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미7사단에 도착하니 목욕을 시키고 온몸을 소독한다. 이가 많고 목욕도 못하는 한국군의 사정을 아나보다. 우리가 입고 온 낡은 군복은 다시 논산훈련소로 가져갔다. 깨끗한 내의와 새 군복으로 단정히 입었다. 미군의 병영생활은 한국ㄷ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같은 군대이면서 미군과 한국군이 이렇게 차이가 날까?
두 주일간의 훈련을 받고 미7사단 17연대 4중대로 배치되었다. 17연대는 기계화보병(機械化步兵)이라 하여 장갑차, M50캐리버기관총, M300기관총, M79, 45구경권총, M16소총 등이 있어 장비관리가 힘들다.
내 인사기록 카드에는 ‘신장미달, 체중미달’이란 고무인이 크게 찍혀있다. 한국의 평균키에도 미달이니 미군의 평균신장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장갑차 운전을 해야 하는데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문뚜껑을 닫고 프리즘을 총하여 운전을 할 때가 있다. 프리즘에 눈을 대면 엑셀레이터에 발이 닿지 않아 나는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갑차 운전도 배우지 못했다.
당시 한국군이 가진 M1소총은 2차대전 때 미군이 쓰던 것이어서 낡고 명중률이 낮다. 그러나 새로 지급받은 M16은 20발이 든 탄창을 장전하게 되어 있고 명중률이 높다. 모두 미국인의 키를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에 내 키에는 맞지 않는다. 자연 나는 사격의 적중률이 떨어질 수밖에.
제일 고역스러운 것은 보초 서는 일이다. 아무도 없는 철조망을 왔다갔다 하는 것은 무료하다 못해 짜증이 난다. 더욱이 못 견딜 것은 배우지 못한 미국사병들의 인종차별이다. 미군에게는 한국에서의 복무가 위험한 전방에 속한다.
미군들이 배나 비행기로 와서 밀폐된 트럭으로 한국의 전방에 배치되었으니, 한국의 60년대 초반 못사는 한국농촌만 본 것이다. 그러니 모든 한국인들을 미개인으로 알고 있다. 아니, 거지로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야외훈련에 나가면 음식쓰레기(짬방통)에 먹다 남은 음식물을 농촌아주머니들이 미군이 보는 앞에서 주워 먹는다. 보기에도 민망하다.
대포사격장에서의 일이다. 포를 사격하고 점심식사 후 오후에 사격을 하려니, 포탄의 파편을 줍는 사람들이 사격장에 하얗게 깔렸다. 그래서 오후의 대포사격이 중단되었다. <사격장의 아이들>이란 영화는 이러한 우리의 삶을 잘 반영하고 있다.
무식한 미군일수록 한국인을 더 무시한다.
“학교 어디까지 나왔니” 물으면 “12년”이라고 대답한다. 즉 고등학교 출신이란다. “Co2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우리나라 초등학생도 아는 것을 모른다고 말한다. “내 생각엔 너는 미국에서 거지였다.”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나는 모든 미국사람들은 맛있는 고기와 빵을 주식으로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미국 병사가 말하기를 자기는 광부인데 군대와서 처음 스테이크를 먹어봤다고 한다. 미국에서 주로 감자를 먹었다고 말한다. 미국도 생활수준이 천차만별인가보다.
우리 소대에는 고문관(바보)이란 별명을 가진 ‘칼’이라는 미군이 있었다. 미군에게 편지를 써달라기가 창피하니까 넌지시 나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한다. 내 짧은 영어실력으로 써서 주면 고맙다고 한다.
우리 소대장은 ROTC출신이며 한국정보에 밝다. 나는 소대장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카투사의 교육이 있으면 나보고 통역을 맡긴다. 한국군의 군사교육은 미국의 것을 그대로 도입하였기 때문에 통역에 별 어러움이 없었다.
그런데 정신교육인 정훈교육은 단어가 어려워 내 짧은 영어실력으로서는 통역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카투사들에게 나의 사정을 말랬다.
“지금으로부터 정훈교육이 있습니다. 정훈교육은 내용이 어려워 죄송합니다만 제가 통역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통역대신 춘향전을 읊을 것이니 바른 자세로 듣기 바랍니다.”
정훈장교의 말이 끝나면 나는 입담좋게 춘향전을 읊어나간다. 때때로 “알았습니까?” 하면 크게 일제히 “예!”한다. ‘알았습니까. 예’ 정도는 한국에 근무하는 미군들은 다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엉터리 통역병이요, 코미디언이다. 아니면 고도의 사기꾼이었다.
나는 일등병일 때 결혼하였다. 미7사단은 전방부대이므로 일일 외출증만 가지고는 후방에 속하는 서울에 올수 없었다. 그래서 미군 전용버스를 이용하면 서울 삼각지에 있는 미8군 본부까지 무난히 올수 있었다.
신혼인 나는 한 시간동안 일지라도 아내를 만나려고 서울을 자주 왔다. 만일 미군전용 버스를 놓치면 한국의 일반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다. 일반버스를 타면 포천 신북면에 있는 38교에서 한국 헌병이 검문을 한다.
앞문으로 헌병이 검문하러 오르면 뒷문으로 내려 숨었다가 다시 앞문으로 몰래 타야 했다. 서울 쌍문동에 오면 검문은 더욱 철저하다. 그래서 검문소에 닿기 전에 내려서 서울시내버스를 타야했다.이렇게 곡예를 하려면 버스기사와 안내양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이는 전혀 불가능하다. 마치 숨바꼭질 하는 것 같았다. 만일 헌병에게 적발되면 곧바로 되돌아와야 했다.
장거리행군(長距離行軍)은 100리(40km)를 행군하는 가장 고된 훈련이다. 장거리행군이 예고되면 체력보완을 위하여 몸조심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우선 수통 2개, 양말에 약간의 비누칠을 하여 발이 불어터지지 않게 하고, 완전무장의 중량을 가능한 한 줄여야 했다.
새벽 4시에 기상벨이 울리면 식당에 가서 빵 몇조각, 우유, 커피를 마시고 출발한다. 한 수통에다가 우유를 채우는 병사도 있었다. 도로 양편에 5m 간격으로 떨어져 행군한다. 경기도 운천을 거쳐 연천을 통과하여 38선을 넘어 한탄강을 끼고 도는 거리다.
나는 다리가 짧아 미군들보다 걸음이 느리다. 5m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시로 뛰어야 한다. ‘enemy(적이다)’라는 소대장의 신호에 따라 도로변 둑에 엎드려 사격자세를 취한다. 연천을 지나면 날이 훤히 밝아온다. 여름의 햇볕은 또 하나의 적이다.
땀을 닦으며 때때로 철모를 벗어 물을 퍼서 머리에 붓기도 한다. 일사병으로 쓰러져도 누구하나 부축하지 않는다. 아니 부축할 수가 없다. 쓰러진 병사에게 의무병이 약을 먹이고 쓰러진채 두고 행군을 계속한다.
나는 흑인이 백인보다 체력이 강한 줄로 생각했다. 제일 먼저 쓰러지는 것이 흑인병사고 다음이 우리 카투사이며 백인병사가 가장 강했다. 흑인들은 힘드는 일을 꺼리고 꾀를 잘 부려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를 악물고 무사히 귀대했다. 모두가 부대에 도착하면 앰블런스(ambulance)가 나가서 낙오자들을 싣고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