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 동반자 되어
박곤걸
<시인, 국제펜클럽 대구지역 회장>
50년대 전쟁 후에 황폐한 궁핍생활을 끌어안고 냉정구도 속에서 우리의 꿈은 궁극적으로 직업의 길과 문학의 길을 선택했고, 그러한 두 날개로 활개를 치며 세상을 날으려고 생각했었다.
이 땅의 그때 그 역사는 우울했으나 우리들의 그때 그 나이는 아름다웠다. 6.25가 있었던 그 이후 우리 학교는 국립이었으나 비슬산 뻗어내린 그 날의 그 언덕에 판자로 지은 가교사로 출발하였다. 그 교정에 심어져 뿌리내리고 늘 푸른 일을 피워올린 히말리아시다의 푸른 이마 위로 우리들의 열정만큼이나 붙 타는 햇살이 퍼붓던 청춘의 찬란한 시간을 헤아려본다
장윤익 교수와 인연의 교류를 해온지도 올해가 꼭 50년이 되는 해이다. 1955년 3월 12일 오전 10시, 대구사범학교에서는 신입생 합격발표가 있었다. 대구에서는 유일하게 우리 학교가 특차 입학시험이 치러졌고, 18대 1이라는 막강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의 영광을 안은 중3생들이 입학수속에 대한 안내를 전달받으며 감격한 표정으로 운동장에 집합해있었다.
이 학교 재학생 중에 경주출신이라고는 다섯 사람이 넘지 않은 선배들이 <경주향우회> 티켓을 들고 경주출신 합격자들을 환영하였다.
댱시 경주군 내 11개 중학교 학생들 100여명이 응시하였으나,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좀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겨우 ‘경중(慶中)’ 모표의 모자를 쓴 두 학생을 발견했다. 결국 합격자는 장윤익, 변종화, 두 학생뿐이었다. 나는 두 학생을 끌어안고 몸을 부벼댔다. 전란 후 교통수단이 불편했던 당시로서는 경주에서 대구까지 160리 길이지만 천리 만리 객지와도 같이 멀었으나 향수에 겨워 두 후배를 친동생처럼 아끼며 훗날을 지내왔다.
장윤익은 앳된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었고, 변종화는 묵묵히 투박한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었다. 그 뒤 장윤익은 입학을 하고 문예부원이 되었지만 문학지망생게게 찾아볼 수 없는 다른 면이 있었다. 무술도장에 다녔던 것으로 아는데 체육무술이 아니라 호신무술을 닦았다는 것으로 본다.
그 후 경주에 자주 찾아갔다. 유치환 시인이 교장으로 입직하신 경주중학에 다니는 문학천재 서영수를 알고 있었는지라 경주에 가면 장윤익의 집을 드나들었고, 장윤익을 따라 서영수의 집을 드나들었다.
장윤익이나 서영수는 시를 쓰는 문사들이라 조건 없이 다들 착했다. 그들은 호방한 웃음이나 위트있는 궤변이 매력을 끌었다. 장윤익은 지금의 대릉원이 있는 황남동에 살았고, 서영수는 오릉이 바라보이는 사정동에 살았다. 방학에는 자주 찾아갔고 장윤익의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점심을 먹었다. 밥그릇에 밥을 고봉으로 담아주시면서 다 먹으라고 하셨다. 고봉으로 담은 밥은 그저 밥이 아니고 자식과 또래에게 베푸시는 자정(慈情) 그것이었다고 내내 느꼈다.
우리는 형제 의리를 지켰다. 그도 나도 가난했지만 돈 꿔달라는 소리 한번 안했으며, 없는 자리에서 험담 한번 하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변함없이 우의를 지켜왔다.
1955년 4월 6일 입학식이 있었고 얼마 후 3학년 박문기 문예부장으로부터 문예부를 인수받았다. 박곤걸이 문예부장이 되고 장윤익이 문예부부장이 되어 <문창(文窓)>이라는 타블로이드판 문예서클 신문을 20여호까지 발간하였다.
해가 바뀌고 신입생이 또 들어오고 중학교 때 <경북예술제>에서 장원한 장중규(제일여중), 허정(사대부중), 류상덕(사대부중)을 신입 문예부원으로 맞아들였다. 새로 맞이하는 훌륭한 문사에게 신선한 충격의 효과를 출력해 낼 행사를 계획하고 활동반경을 확대해나갔다.
