항생제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속수무책이다. 밤에는 오한이 나며 몹시 아팠다. 총을 잡기도 곤란하여 훈련을 받기가 생지옥 같았다.
일요일에 교회에 갔다가 군목에게 손가락을 보였다. 군목님은 의무장교에게 편지를 써주었다. 군목은 대위이니 소장까지 자유로 만날 수 있어 중요보직에 속한다. 의무실에 다시 가서 편지를 보이니 의무병의 태도가 일변한다.
“어, 너 생손 앓는구나. 이거 되게 아픈데, 너 고생이 많구나!”
수술 칼로 째어 피고름을 짜고 약을 발라주고는 항생제까지 준다. 그날 밤은 편안히 잤다. 국가에서 보급되는 의약품은 모두 어디로 잠적했을까?
병사들이 와서 영어시험을 봤다. 중3 정도의, 내용이다. 내 사전에는 2등은 없다. 나는 1등을 하겠다고 열심히 보았다.
흔히 서울지역 병력이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면 훈련소 조교로 차출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훈련소 조교는 매우 힘든 직책이다. 훈련병들 중에는 조교로 떨어뜨릴 시험으로 미리 짐작하고 일부러 틀리게 쓴 사람들도 있었다. 배출대에 가보니 이 시험이 카투사((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 KATUSA)) 선발시험이었다.
훈련기간 동안에는 여자라고는 구경도 못하였다. 처녀는 고사하고 아주머니 할머니도 못 보았다. 훈련을 마치고 배출될 때 여자만 눈에 띄면 모두 환호성을 울렸다. 나는 훈련소에서 여자친구의 편지를 받고 보면 항상 개봉이 되어 있었다.
여자친구(현 아내)는 편지에 자기의 입술자국을 선명하게 찍어서 보냈다. 이것이 조교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서신에도 비밀이 보장되지 않으니 훈련병은 인간 이하인 것이다. 자기의 여자친구에게 모욕을 주었다고 상관을 사살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고 최형호 일병이 이해가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