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하루에 잠도 많아야 4시간밖에 못 자면서 온 정신을 회사에 다 쏟는다. 그런다고 하루에 밥을 네 끼 먹는 것도 아닌데…… 끼니를 놓쳐 자기 배는 곯아도 직원들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려고 애쓴다. 그 덕분에 종업원들이 먹고사는 것이다. 자기 배만 불리면서 살려면 그렇게 힘들게 살지 않는다. 그게 사업하는 사람의 숙명이고 하느님이 정해주신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남편도 월급 받을 때가 있었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월급생활자가 부럽다. 직장인들은 항상 월급날이 더디 오겠지만 사업가들한테는 화살보다도 빨리 온다. 그래서 갖은 애를 써서 월급을 간신히 맞춰놓고 뒤돌아서고 나면, 이미 또 다음 월급날이 내일 모레 코앞으로 닥쳐와 있는 것이다.
“여보, 당신은 사업을 그렇게 오래 했으면서 돈 1, 2억도 못 가져와요?”
나는 가끔 가다 생활비 때문에 투정을 부렸다. 내 생각으로는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모아 내가 가지고 있어야 했다. 만일 회사가 망하면 사업체는 물론 집까지 날아가고 사람까지 교도소에 가지 않는가. 그럴 경우에 대비해서 내가 따로 저축을 해놓아야겠다는 계산으로 남편에게 가끔 돈 얘기를 한 것인데, 그러면 남편은 한숨부터 쉬었다.
“여보, 돈이란 게 그렇게 쉽게 벌리는 것도 아니지만 벌리면 회사사원들부터 먹고 살아야죠. 나는 경기가 악화되어서 회사가 어려워져도 10년쯤은 별 걱정 없이 사원들 월급을 줄 수 있는 재정을 만들어 놓고 말 거예요. 벌리는 돈이 다 회삿돈이고 사원들 돈인 거죠.”
그래서 나는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빌려대기만 했지 억 단위의 목돈은 만져보지도 못했다. 먹고사는 것만 남보다 좀 여유가 있을 뿐이지, 기껏 해봐야 백 단위에서 그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갖다 준 돈도 거의 다 빌린 돈을 갚거나 이자나 적금으로 들어갔다. 적금으로 들어간 것도 "여보, 돈 좀!" 하면 모두 빼서 순식간에 없어져야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원들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사업가들을 올바른 시각으로 보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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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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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들은 세금도 많이 내고 그것이 모여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쓰여 지니 '세금 많이 내는 게 애국자'다. 풍남은 세금을 참 많이 냈다. 특히 온 국민이 어려웠던 IMF때도 오히려 사업이 무척 잘돼서 수익을 많이 올렸고 세금도 많이 냈다. 그것도 제 날짜에 꼬박꼬박, 현금으로…… 남편은 그래서 세무서장님에게 고맙다는 전화도 여러 번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97년 뜬금없이 국세청에서 나와 세무조사를 벌였다. 업계에서 그 당시 흔했던 이중장부 같은 것도 없었고 모든 세금 관계가 명확하고 정확했다.
“이런 회사는 진짜 오랜만에 봅니다.”
조사관이 그렇게 감탄했지만 털어서 먼지가 안 나을 회사가 어디 있겠는가. 탈세한 것이 아니라 절세하려고 했던 회계처리, 그리고 수금된 것이 아니라 물건이 나간 외형액으로 매출을 잡은 데에서 세무조정의 오류가 있어 세금이 무려 30억이나 나왔다. 풍남의 세무 관계 업무를 의뢰받아 책임지는 세무사가 실수로 잘못 적용한 결과였지만 받아들이는 쪽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풍남이 맞는 두 번째 고통이고 시련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약삭빠르게 부동산 같은 것을 사놓은 것도 아니고, 30억을 내려고 하면 회삿돈을 톡톡 털고도 모자라 그 두 배 이상의 빛까지 얻어야 했기에 그 무렵 두 달 동안을 우리 부부는 잠도 못 자고 고민을 많이 했다. 오죽했으면 둘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회사 문을 닫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토록 피땀 흘려 가꿔온 회사와 직원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팔짱만 끼고 두고 볼 수 없어서 아는 분들과 전문가들을 총동원하여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하지만 대책이라고 해봤자, 우리회사가 정부 기관으로부터 인정받은 회사이고, 애국하는 회사라는 걸 읍소하여 인정에 호소하자는 것이었다.
스크린 바스켓을 국산화시킴으로써 외화 유출을 극소화시킨 공로, 유망 중소기업으로 지정받은 문서, 통상산업부 장관으로부터 받은 표창장, 수출 100만 불탑수상 경력, 그밖에도 국내·외로부터 수도 없이 받은 온갖 특허들에 관 서류를 꼼꼼히 준비하여 중소기업청에 제출했다.
그 결과 업적이 큰 성실기업임을 인정받았고, 추징세금이 30%로 재조정되었다. 그 많은 서류들을 만들고 중소기업청이 있는 대전까지 수없이 오가느라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보람이 있는 결과였다.
그런데 보람의 기쁨도 잠시, 문제는 그 돈을 한 달 안에 현금으로 내라는 것에 제동이 걸렸다. 그야말로 중소기업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금액인데, 보유 현금을 다 모으고 대출까지 받아서 그걸 내느라고 또 큰 고생을 했다.
항상 투철한 국가관을 갖고 일만 생각한 채 엉뚱한 데에 신경을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곤란을 겪게 되는 현실이 싫었다. 그런데도 호평을 못 받으니, 사업가들은 이래저래 참 불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