<학도예술제>를 하루 앞두고 학교에서는 박곤걸과 장윤익에게 문학창작실습을 위해 자유시간을 주셨다. 문예부 특별실이나 도서관도 없던 때라서 학교를 나와 대신동을 벗어나서 밤고개 넘어 어느 들판이었던가, 어느 산자락이었던가 가을 볕을 쬐다가 글도 한편 구상 못하고 지는 해를 띄워 보내고 돌아왔다. 해가 지니 모든 것은 검은 장막에 덮였다. 50년대 절전을 해야 했던 도시는 암흑뿐이었고, 움츠린 우리들의 상상력도 암담했다.
<문창(文窓)> 문학서클이 은근한 저력을 깔고 끈기있는 투력으로 열정적인 활력이 축적되어 작품의 성숙도가 영글었다. 경북 <학도예술제>와 <학원문학상>에 입상의 영광이 줄이어 거양하게 되었다.
1956넨 제목 <나무>로 박곤걸이 입상하고, 1957년 제목 <의자>. <등산>으로 장윤익이 입상하였다.
장윤익은 1957년 학교신문 <대사춘추(大師春秋)>를 창간하였다. 서정호, 성환욱과 더불어 10대의, 지성으로 젊은 기상을 발산하는 진취성의 신선도가 김영기 교장선생님께 무언가 새로운 실험행동들이 가능성을 암시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던 것이다. 교우지 <사원(師苑)>의 편집위원은 1956년에 박곤걸, 이정세, 1957년에 장윤익, 김정자, 오태순, 1958년에 류상덕, 장중규, 허정이 이어오면서 꾸며젔다.
문학을 지원하는 후배들에게 핫바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그와 나는 대외적으로 문학외교를 적극 펼쳤다. 경북 일원에 걸친 문학동인 <칡넝쿨>을 결성하였고, <칡넝쿨> 문학동인은 장윤익, 박곤걸, 김종복, 김원중, 민경철, 서영수, 김미대자, 박춘화, 권영주, 조주환, 정영선, 김원자 등이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문학의, 미로를 헤어나서 직업의 전선에 섰다. 나는 1957년 4월에 입실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1954년 4월 박달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후 그는 서울 명지여고로 떠났고, 나는 울진농고로 떠났다.
그는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의 길에 접어들었고, 나는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현대시학>천료로 시인의 길에 접어들어 우리는 서울에서 문인으로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문학, 경부선>을 결성하기로 했다. 서울, 부산, 대구로 흩어진 옛 문우들을 다시 불러 들여 <문학, 경부선> 동인을 창립하였다. 30년 가까이 이어 오면서 동인지 14집까지 펴냈다.
그가 더 큰 미래를 향해 박사과정을 걸어두고 있을 때, 나는 한 달이 멀다하고 서울로 오르내렸고, 그와 더불어 <월간문학>, <현대시학>, <시문학>, <심상>사에 단골 사랑방 손님이 되었다. 이 무렵 우리 문단의 문덕수, 조병무, 이영걸, 신세훈, 장백일, 신규호, 유승호, 성춘복, 황명, 윤강로, 이명수, 박재삼, 박동규 등을 그와 더불어 만날 수 있었다.
그의 가장 화끈한 처세의 결정이 무작정 상경이었는지 몰라도 그의 인생을 확 바꾸어놓았다. 그 뒤에는 화끈하게 맞서서 승부를 거는 결단을 몇 번 가졌던 것이다. 대구에서 내려오느냐, 서울에서 눌러 앉느냐였다. 계명대 교수로 내려오는 결단을 포기했다.
한번은 인천대 총장직을 마치고 소식없이 조용히 금의환향하여 경주대 총장으로 내려오는 결단을 선택했다. 그의 결단은 그의 인생을 전환시켰다. 그의 결단력은 황토에 와서 지역인사들이 감히 엄두를 못내는 사업을 의연하게 추진해냈다. <동리, 목월 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동리, 목월 문학관>을 착공하는 결단력을 발휘했던 일들이다. 사업의 큰 판을 짜는 성취의 용단인 것이다.
추억을 소비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다시 고향 경주에 되찾아와서 또 만나게 되었다. 그가 벌써 정년이라니 얼른 실감이 안간다. 어느덧 쓸쓸한 황혼의 여정이 발끝에 다가온 듯 싶다. 우리는 선후배로서 두 인생을 걸어왔지만 문학이라는 길을 동반하면서 하나의 인생으로 겹쳐졌다. 직업은 은퇴했지만 문학인으로서 유통기한은 많이도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