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남기계는 금성중기의 협력 업체로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편이 앞길이 보장돼 있는 협력업체의 자리를 접고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이윤이 너무 적었다. 그리고 쇳덩이 큰 것들을 다루어 기계를 만드는 거라 하는 일 자체가 너무 힘이 들었고, 그러자면 인력이 많이 필요하여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러니 이윤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게 된 것이다. 문제는 풍남기계의 공구와 기계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이었다. 스크린 바스켓 개발에 성공한 직후, 남편은 공장장인 김종원 대자를 불렀다.
“종원아, 그동안 나를 도와서 충실하게 성심성의껏 공장 일을 잘 보았으니 네가 하고 싶다면 금성중기 일을 널 주마. 어떠냐?”
“예? 저야 주신다면 하고 싶죠.”
“그래, 그러면 너도 이제 네 사업을 할 때가 되었으니 내가 이걸 선물로 주마. 이게 마진은 적지만 안정적 이니까 네니가 기반을 잡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다.”
그렇게 해서 아무런 조건도 없고 대가도 없이 모든 기계와 함께 일과 거래처를 대자에게 넘겼다. 대자는 오로지 공장만 얻으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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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회사야유회 때(설악산 울산바위 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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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대자는 대부의 닮은꼴이었다. 윗사람 공경 잘하는 것도 닮았고, 성실한 것도, 맡은 일에 몰두하는 것도 영락없었다. 아마도 그러니까 자신의 피와 땀이 어려 살붙이 같은 회사를 성큼 건네주었을 것이겠지만, 그에 부응하듯 대자는 그동안 대부님에게 배운 노하우로 사업을 잘해 나갔다.
그래서 지금은 인천 남동공단에 공장이 두 개나 있고, 아들 둘 중에 큰아들은 장가를 보내 며느리까지 얻어 잘살고 있다. 하나를 주었는데 그걸 열로 만들어놓았으니 준 사람으로서도 흐뭇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김종원 대자에게 풍남기계의 거래처와 기계 일체를 물려주었을 때, 업계 사람들은 한동안 웅성거렸다. 그런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칭송의 말이었고, 그 이후로 남편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생겼다.
남편의 근검절약 정신을 존경하고 배우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직원들이 그랬지만, 직원들은 사장이 그런 분이기에 더더욱 자기들의 미래를 맡기고 따를 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의 철저한 근검절약 정신은 회사 사람들을 가끔 놀래키곤 했다. 말단 직원으로 입사하여 생산부장이 된 이건휘 부장님 말씀에 의하면, 언젠가 전체 조회시간에 사장님이 갑자기 이랬다고 한다.
“다들 손 들어봐요, 두 손 다! 반지 낀 사람들은 다 빼요!”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사장님이 하라니까 반지들을 다 뺐다. 그때 반지들은 거의 다 금반지였다.
“금반지를 그냥 끼고 일하면 기름때가 낄 뿐만 아니라 닳아요. 그 비싼 것을 왜 그렇게 닳아서 없어지게 만들려고 그래요? 그러니 이시간 이후로는 잘 두었다가 출퇴근 할 때 또는 어디 멋 내고 가야 할 때나 끼고, 일할 때는 빼시오!”
그야말로 근검절약이 몸에 밴 발상이었는데, 더욱이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에 낀 반지에 공구 같은 것이 끼어 손가락을 다치게 하는 등의 안전사고가 염려되기도 했던 것이다.
남편은 나한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책임을 져줘야 될 사람이 직원들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치면 이삼백 명입니다. 그런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나는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직원의 가족들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가정의 평화', '아내 사랑'으로까지 업그레이드되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자기 부인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부인에게 "너", "야!" 라고 하거나 반말을 쓰면 오라고 해서 조심스럽게 타이르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동등한 존재인데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지.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말게!”
그래서 직원들은 부인과의 통화를 점잖게 하게 되었고, 날이 갈수록 공손해져 부인과의 통화 시에 고개를 점점 더 숙일 정도가 되었다. 그런 분이었기에 남편은 직윈들에게 '이런 양반이라면 믿고 평생을 맡길 수 있겠다'는 신뢰를 받았고, 몸을 사리지 않고 더 열심히 뛰게 만들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