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영원한 동반자
장윤우
<성신여대 명예교수, 한국 문인협회 부이사장, 시인>
아련히 떠오르는 장윤익, 이 분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대체적인 모습이 그려질까. 우리 문단의 별, 교육계에 한 축(軸)을 이룬 거목, 그저 내가 겪은 단면만을 두서없이 적어 놓으련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55년 9월이 마악 시작되는 무렵 서울에서였다고 생각된다. 그 무렵 정국은 전쟁 이후의 피폐함이 아직 가셔지지 않은 스산한 모습이었고, 따라서 학교 교육도 본격적인 가동이라고 보기가 힘들었었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우리들은 수업은 제쳐놓고 ‘관제데모’에 동원되기 일쑤였다.
아직 북한 공산당의 위협과 사회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이를 기회로, 아니 독재자의 통치수단의 방법인지도 모른다만 여하간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군사훈련으로 교내엔 교관이 상주하고 있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이었다. 서울고등학교 안에서 나는 교내 신문반에 가입하였다. 문예면을 다루면서 어쩌면 내 꿈을 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도사렸다. 타블로이드판 4면 신문에는 마침 후배인 황동규, 마종기, 갈천문, 박동규 등이 자주 등장하였고, 나는 그 뒤를 따른다고 보아야 했다.
문학에 향하는 갈증은 어느 곳으로든지 표출되기 마련이다. 여기저기 <새벗>, <어린이>, 소년 잡지건 성인물이건 가리지 않고 투고를 하였다. 그리고 해당 잡지가 서점에 나오면 뛰어가서 우선 문예란부터 훑어보았다. 희비쌍곡선, 실리기도 하고 안 실리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고 누구의 작품이 실려 있는지를 열심히 보았다.
특히 <학원>잡지가 초점이었다. 당시 인기가 절점이었다. 시가 두어 번, 산문이 두어 번... 그런 가운데서 멀리 대구에서 오는 글도 눈에 띄었다. 장윤익이라는 <대구사범학교 학생>.
나와 비슷한 이름이었다. 그는 누구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만나볼 기회가 생길까. 얼마 후에 드디어 그 학생을 만나보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른바 중앙 학도호국단에서 주최한 기관지 <학도주보>작품 공모에 나는 ‘시(詩)’로서 그는 ‘산문부’에 나란하게 당선되었던 것이었다. 그때 그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시상식장에 나타난 그의 첫 모습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유난하게 커다란 눈망울이 시원스럽게 생겼다. 같은 성씨에 비슷한 이름이 어디 그리 흔할까. 우리는 대번에 친하게 되었고, 대구로 다시 내려간 이후로도 서신왕래가 자주 있었다. 자연스럽게 ‘형, 아우’가 되어 진 것이다. 그 무렵 그의 소개라기 보다는 같은 학생 문학도로서 경주의 서영수, 대구의 김원중도 깃들이게 되었으니, 보내준 2인 시집 <별과 야학>은 어린 학도로서 화제와 인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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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윤우(시인, 성신여자대학 명예교수) [출처 ; 서울문학회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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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익은 대구사범학교의 본과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하였다. 서울 서라벌예술대로 진학한 서영수는 우리 집에 찾아와 함께 자고 놀기도 하며 그의 대학등록금을 내가 대신 찾아가 대납하기도 했다.
잔윤익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아마도 누구보다도 끓어올랐던 것으로 안다. 그곳에 원화여고 국어교사로서 근무하면서도 중앙문단에 가는 관심은 결국 이뤄지게 되었으니 서울 명지여고에 교직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터전을 박차고 멀리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가에 대한 고심(苦心)을 내게 털어놓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쟝형! 힘을 내시게. 역시 당신 같은 큰 존재는 큰 물로 가야 해!”
이후 나보다도 더 많은 절친한 교우 관계가 있게 되고 그는 보이지 않는 흡인력이 있으며, 사교적이라서 장래의 성공은 거의 약속 된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 치열한 작가정신과 끝장을 보는 열의는 <중앙일보>신춘문예에 평론 당선이란 ‘장원급제’를 당당하게 안았다.
대학 강의와 문예지에 묵직한 집필도 지속적이었다. 이후 줄곧 문단에 화제를 뿌리며 제22회 <조연현문학상> 수상, 그리고 <국제언어문학회> 회장 등으로 이어지는 이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대구 소년 장윤익의 아름답고도 어찌보면 여성스러운 섬세함이 오늘의, 대학총장에... 사단법인 <동리, 목월기념사업회> 회장의 위치에까지 단숨에 다다르게 하지 않았는가.
이제 중노(中老)의 장윤익 박사는 뛰어온 과거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가. 그가 남긴 숱한 업적들, 평론계와 문단, 제자 양성과 학교운영 능력, <동리, 목뤙기념사업회> 회장 등에서 어떤 귀결점을 구상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그간에 받은 각종 수상도 그의 진면목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서울 명동의 한 구석에서 1950년대 후반에 만났던 10대의 어린 시골 학생이 오늘 국내외에서 주시하는 유력인사로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주시(注視) 속에서 살고 있으니 ‘인생무상’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느껴진다.
어느 날 밤 달동네 금호동 꼭대기로 달려 올라가던 일이며, 서대문 <시문학> 잡지사 부근에서 자주 만나서 진한 이야기를 하던 판잣집 음식점, 그가 분규에 휘말려 잠시 교직을 비운 시련의 사이에 만나고 격려하던 아현동 출판사 사무실 시절, 같이 의기투합하여 걷고 또 동반하며 마셔댄 인정(人情)어린 맥주잔은 얼마나 될까. 간간히 내 졸시에 얹혀준 귀한 글(玉稿)에 대한 예의도 잘 갖추지 못한 나는 영원한 빚쟁이다.
그가 정년을 맞이하게 된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허나 장윤익 평론가의 세계는 오히려 이제부터라고 여겨진다. 불굴의 정신, 문학에 대한 집념과 업적은 앞으로가 더큰 시금석이며 문단사(文壇史)에 길이 귀감이 될 일이다.
교환 교수로서 프랑스에서 익혀온 세련된 매너와 안면에 늘 띄우고 있는 미소. 평생을 더불어 살아가는 친구 장윤익, 학자로서 길이 남으라. 한국 문단사에 신기원(에폭)을 이룩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