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소중한 추억
정해걸
<전 의성군수, 18대 국회의원>
일생을 살면서 우리는 참 많은 인연을 맺게 된다. 푸른 꿈으로 세상을 향해 여린 날개 짓을 하던 청소년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삶을 정리하는 회고록을 쓸 나이가 되었으니, 시간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덧없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볼 때마다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는 좋은 인연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내가 장윤익 총장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초겨울인가로 기억이 된다. 그때 내게는 늘 붙어 다니는 친형제 같은 친구가 있었다. 박종달이다. 포항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함께한 무던히 성실한 친구였다.
종달이는 가정 형편이 좀 어려운 편이었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는 자존심과 의지가 강한 모볌생이었다. 그 친구가 대구사범학교로, 나는 경북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두 학교는 철조망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이었다.
대구사범은 남여 공학제라 까까머리 시절 다 그렇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았고, 공학제 학교의 특성 등 여러 이유로 출입이 잦았다.
그때 종달이에게서 소개받은 벗이 윤익과 연근이다. 윤익이는 그때도 글재주가 있다는 평판을 들었는데, 첫 만남의 인상이 가관이었다.
세련미라든가 도련님 이미지와는 한참 떨어진데다, 썩 잘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촌놈그대로였다.
그러나 우리는 만나자 마자 의기투합해 금세 친해졌고, 젊음을 같이 할 모임을 만들기로 해 그때 만든 것이 <해성동지회(海星同志會)>다. 각 학교별 2~3명 정도로 10여 학교로 압축해(대구사범은 남여 대표 따로 선정) 총 33명으로 구성했다.
주된 취지는 자기발전을 목표로 하고, 자아실현과 봉사, 우정을 돈독히 하자는 목적으로 <해성(海星)>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학교별로 돌아가면서 모임을 갖고, 특정 주제를 정해 토론도 하며 우정을 나눴다. 이후 오랜 세월 그 집에는 변함없이 서로 연락하며 지내왔다.
윤익은 모일 때마다 글을 써와 발표를 하곤 했는데, 그때 모습은 부러울 정도로 의젓했다. 특히, 회원의 절반 정도가 여학생이라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러웠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학창시절을 보냈고, 사회생활도 함께 하다가 군대도 같이 갔다.
군대 얘기라면 내남없이 모두들 많은 추억이 있겠지만,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웃게 만드는 일이 있다.
논산훈련소 28연대 3대대 1소대에서 같이 땀 뻘뻘 흘리며 뺑뺑이를 돌았다.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는 신병훈련소 시절 점호시간이었다. 취침점호였는데, 우리 선임하사가 성질 고약한 사람이었다.
윤익이가 배탈이 났는지, 점호 중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임하사가 군기 잡는 답시고 막무가내로 세워놓고 점호를 계속하니까 군기 바짝 든 훈련 신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그만........ 소대 향도를 맡은 나는 선임하사에게 화장실을 보내야 한다는 건의를 분명히 했는데, 고집불통 선임하사가 끝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 생긴........ 언제 얘기를 해도 박장대소할 제일 재미난 추억 중 하나이다.
나는 교교시절에도 윤익이를 보통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분명, 저 친구는 이 세상에 성(城)을 훌륭히 쌓을 친구라는 생각을 했고, 그는 그 꿈을 훌륭히 이뤄냈다.
최고의 지성과 능력을 갖춰야 비로소 자격이 주어지는 대학교 총장을 두 번이나 지냈으니,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터다. 문학평론가 장윤익의 글이 신문이나 여러 전문잡지에 실리면 나는 가장 열심히 읽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어 버렸고, 총장 시절 나의 사무실에도 자주 찾아오고 따뜻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1995년 6월 민선 군수 선거에 처음 출마했을 때, 장 총장은 내게 “너는 할 수 있다. 분명될 거다!”고 격려해주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고, 그 격려에 힘입어 내리 3선의 영광을 입었다.
우리 친구 중 가장 존경받고 신뢰받는 자리 잡은 것은 평소 그의 성실성과 온후한 성격, 고상한 인품에서 연유된 것이라 믿는다.
세월이 덧없다 한들 어쩌리. 50여년의 세월을 함께 한 자랑스러운 친구 장윤익 총장에게 앞으로의 시간들도 무지개 같은 아름다운 노을이 늘 함께 하기를 빌 뿐이다.
세상은 벗이 있어 즐겁고, 오래된 벗일수록 그 맛이 싶은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