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스크린 바스켓은 개발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고 2년이 흘러도 만족할 만한 제품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기 어려운 것이니 제지회사에서도 개발을 포기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남편은 절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 번 무엇엔가 매달리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이었다.
시간은 흘러 주위에서 비웃는 사람도 만류하는 사람도 없이 아예 무관심이 되었을 무렵, 연구개발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드디어 '스크린 바스켓' 국산화 제품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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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한국제지전시회에서 스크린바스켓 국산화개발 성공 홍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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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품을 만들어 실제 실험을 해보고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지만, 그것도 미심쩍어 시제품을 여러 개 만들어 일일이 재실험을 해 모두 만족스런 결과를 얻자, 드디어 ‘스크린 바스켓 개발 성공’ 을 선언하였다. 그날 밤, 그야말로 술에 만취된 남편이 집에 들어와 나를 껴안고 뽀뽀를 해댔다.
“여보, 나 성공했어요! 나, 성공했다구요!”
그리고는 만취했을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면서 목욕탕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주위 에서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일개 중소 기업인이, 그것도 겨우 3년 만에 개발에 성공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 사장! 박 사장이 애국자네 !”
“자네 집념에 내가 정말 놀랐네. 아니, 어디 나뿐인가? 대한민국 전체가 모두 놀라고 세계가 깜짝 놀랐어!”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은 미완의 성공이었다. 스크린 바스켓의 가격은 수입품의 반이었으니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품질이 수입품에 비해 조금 떨어졌고 제품의 불량률도 높았다. 회사 내에 검사실을 만들고 연구 인력을 대폭 증원하여 제품 개선에 착수하였다. 어차피 품질 향상은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 질 일도 아니며 항상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 덕분에 풍남은 계속해서 특허를 따냈다.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았던 제품이니 개발하는 대로 특허의 대상이 되는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91년에 회사 이름을 <(주)풍남스크린>으로 바꾸고 마침내 스크린 바스켓 판매에 들어갔다. 한솔제지(전 전주제지), 신호제지, 유한킴벌리 같은 국내 굴지의 제지 관련 회사들이 수입품 대신 풍남 제품을 쓰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해외 수출도 추진하여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풍남의 해외시장 개척에 큰 도움을 준 것은 동방물산이라는 무역회사였다. 동방물산의 김봉수 사장님은 남편이 대한펄프 재직 시에 친하게 지내던 직장동료였는데, 나중에 그 경력을 살려 무역회사를 창업하고 주로 제지업과 관련된 제품을 수출입하고 있었다. 김 사장님은 남편의 스크린 바스켓 국산화 성공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 수출 업무를 기꺼이 도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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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개척을 위해 '동방FA기계'와 업무제휴를 맺었다(앞줄 왼쪽 세번째가 동방물산 김봉수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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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풍남스크린은 미미하나마 해외 시장 점유율을 해마다 넓혀 나갔고, 두 분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돈독해졌다. 나중에 풍남이 CAE와 합작을 하게 되면서 동방물산과의 비즈니스관계는 정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분의 관계는 전혀 변함없이 지속되었고, 남편이 없는 지금도 우리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주시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셔서 항상 고마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풍남은 수출 실적이 갈수록 늘어났고, 한국 시장은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에서 매해 전시회도 가지면서 99년도에 90%를 장악했다. 남편의 선견지명과 뚝심은 그렇게 대 성공을 거두었다.
'박노광'이라는 이름 석자가 제지업계에 널리 알려졌고 인정을 받았다. 연구개발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뚝심 있게 한우물만 팠고 선견지명이 있는데다가 신용이 있다는 것이다. 신용이 두텁다는 것은 납품 기일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사후서비스가 철저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이태리 <코마>사에 납품한 것이 화물수송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지 깨져서 클레임이 걸렸는데, 그 물량 전체를 다시 제작하여 보내줄 정도였다. 그 또한 남편의 선견지명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철저한 사후 일처리가 신용을 더욱 두텁게 해줄 것이고, 후일 더욱 많은 주문을 불러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풍남스크린의 성공은 국내는 물론이고 CAE 같은 외국 대기업들을 난처하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풍남스크린의 대약진 이후 자사 제품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날이 갈수록 하락할 뿐만 아니라, 풍남이 아시아 시장까지 넘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세계 유수의 경쟁사들은 풍남스크린의 위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인 ‘박노광’의 능력이었다. 그 위력은 나중에 CAE를 비롯한 경쟁사들이 서로 나서서 풍남스크린과 기술제휴를 하려고 할 때 여실히 드러났다.
“박 사장 아니면 합작투자 못하지.”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풍남스크린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그보다 '박노광'이라는 개인의 능력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였다. 회사의 영업사원들이 실적이 좀 부진하다 싶으면 남편은 사무실에 앉아서 직접 각 거래처에 전화를 돌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갑자기 주문이 쏟아지곤 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난놈'이라고 말했겠지만, 비록 내 남편이지만 스크린 바스켓을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한 것은 정말 대단한 용단이고 선견지명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아마도 그때 '풍남기계'를 붙들고 금형이나 기계 제작 같은 일에만 계속 매달려 있었더라면 오늘의 풍남은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