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상의 빈번한 술자리의 애환...

남편은 회사 내에 있을 때는 말도 잘 안하고 엄하기 그지없지만 술자리에서는 전혀 달랐다. 말씨도 부드러웠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러다가 조금 취기가 오르면 마치 소년처럼 천진난만하게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었다.

1차 술자리가 끝나면 어김없이 2차를 갔다. 대개 당시 유행이던 스탠드바를 갔는데, 그 다음에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여 노래방으로 이어지곤 했다. 술을 입에 대면 기분이 좋을 정도로 취해야 끝내기 때문에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곤 했다.

문제는 기분이 좋을 정도의 주량인데, 이게 내가 보기엔 끝도 한도 없었다. 회사 내에서는 물론이고,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술을 사랑하고 술이 제일 센 양반이었다. 그리고 직원들이 취하면 일일이 택시를 태워 보내준 다음에야 발길을 돌리곤 했다.

새벽이나 먼동이 터올 무렵에 귀가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에도 나는 남편을 억지로라도 깨워 출근길에 오르게 했다.
“여보, 주무시더라도 회사 나가셔서 주무셔요. 주인이 먼저 나가서 계셔야지요.”
남편은 술도 아직 덜 깨고 온몸이 천근만근이어서 만사가 귀찮을 텐데도, 내가 그렇게 채근을 하면 한 번도 꾸물거리지 않고 냉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예, 회장님! 회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게 나가면서도 아침식사는 반드시 들고 회사에 출근했다. 자기 몸을 그렇게 혹사시키면서도 건강을 유지한 것은 아마도 그 덕분이 아닌가 싶다.



	▲ 직장 직원인 아랫집 내외, 동창내외들과 함께 설악산 야유회에서

술을 그렇게 마셔대니 집에서 기다리는 나는 어디 가서 쓰러지지는 않았는지, 손님 앞에서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체면이라는 건 한 번 실추되면 복구시키기 어려운 것인데, 하루 종일 고생한데다가 술까지 부어대니 건강을 해칠 텐데, 잘못하다 나쁜 사람들한테 걸리면 범죄의 대상이 될 텐데……. 온갖 걱정을 다하고 애를 태우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귀가시간은 새벽 2, 3시가 보통이었고 어떤 때는 아침 7시에도 들어오곤 했다. 기다리는 사람은 처음에는 걱정을 하다가도 그때쯤 되면 감정이 격해져 싫은 소리가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남편의 반응은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었다.
“당신은 그냥 자면 되지. 왜 날 기다리면서 성질을 내는 거예요?”

어느 날은 벨을 눌러 나가보니 대문 문고리를 붙잡은 채 자고 있었다. 구두를 벗어 옆에 벗어 놓고 그 안에는 얌전히 양말까지 벗어서 끼워놓았다. 그 광경을 보니 화가 나는 와중에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는 남편을 끌고 들어가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덩치는 산만한데다가 코를 찌르는 술 악취를 참아가며 그 일을 해야 하니 땀은 비 오듯 쏟아지는데…… 대문 안으로 옮겨놓은 다음 문을 걸고 돌아서면 마당의 잔디밭이 안방인 양 대자로 누워 자고 있다.

죽을 힘을 다해 간신히 집안으로 옮기고 자리에 눕힌다. 그러면 그때부터 코를 골기 시작하는데, 그 소리가 술 먹은 날은 최대치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아마도 소음 측정을 해보면 탱크 굴러가는 소리쯤 되었을 텐데, 그렇더라도 평생 그 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살아야 했다.

밤을 꼬박 새다시피 하고도 하루도 어김없이 나는 아침에 아이들 등교 뒷바라지를 다하고 나면 학원으로, 성당 봉사활동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저녁이면 서둘러 귀가하여 집안 일을 하는 생활을 한 치도 어김없이 수행하였다.

내 자신이 너무 모자라는 것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다 보니 완벽주의 자가 되었고, 그래서 나는 늘 몸도 마음도 고달프고 시분을 다투며 허덕거리는 생활의 연속선상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를 보면 일을 주는 쪽, 그러니까 주체가 되는 쪽이 '갑' 이고 일을 받는 쪽은 '을'이다. 풍남은 거의 다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매일같이 술 마시는 걸 피하기가 어려웠고 술과 벗하여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자신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일을 주면서 큰소리를 치고 접대를 받는 갑의 위치가 얼마나 되고 싶었을까.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적도 얼마나 많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술을 많이 마셨겠지만, 남편은 사업이 그 정도로 성장하기까지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히 결실이 있어서 사업이 한 번도 퇴진하는 일 없이 전진만 했다.

그런데 말이 '뼈를 깎는 노력' 이지 옆에서 지켜보면 사업가의 신분이라는 게 보통 불쌍한 게 아니다. 음식점이나 가게라도 하는 모든 사업자 분들이 그걸 잘 운영하려고 온갖 머리를 쓰고 갖은 애를 쓰는걸 보면 진심으로 측은하고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