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무슨 문제가 걸리면 거기에 몰두해서 해결될 때까지 밤낮 안 가리고 매달려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의욕과 집념이 강하였고 이리 궁리 저리 궁리하는 아이디어맨이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서 결정이 되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정없이 몰아 부치는 성격 탓에 회사에서의 별명이 '불도저' 였다.
뭔가 불편하다거나 미진하다 싶으면 온종일 궁리하여 2층 기계를 1층으로 끌어내린다든가, 이 사무실과 저 사무실을 바꾼다든가, 이 공정과 저 공정을 합쳐본다든가, 새로 창문을 낸다든가 하는 식으로 항상 변화를 꾀하였다. 그러자니 본인도 피곤했겠지만 그 지시가 떨어지면 직접 움직여야 하는 직원들은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그렇더라도 직원들이 성심성의껏 그 지시에 잘 따라주어 진정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렇게 자신의 머리와 몸을 혹사시켰으니 직원들은 사장님을 '가실 때까지 일만 하다 가신 분'이라고 기억한다. 직원들은 해외 전시회에 나가서도 일정 마치면 머뭇거리지 않고 그날로 귀국하는 사장님이 안타까웠다.
“사장님, 다른 분들처럼 해외 나가시면 관광도 좀 하시고 구경도 다니시다 오시죠.”
“야, 그럴 시간이 어딨냐? 일이 밀려 있잖아, 일이.” 이런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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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환경제지 전시회장의 풍남스크린 전시부스(코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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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일이 없으면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퇴근 때까지 하루 종일회사에만 있으니 직원들이 죽어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직원들에게서 휴일까지 빼앗는 것은 아니어서, 공장을 짓거나 설비를 바꿀 때면 휴일 날 혼자 나와서 업자들을 불러 다가 일을 시켰다. 그래서 사장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회사 간부들은 휴일에도 나와야 했으니, 이래저래 직원들은 사장님의 '임전무퇴 정신' 때문에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세일기계에서 남편의 동료였다가 풍남으로 오신 김수천 상무님은 그 임전무퇴 정신의 대표적인 에피소드를 알고 계신다.
세일기계가 부천 내동에 있으니 출근은 두 분 다 부천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회사까지 가야 했다. 그러면 A정류장을 지나 B정류장이 가까워질 무렵 회사가 위치해 있고,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B정류장에서 내려서 거슬러 올라가 회사에 출근했다. 그런데 남편은 항상 A정류장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서 출근하는 것이다. 그래서 왜 그런가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한텐 후퇴라는 게 없네.”
그래서 '참 독특한 사람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든 크게 해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인데, 누가 봐도 어리석은 그 행동에서 그릇을 읽어낸 김 상무님도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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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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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임전무퇴하려고 하니 남편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무엇인가를 구상했다. 그게 물이 고이지 않고 썩지 않게 하려는 개혁이겠지만, 그 개혁정신을 집에까지 가져오는 데에는 질색이었다.
"여보, 이 소파 저리 옮기고 탁자를 여기 놓을까요?"
"여보, 집 외벽 색 칠을 다시 하면 어 떨까요?"
"여보, 마루가 좀 낡은 것 같은데 요참에 확 뜯어내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노상 궁리를 했다. 나는 새벽부터 잔걸음 치고 온갖 궂은 일 다 하면서 밤까지 뛰어다니는 바람에 심신이 피로해서 한 조각의 잠도 아까운 판국인데, 남편은 그런 나를 붙잡고 자꾸만 일을 만들자는 것이다.
“여보, 난 하루 일과에도 고달퍼 죽겠어요. 거기다가 밤마다 당신이 부르면 쫓아다녀야 하니 너무나 힘들어요. 그리고 그런 건 다 내일이니까 놔두세요, 제발.”
그러면 남편은 그때부터 내가 깰까봐 숨소리도 조용조용 안 움직이고 누워서 구상에 열중하곤 했다. 다음날 졸리면 자기는 회사에서 쉴 수나 있지만, 나는 새벽부터 밤까지 바닥에 엉덩이 붙일 사이 없이 힘들게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