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화도 아니고 대장암이라니…!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대장암이라뇨?’
“큰 병원 가보고 싶으세요?”
“네, 가보고 싶습니다.”
“아시는 데 있으세요?”
“없습니다. 서울대 병원이나 삼성의료원 쪽에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그쪽으로는 사람이 없고, 여의도 성모병원에 홍 박사님이라고 암 권위자가 계신데 가보시겠습니까?”
“네, 부탁드립니다.”
그날 밤 거기에서 자고 월요일 날 여의도 성모병원에 갔다. 남편은 내가 말을 안 해주었지만 간경화정도로만 알고 있는 눈치였다.
특실이 없어서 겨우 8인실에 입원을 하고, 결과디스켓을 갖다 주었더니 박사님은 다른 말씀은 하지도 않고 한마디만 해주었다.
“입원하고 계세요.”
그러더니 입원 당일 한번 다녀가고는 그 이튿날은 영 안 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회진을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남편은 계속 의사선생님을 재촉했다.
“왜 이렇게 회진을 안 도는 거지?”
자꾸 그 말을 했다.
“오시겠죠.”
회진이 온들 별 뾰족한 수가 없는데 그것도 모르고 남편은 자꾸만 보챘다. 그런 남편을 바라만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나는 울지도 못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오후가 되어도 오지 않길래 나는 병원 원목실 신부님을 찾아가 절규에 가까운 하소연을 했다.
“박사님은 오늘도 진료가 없으시다는데 남편은 저렇게 기다리고 그래서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박사님을 어떻게 뵐 수 있겠습니까?”
신부님은 이곳저곳 연락을 해보더니 교수실에 개시다고 말해주면서 동·호수를 써주었다.
“이리로 찾아가세요. 제가 전화를 해놓을게요.”
나는 박사님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환자가 몹시 기다리는데 약도 안주고 어떻게 된 거예요, 박사님?”
“약이 없어요. 쓸 단계가 지나서 우리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의료보험으로 하면 안정된 약을 쓰니까, 보험으로 말고 일반으로 쓰라고 그러던데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박사님이 화를 버럭 냈다.
“그러면 없는 사람은 죽고, 있는 사람만 살라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말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순간, 온 몸이 바르르 떨리면서 풀썩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싶었다. 얼마나 충격적인 말이면 듣는 사람에게 허락을 받는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명확한 상황을 알고 있어야 했다.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저도 준비를 하지요.”
“이 분은 많이 의식이 있으면 보름 정도 있고 그 다음에는 혼수가 올 겁니다.”
‘보름 정도 후 혼수가 온다….’ 최후의 통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교수실을 나와 입원실로 돌아오는데 두 다리가 자꾸만 휘청거리고 아무도 안 보는 곳에 가서 통곡을 하고 싶은데 슬픔에 빠져 있을 수만도 없으니 온몸의 맥박이 정지되어 멍하기만 했다.
가망이 없다는 말을 남편에게 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입원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퇴원을 하자고 하면 남편이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 챌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하나! 결론이 나지 않은 가운데 입원실에 다다라,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빛을 여미고 들어갔다.
“어디 갔다 오세요?”
“예, 원목실에 가서 신부님하고 얘기를 하고 왔어요.”
그날 저녁 박사님을 다시 한번 찾아갔다.
“박사님, 한번만 도와주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그냥 요즘은 더 좋은 게 많으니까. 퇴원을 해서 민간요법을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그 한마디만 해주시면 환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날 밤 박사님이 찾아와 내가 부탁드린 대로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자 남편은 의외로 질문도 하지 않고 선선히 대답했다.
“그럼, 그래야죠.”
박사님 말씀이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으니, 남편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마음이 바빠 당장이라도 퇴원을 하고 싶건만, 그렇다고 채근할 수도 없었다. 남편은 퇴원은 둘째 치고 당장 보호자의 잠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것에만 관심이 쏠려있었다.
“특실을 빨리 알아보세요.”
그렇게 성화를 하였지만 여의치 않아, 나는 하룻밤을 의자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이튿날 아침을 맞이했다. 나는 또 어떻게 하면 남편을 설득하여 퇴원시킬 수 있을까 궁리를 하는데, 남편은 또 다시 특실을 성화대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희망이 있으니 그렇게 퇴원을 서두를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에 대고 사실을 토로 할 수도 없으니 나 혼자 전전긍긍하면서 원무과를 들낙날락한 끝에 간신히 밤이 되어서야 특실에 가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