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에서의 이상한 느낌 ...

남편은 2002년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요즘은 접대문화가 골프로 변했으니까 나도 골프를 좀 쳐야겠어요. 당신도 나이 들고 운동을 해야 하니까 같이 합시다.”
“여보 나는 운동신경이 둔해서 못해요.”
“그래도 해봐요. 나이 먹고 늙어서 같이 다녀야죠.”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나와 둘째 딸 재선이도 함께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은 새벽 4시 반만 되면 우리를 다 깨워서 연습장으로 데리고 갔다. 연습장이 5시 반에 문을 여니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미리 가 있어야 한다는 고집에는 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후에 한 번씩 더 갔다 와야지 안 가면 남편에게 혼이 났다.

회사를 끝내고 또 갔다 오면 남편은 또 밤새 또 골프에 대한 연구를 했다. ‘퍼팅이 왜 잘 안될까? 스윙을 할 때 허리가 왜 잘 안돌아 갈까? 살을 빼야지…’ 하고 밤새 연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이상한 것이, 뭔가 쫒기 듯 지나치게 열심히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완벽주의자이긴 하지만 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갑자기 신경질이 늘어서 예민해진 모습을 자주 보였다. 골프를 온몸이 부서져라 치면서 다이어트까지 시작했다.

“허리가 안돌아가니까 살을 빼야겠어요.”

그 다음부터는 술도 안 마시고 식사도 조금씩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낮에 재선이와 골프장에 같이 갔는데 새치기를 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평소 같으면 그러던 분이 아닌데 화를 버럭 내더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람들 많은 데서.
“아빠, 진정하세요.”
“아빠가 원래 저런 건 못 참아.”
좀 무안했던지 그렇게 변명했지만 재선이는 뭔가 느낌이 안 좋더라고 전했다.

그 후로는 가끔씩 식사를 할 때 속이 안 좋고 소화가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아침에 아무리 힘들어도 그럴 분이 아닌데 잠자리에 그냥 누워있으면서 피곤하다고 했다. 그래서 위가 안 좋은지 알고 서울대학병원에서 위 검사만 했는데 깨끗했다.

그다음부터는 밥을 3분의 1공기로 줄였다. 술도 조금만 마셨다.

2002년 3월 22일에는 인천 성가병원에서 해마다 한번씩 받는 건강진단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의 판정은 이렇게 나왔다.
“대장검사나 한번 해보시죠.”
의사선생님 말씀은 ‘안 해도 되는데 해서 나쁠 것 없으니 해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지금의 결과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무책임한 말씀이었다.
“대장검사를 한번 해보셔야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해주었더라도 남편은 검사를 틀림없이 받았을 것이고, 대장암이 조기에 발견되어 치료가 가능했을 것이다.

의사선생님이 그렇게 지나가는 말처럼 판정을 내리고, 본인도 평소에 건강했기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진단 판정 차트를 자기가 본다고 회사로 가져갔는데 살이 빠진 것도 병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다이어트가 성공한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2002년 12월 남편과 생전에 마지막 여행이 된 이집트의 피라미드 앞에서

그 후 2002년 봄부터 11월까지 외국출장을 8번이나 갔다 왔는데 체중이 무려 10킬로그램이나 빠졌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11월에 223친목회에서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일정이 너무 타이트하여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원래 잘 참는 성격이라 나는 눈치를 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집트에 갔을 때 석양에 비치는 옆얼굴이 유난히 황색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저 양반이 이상하다. 얼굴색이 왜 저럴까?’

귀국하자마자 성가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기로 하고 예약해 놓은 1월 17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점점 안색이 황갈색을 띠어 갔다. 남편도 너무나 피곤해 하고 얼굴색도 더욱더 짙어져 갔다. 마음이 급해진 가운데 혈액검사를 예약해 놓은 토요일이 되었다.
“당신, 혈액검사보다도 아무래도 종합검진부터 해야겠어요.”
“글쎄, 나도 요새 이상하게 피곤해요.”
그래서 그날 바로 입원을 했다. 그런데 혈액검사을 하는데 밖에서 보니까 얼마나 피 색깔이 시커멓던지 느낌이 이상했다. 색깔이 그렇게 탁해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어서 컴퓨터 단층촬영까지 끝내고 검사결과를 기다렸다. 너무 초조하여 원목수녀님한테 결과를 좀 일찍 보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잠시 후 의사실로 가보니 촬영한 것을 인턴 한분이 컴퓨터로 보여주는데 웬지 모양이 좋아 보이지 않고 험악했다.
“간이 안 좋으시네요.”
“간이 안 좋다면…?”
“간경화시네요.”
“간경화라구요?”

사실 인턴은 환자가 옆에 있으니 대장암을 간경화로 약화시켜 얘기한 것이었다. 그렇더라도 간경화라면 심각한 병이었으니 가슴이 철령 내려앉았다.
‘간경화라니! 그럴 리가 없어. 아마 잘못 본 걸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입원실로 왔는데 남편은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여보, 나는 참 행복하게, 굵게 살았어요. 우리 엄마가 나는 40밖에 못산다고 옛날에 말씀하셨지만….”

그런데 이튿날 의사선생님은 결정적으로 충격적인 말을 하는 것이었다. 환자는 나가 있으라 하여 나하고 단둘이 있는 자리였다.
“대장암이신데, 이미 전이가 다 돼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대장암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