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과 아코디언 (1)

목욕탕과 아코디언

안성환

(한국사진작가협회 포항지부장)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POSCO는 제철의 신화를 창조한 기업이다. 이 세계적인 제철소가 위치한 곳은 예전에 초가집 500여 호가 남향으로 가지런히 자리한 큰 동네 동촌은 윤익이와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마을이다. 그래도 그 당시 가구 수로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들어가는 마을이었다.

초가집 사이로 쌀밥에 콩 섞이듯 기와집은 10여 채가 있었다. 동네 앞에는 자갈길 신작로 위로 이따금씩 트럭이 뽀얀 먼지를 날리며 지나가곤 했다.

길가에 보기 좋게 늘어진 수양버들 가로수 아래에는 노인네들이 한가로이 돗자리를 깔고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한 여름 무더위를 씻기도 했다.

아이들은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좁은 도랑에서 송사리나 붕어를 잡으며 신나게 놀기도 했다. 신작로에서 골목길로 30미터쯤 들어가면 윤익이네 집이 있었다.

검은 칠을 한 큼직한 나무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에 남향으로 위치한 기와 이은 큰 채가 있고, 왼쪽에는 기와지붕에 유리창 덧문을 단 아래채가 있었다. 동쪽으로는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마루방과 온돌방이 있는 깨끗한 사랑채이다. 큰 채 뒤에는 뽕나무가 있고, 옆에는 장독이 가지런히 놓여 있으며, 장독대 뒤로는 참살구 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윤익이네 집에 놀러 가면 어머님께서는 새까만 콩이나 노란 살구를 따서 주시기도 했다. 그 시절엔 과자나 간식이 귀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그럼, 목욕탕 얘기를 한번 해볼까.

나는 평상시에 집에서 목욕을 할 때면 소에게 죽을 담아주는 큰 나무통에다 물을 데워 붓고 작은 몸뚱아리를 담그고 어머니나 고모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목욕을 시켜주곤 했었다.

언젠가는 추석명절이 다가와 목욕할 때가 되어 저녁을 먹고, 고모를 따라 윤익이네 집으로 목욕을 하러 갔다. 큰 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커다란 창고가 있고, 그 뒤로 돌아가면 무쇠로 만든 큰 목욕탕이 있었다.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항상 나무통에서만 목욕을 하다가 불도 켜져 있지 않은 목욕탕을 들여다보니 어린 생각에 탕 속에 내가 들어가면 끝없이 밑으로 내려갈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겁을 먹고 “고모야 성환이가 탕 속에 들어가면 없어지니까 난 안 들어갈래.”하고 마구 울어댔다. 그래서 고모는 나를 도로 집으로 데려다 놓고 혼자 가서 목욕을 하고 온 일이 생각난다.

▲ 이의근 지사로부터 경상북도 문화상을 수여받는 장윤익

그리고 이따금씩 사랑채에서 큰형님(무익)께서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가 어린 생각에도 너무 신기하였다. 그 시절 시골에서 아코디언을 구경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옆에서 보고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너무도 즐거운 일이었다.

얼마 있지 않아 2차대전도 끝나고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먹는 것과 모든 생활 용품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부족했다. 그때에 신고 다니는 신발은 짚신이 대부분이며, 고무신만 신어도 다들 부러워 할 정도인데, 윤익이는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나도 고무신을 신고 다녔지만 운동화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께서 한 켤레를 사준 기억이 난다.

1학년 때 장흥리에 있는 대송초등학교에 윤익이와 윤기숙 셋이서 늘 함께 다녔다. 몇 달 후 일본학생들이 다니던 ‘괴동’의 소학교로 옮기면서 윤익이와 함께 앞산을 오르내리며 입술이 벌겋게 되도록 진달래꽃을 먹었다.

그 당시에 윤익이의 공부 성적은 매우 뛰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2학년이 되었을 때 예고도 없이 윤익이네 집이 경주로 이사를 간다고 하였다. 어린 마음에 그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경주로 이사를 간 몇 달 후 윤익이는 고향으로 한번 다니러 왔다. 그 시절 모자는 대학생이나 쓰고 다니던 것인데, 까만 창 달린 모자에 새까만 양복과 까만 운동화에 흰 양말을 신고 온 것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 후로는 중학교 때 아버님을 따라 나는 의성으로 갔고, 그 이후 나와의 연락은 전혀 되지 않았다.

1956년경 아버지께서 경주지원으로 전근이 되어 나도 경주에 살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윤익이는 경주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로 진학한 것을 알았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경주고등학교를 진학했고, 경주에서 살고 보니 옛 친구가 생각나서 황남초등학교 앞 미나리밭 근처에 있는 윤익이네 집을 찾았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고향친구들의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 후에 아버님께서 퇴직하시고 우리집은 포항으로 이사를 했고, 윤익이와의 연락은 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사업차 울진에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사는 김경태라는 친구가 윤익이가 인천대학교 총장으로 있다고 연락처를 알려주어 서로 연락이 되어 휴가차 가족들과 함께 울진을 찾아와서 즐겁게 보내고 돌아갔다.

윤익이가 경주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한 이후부터 서로 오가며 이따금 만나서 옛정을 풀었다. 얼마 전에는 서울에 있는 박방우와 함께 포항에 놀러와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 부르며 놀다 경주로 돌아갔다.

장 박상의 가정에 행운과 건강과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