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0월 인천대학교는 종합대학교로 승격하여 교수들의 투표에 의해서 박재규 학장이 인천대학교 제1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나도 인문대학 교수들의 투표에 의해서 인문대학장의 보직을 받고 교무위원이 되어 학사행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0년 1월에는 부총장의 발령을 받았으며, 그때 행정경력이 풍부한 박재규 총장으로부터 법을 기반으로 한 학사행정 업무를 많이 배우게 되었다.
박재규 총장은 1991년 건강문제로 사임하고 교수들과 재단은 다시 제2대 총장선거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총장선거에 나가려는 교수들이 여러 명 되었으나 재단과 가까운 교수들 중에는 3명 정도가 부상되었다.
그 중에서도 C교수가 가장 유력한 후보자라고 교수들은 입을 모으고 있었다. 백 장군과 부자지간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고, 인천지역 대학 출신이기 때문에 표를 모을 수 있는 여력도 있었다. 단지 지나치게 백 장군 지근에 있다는 것과 한두 개 단과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5개 단과대학 교수들에게는 대중적인 인기가 없다는 것이 결점이었다.
또 P교수와 K교수가 있었으나 교수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리더로서 베풀어주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것이 흠결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현재 부총장으로 있는 나였다. 친한 교수들로부터 한번 도전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불가능한 일이기에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교수들이 예측하고 있는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서 나는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할 만큼 여러 악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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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천대학교의 교수 분포는 서울대 25%, 한양대 20%, 중앙대 15%, 연세대 10%, 성균관대 10%, 인하대 5%, 그밖에 15%를 고려대, 서강대, 동국대, 명지대, 경북대, 충남대, 부산대, 국민대 등이었다.
교수들의 고등학교 출신 분포도 경기고, 경복고, 서울고, 용산고, 휘문고, 제물포고 등이 70% 이상을 차지했고, 나머지 25%가 광주일고, 경북고, 대전고, 부산고 등 지방고등학교로 짜여져 있었다.
영남대학교 전신인 지방의 청구대학을 나오고,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소수의 학생들만은 졸업시키는 대구사범학교 출신인 내가 총장 후보로 출마한다는 것은 우선 학벌로 보아서 콩으로 바위를 때리는 격이었다. 그래서 누가 총장 후보 말을 꺼내면 극구 사양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몇 분의 교수들이 ‘총장후보위원회’를 만들고, 이 상황을 백 장군에게 알려 백 장군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세 분의 교수와 함께 백 장군 자택을 방문하니, 학교에 대한 여러가지 대화를 한 후 총장 후보에 나갈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앞에서 열거한 나의 악조건을 말씀드리고, 극구 사양하면서 옆에 앉아 있는 P교수를 추천했다.
백 장군은 “P교수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내가 받기에 장 교수가 표를 제일 많이 얻을 수 있다고 들었으니, P교수는 다음에 생각하고 이번에는 장 부총장이 학교 발전을 위해서 개인을 희생하라.”고 설득했다. 몇차례 사양했ㄷ으나 옆의 두 고수도 가능성이 있으니, 출마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해서 마침내 승낙하는 쪽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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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가 부총장이던 때부터 인천대는 설립자에 대한 불신 등으로 학내분규가 심했다 (동아일보 1992. 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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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관리위원회가 조직되고, 나도 또 한사람 교수가 후보로 등록했다. 재직하고 있는 187명의 교수들 중에서 해외 연수와 출장으로 출타한 교수들을 제외하고, 156명의 교수가 투표한 선거에서 내가 93표를 얻어서 인천대학교 제2대 총장에 선출되었다. 1991년 2월 중순 총장에 취임했다.
총장에 취임할 무렵 재단과 백 장군에 대한 성토가 다시 시작되었다. 백 장군이 1981년 3월 신군부에 의해서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당시, 검찰은 1988년이 되면 156억 원이 될 산업채권 통장을 찾아내어 그 돈을 인천대학에 헌납할 것을 강요했던 것이다.
학교를 빼앗길 입장에 처한 백 장군은 그 돈을 인천대학교 의과대학 설치기금으로 쓸 것을 조건으로 산업채권을 관선이사회에 헌납했다.
그러나 1988년까지 의과대학은 설치되지 않고, 자신은 공식적으로 학교에 복귀하지 않은 상태이고, 이자가 늘어 156억 원이 되었기에 원금은 그냥 두더라도 이자를 지급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여 법정 판결로 78억 원을 회수해간 일이 있었다.
이러한 이전의 사실이 빌미가 되어 내가 총장으로 취임한 얼마 후에, 백 장군을 반대하는 일부 교수들과 운동권 학생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이 일로 학생들과 일부 교수들은 78억원을 반납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움직임이 심상찮았다.
1992년 4월 하순부터 학생들은 격렬하게 데모를 하고, 5월 초순에 들어와서는 총장실, 부총장실, 교무처장, 학생처장, 기획처장, 대학원장, 각 단과대학장실을 점거하고 밤이 되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쾅쾅 울리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5천여 명의 재학생들 중에서 데모에 참가한 학생들은 3백여 명에 불과했지만, 정부를 반대하는 극렬한 재야세력들과 일부 교수들이 학생들의 뒤를 돌봐주고 있어서 학사행정을 수행하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5월 초순 어느 날, 데모학생들이 총장과 부총장, 학생처장으로 대동하여 소위 학생들이 이름 붙인 학생회관 앞 민주광장에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게 하고, 쇠파이프와 몽둥이로 땅을 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자칫하면 인격모독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 교수들은 참석하기가 꺼려지는 자리였으나 30여분이 지나서 교무위원 15명 전원이 총장 옆에 평온한 자세로 앉았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총장과 뜻을 같이 하겠다는 교무위원들이 뜻이 너무도 감사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학생들은 한참동안 쇠파이프로 땅을 치면서 구호를 외치고 난 후 먼저 나에게 질문했다.
“우리들은 총장님이 재단과 백인엽 씨를 따르지 않겠다고 하면 존경하고 지지하겠지만, 재단과 백인엽 씨를 지지한다고 하면 총장님을 성토하겠습니다. 말씀을 분명이 해주세요!”
데모 주동학생이 말했다. 나는,
“학생들이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은 인천대학이 설립되었기 때문에 있는 현실이고, 설립자가 교지를 확보하여 여러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이렇게 큰 건물을 세워 투자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개선하면 될 일이지, 무조건 따르고 안 따르는 흑백논리로 처리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네!”
나의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이종열 부총장, 김치원 사회과학대학장, 학생처장도 확실한 논의리와 소신이 분명한 용기 있는 발언으로 학생들의 논리가 밀리게 되었다. 이날의 토론은 교수들의 우세로 끝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