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캐나다 여행 (44회)

플라밍고 춤과 <세빌랴의 이발사>

여름방학이 되자 나는 스페인 여행계획을 세웠다. 알리앙스 여행사에 알아보니 14박 15일의 스페인, 포르투칼 여행계획이 잡혀 있었다. 여행비도 아주 저렴하며 한국 돈으로 35만원 정도였다. 너무 싸다는 느낌이 들어 백원기 교수에게 같이 가자고 권유하여 함께 신청했다.

저녁 7시경에 출발한 알라앙스 관광버스에는 운전기사가 두 사람이 타서 밤에는 3시간 씩 번갈아가면서 운전했다.

프랑스 안에서 두세 번 휴게소에서 정차했다가 이른 새벽에야 페레네산맥을 넘어갔다. 날이 밝아오자 나는 42명의 관광객들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페인에 들어가서 휴게소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은 후 오후 4시경에 세고비아에 도착했다. 주변을 관광하고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인원을 점검하고 모두 휴식을 취했다. 안내원에게 들으니 한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란, 이라크, 멕시코, 컬럼비아, 월남, 그리스, 덴마크, 유고 등 14개국 사람들이 함께 여행한다고 말했다.

세고비아에서 1박한 후 버스는 마드리드로 향했다. 저녁때가 되어 마드리드에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고 나서 백 교수와 나는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밥을 하여 이튿날 점심용 김밥을 만들었다. 이튿날 국립 마드리드 대학을 관광할 자유시간을 주기에 여러 곳을 돌면서 스페인의 분위기를 맛보았다.

다음 날은 역사의 고도(古都) 똘레도를 다녀왔는데 항상 저녁식사가 문제였다. 말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무엇이 맛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몇 사람이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월남 사람이 맛있고 싼 곳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들을 으슥한 골목으로 안내했다.

그 월남인은 스페인 말을 아주 잘했고, 마드리드에 몇 차례 와 본적이 있다고 해했다. 그는 월남에서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서 파리에 유학 온 학생이었으나 월남이 패망하여 돌아가지 못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에 희생이 된 유학생이었다.

그가 우리들을 안내한 집은 아주 협소한 집이었으나, 그 집의 음식은 소머리 수육과 초간장을 곁들인 매우 싸고 맛이 있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소머리 수육과 초간장은 고국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일미였다.

3일 후 우리들은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돈키호테가 기사수업을 위해서 여행한 안다루치아 지방은 아랍문화와 백인문화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틀을 지낸 그라나다는 고도이고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아랍풍의 이랑브라 공전이 있고 동굴에 지내던 고대인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저녁에는 플라밍고 공연장으로 가서 플라밍고 공연과 남자들의 탭무용, 그들의 노래 등을 들으면서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관광상품은 저렇게 만들어야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준 공연장이었다.

이튿날 성곽도시 아벨라를 거쳐서 세빌랴에 도착했다. 이 도시도 역시 아랍민족과 백인이 빼앗고 빼앗기는 밀고 당긴 곳이었다. 자연히 아랍풍과 백인문화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세빌랴의 이발사>도 이러한 이색적인 문화 속에서 태어난, 낭만을 지니고 있는 오페라 음악으로 공연된 곳이다.

마차가 도시의 풍물이 되어 있고, 이러한 풍물들을 하나씩 구경하면서 거리를 산책하고 있을 때에 동양인 한 사람이 와서 나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니, 그는 매우 반갑게 손을 잡으면서 자기는 ”일본에서 온 화가인데 이곳에서 5년간 살고 있다.“고 하면서 몇 년 만에 동양사람을 처음 만난다고 말했다.

자기가 세르베자 한잔을 사겠다고 말했다. 세르베자는 생맥주를 말하며, 그날 화가와 오랜 시간 스페인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 마드리드 광장의 돈키호테와 산초 동상 앞에서

세빌랴에서 1박 한 후 포르투칼의 리스본에서 2박, 살라망카에서 1박을 했다. 고도 살라망카에는 스페인 최고의 대학인 살라망카 대학이 있는데, 시설 규모는 작았으나 콜럼부스가 이 대학 출신이라고 해서 학생들과 교수들이 매우 긍지를 가지고 있는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이었다.

이튿날 고르네이유가 쓴 고전주의의 대표작품 <르 시드(Le Cid)>의 주인공 로드리그와 시메드의 관이 나란히 놓여 있는 <브르고스 대성당>을 관람한 후 대서양 연안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상 세바스찬에서 1박한 후 파리로 돌아왔다.

그 여행 중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처음 한 주일은 나라의 풍습이 달라 서로 서먹서먹했으나 일주일이 지나자 친해져서 자기나라의 이야기가 개인의 비밀을 털어놓는 친밀감으로 바꾸어진 마음의 교류였다.

특히 여행 중 내내 말싸움만 하던 이란과 이라크 사람이 마지막에 가서 서로 친해진 것은 여행의 아이러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아가씨 끌로드가 헤어질 때 나를 붙들고 뜨겁게 키스해주던 진솔한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캐나다에서의 환대

귀국날짜가 다가오고 있을 때 캐나다의 외동생 손성호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가 왔다. 꼭 캐나다를 거쳐서 귀국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캐나다와 미국 비자내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아내가 남편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신청해도 거절당하는 것이 그 당시 비자 신청과정에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한 사정을 손성호에게 전달했더니 그는 캐나다 여행 중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변호사의 공증서와 비행기표를 보내왔다. 그것을 제출하고 비자 신청을 했더니 비자가 나와서 나는 캐나다를 경유하여 한국으로 가는 귀국 길에 올랐다.

캐나다로 출발하는 날 드골공항에는 많은 사람들이 환송하러 나왔다. 송문영 교수, 신태영 검사, 김학정 사무관, 백원기 교수, 임채완 교수, 최영호 선생, 안세영 사무관, 청주대학 법학교수, 무역회사 과장 등 10여명이 나왔는데, 김학정 사무관이 “정부의 장관이 귀국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라고 농담을 했다. 나는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토론트공항에 내리니 손성호와 그의 아내, 3명의 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이 살고 있는 런던은 토론토에서 승용차로 두 시간 거리의 도시였다. 집에 도착한 후 그날은 쉬고 그 이튿날부터 그가 짠 관광스케줄 대로 따라다녔다. 그는 자기 직장에 두 주간 휴가를 내고 나를 접대하는 계획을 짠 것이다.

하루는 나이아가라폭포를 관광하면서 거기에서 팔고 있는 세무점퍼를 사주고, 그 이튿날은 휴른호, 다음날은 온타리오호, 에리호, 인디안촌, 토론토, 런던교회의 야유회, 록키산맥 등으로 안내했다. 피곤한 날은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치는 시간으로 보냈다.

대학시절 나에게 진 신세를 갚겠다는 그 성의에 나는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아이들도 큰아버지라고 환영했다.

나는 남을 도와줄 때 절대로 대가를 생각하지 않았지만 도와준 보상이 이렇게 큰 줄은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나의 아내에게 전해달라는 선물도 정성어린 물건이었다. 캐나다의 여행은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