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걸을 때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언덕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누구야? 카투사는 아닌 것 같아.” 미군도 전우인데, 카투사가 아니라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가재는 게편이라더니 우리 카투사가 아니라니까. 안도의 한 숨이 나온다.
그는 나에게 편지를 써달라던 좀 모자란 칼(Call)이었다. 칼은 결국 훈련을 못 견디어 탈영하였다가. 영창에 갔다. 그 후 만나지 못했다. 불쌍한 것. 지금도 칼의 초라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유격학교에는 먹는 것이 문제다. C레이션에는 고기통조림, 콩통조림, 과자, 껌, 커피, 분유, 담배, 초콜렛 등이 들어있다. 2차대전 때 만든 것인지 마르고 비틀어져 먹기가 역겹다. 담배를 피우면 혀가 갈라져서 따끔따끔하다. 미군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잘 먹지를 못한다. 납작한 고체연료는 알약만한데 연기가 나지 않아 눈을 녹여 커피와 물을 끓여 마실 수 있다.
배는 고프지만 C레이션은 먹을 수가 없어 통조림을 바위에 놓고 개머리판으로 짓찧어버리기도 한다. 무언의 항변이다. 눈을 녹여야 세수를 하는데 거의 다 세수를 않는다. 몸을 은폐하기 위하여 얼굴에 위장크림까지 발라야 하니 굳이 세수를 할 이유가 없다 모두들 꼴불견이다.
한번은 우리가 움직이는 곳에 김밥과 C레이션을 맞바꾸는 아줌마가 있었다. 아줌마들은 김밥과 바꾼 C레이션을 내다팔아 이익을 남긴다고 한다. 우리 카투사에게 김밥 아주머니는 하늘이 보낸 구원의 천사다. 우리는 김밥을 씹지도 않고 우걱우걱 먹어치우니 살 것 같다.
산을 넘어가야 한다. 논이 많이 쌓여있어서 가까스로 오르다 미끄러지면 원위치이다. 조교들은 신발바닥을 특수하게 덧대어 짝하였기 때문에 잘 오른다. 눈을 헤집고 대검으로 땅을 파서 겨우 오른다.
산에 풀이 무성하여 눈은 허리까지 적신다. 야간훈련을 마치고 잠을 잘 때에는 풀을 헤치고 판초(우의)를 깔고 그 위에 에어매트리스를 깐다. 그리고 침낭 속에 들어가 우의로 감싼다. 총은 군인의 생명과 같으므로 끌어안고 잔다. 양말을 벗어 젖은 물기를 짜고 내의 속에 품고 자면 체온에 의하여 다음날은 포송포송 마른다. 신기한 일이다.
해가 뜨면 판초에 입급으로 얼었던 얼음이 녹아 찬물이 얼굴에 똑똑 떨어져 잠을 깨운다. 국사봉, 칠봉산이라던가? 한번은 캄캄한 밤에 큰나무 두 개를 의지하여 잠자리를 보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두 나무 아래는 산길 낭떠러지다. 가슴이 서늘했다. 잠결에 굴러 떨어졌다면 뼈도 못추릴 뻔했다. 참으로 명도 긴 놈이다. 하나님이 늘 내 곁에서 나를 보호해준다는 것을 뼛속깊이 느꼈다.
M16소총은 출구 끝이 네 갈래로 갈라졌다. 총알을 빼고 화약이 든 부분을 밀폐한 공포탄을 지급받았다, 그러니 이 공포탄을 연발로 쏘면 화약이 총구로 튀어 총구에 접근하면 화상을 입는다. 그래서 가장 적군인 한국군은 이동하는 대령 후미의 2~3명만이 끊어 공격하여 생포한다. 생포되었던 병사의, 말을 빌리면 카투사는 난로가에 편안히 앉혀 놓고 미군은 철장에 가두고 겨울에 찬물을 끼얹으,며 심한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마치 적군을 고문하듯 했다고 한다.
나는 무사히 유격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나의 왼쪽 가슴 명찰 위에는 대검이 가로 새겨진 표가 붙어있다. ranger이다. 나는 유격대 표시인 이곳에 형광등을 달아 잘 모이게 하고 싶었다.
502정보부로
미8군에서 차출명령이 떨어졌다. 나의 중대장은 “You are my man"(너는 내 사람이다.) 하며 서명을 하지 않아 8군으로 전출될 수 없었다. 급기야 미8군에서는 미8군 태평양지역정보부의 특수요원으로 특명을 내어 나는 서울에 있는 502정보부로 왔다.
정보부 정문에 이르니 미국 MP(헌병)와 한국 MP가 굳게 닫힌 정문에서 버티고 서있다. 카투사 헌병인 상병은 나를 안내하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며 반긴다. 알고 보니 고려대 후배였다. 그 후배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정보부가 낮설지 않았다. 고참 병사를 후배로 두었으니 나도 운이 좋은 놈이다.
영등포 대방동에 있는 502정보부는 한국의 육,해,공군 정보요원이 파견되어 있다. 이곳은 간첩, 귀순자, 납북되었다 돌아온 어부 등을 심문하여 북한의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다. 그들의 진술에 따라 평양이 거리, 건물, 도로망 등이 전문가들에 의하여 그려지고 기록된다. 김일성의 아침 식단까지 알아낸다고 한다.
심문하는 정보장교는 신사복을 입고 서로 담배도 피워가며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안에서 보면 자율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다 보이는 투명한 거울이 붙어 있다. 모든 정보를 수집하면 수용자들은 한국군이나 한국 경찰에 넘기거나 귀가조치 한다.
간첩 및 귀순자들의 수용소는 호텔처럼 편안하게 시설되어 있다. 공산사상이 골수에 박혀 있어 심문을 거부하는 간첩은 별도가옥에 따로 수용하고 누구도 접근하지 않고 기계로 음식을 들여보낸다. 말을 할 대상이 없으면 간첩은 미칠 지경에 이르러 다 말하겠다고 소리소리 친다. 이때 심문하면 술술 불어낸다.
수용된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든 대로 한식이나 양식을 제공하고 담배도 원하는 대로 다 준다. 약은 사람들은 담배를 두 갑씩 받고는 가드(guard : 수용소 안의 보초병)에게 선심을 쓰기도 한다. 수용소 안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미8군 1명과 카투사 1명이 무장도 하지 않고 곤봉만 차고 근무한다. 수용소의 낮은 담 안쪽에는 철조망이 이중삼중이고 탑에는 무장한 헌병이 실탄을 장전하고 감시하고 있다. 본부에서 수시로 탑과 수용소 안의 근무사항을 점검한다.
이곳의 미군들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 한다. 하루는 카투사 신병이 전입해왔다. 샤워를 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후 신고하라고 했다. 샤워장에서 벗은 미군을 보고, “야 이새끼 * 크다.”하니까 그 미군이 “임마, 말 조심해.”하여 깜짝 놀랐다고 한다.
“정 일병, 이곳이 무슨 부대인 줄 알고 왔어?”
“정보부로 알고 왔는데요.”
“그래, 정부부에 근무하는 미군이 한국말을 못한다고 생각했어? 멍청한 놈,”
우리는 군복은 입으나 명찰이 없고, 머플러를 착용하지 않는다. 외출할 때에는 사복을 입어도 된다. 귀대하면 고유번호가 인쇄된 표찰을 부착한다. 외출할 때는 정문 위병소에 맡기고, 귀대하면 다시 부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