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또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임전무퇴의 정신을 발휘했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소중하게,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일기계 공장장 시절 남편은 일본의 <오하라> 사와 거래를 하게 되었는데, 재일교포인 일본 대성무역회사의 고영기 사장님이 통역을 비롯해서 모든 일을 중개해 주셨다. 그런데 고 사장님의 부친이신 고 회장님은 국가관이 투철하신 분이어서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고 회장님의 사무실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는데, 사무실 벽 중앙에 대형 태극기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일본 땅 한복판 사무실에 태극기를 당당히 걸어놓고 사업을 하신다는 게 트로이의 목마를 타고 진군하는 독립투사인 것 같아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분이 한국에 대한 인상은 좋게 갖고 있지 않으셨다. 무역 때문에 많이 다녀봐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한국과 한국인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중에 밝힌 말이지만, 그러셨던 분이 '박 사장님' 을 만나고 나서부터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니, 한국에도 이런 애국자가 있었네!’
남편의 투철한 애국심과 철저히 실천하는 애국정신에 놀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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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교포 대성산업 고 회장님 가족과 함께한 일본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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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회장님은 남편을 아들처럼 사랑해주셨다. 남편 또한 고 회장님을 아버님처럼 생각하여 존경하고 따랐다. 풍남을 만든 뒤부터 우리부부는 회장님의 가족 여행에 초대를 받아 가족들과 친해졌다. 그 중에서, 오사카에서 차를 타고 몇 시간 가다 보면 태평양 바다가 활짝 펼쳐져 보이는 송풍각 호텔의 정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또한 오하라 사장님의 별장에도 초대받아 가봤었는데, 그 그림 같던 풍경도 눈에 선하다. 별장 앞쪽으로 황금잉어들이 수없이 노니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먹이를 자동으로 주는 시설이 너무 신기했고, 태평양 바람을 먹으며 크는 귤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서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 멀리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있는 후지 산은 또 얼마나 환상적 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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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오하라 사장님 부자와 고영기 사장님(오하라 회사 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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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성산업의 고 회장님은 일본 호레가와 사 측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남편을 소개해 주었고, 오하라 쪽도 그런 식으로 연결이 되었다. 오하라 쪽에서 풍남 쪽에 기술을 주어 제품을 생산하게 하고 납품을 받는 OEM방식이었는데, 그것은 풍남처럼 작은 회사에게는 큰 혜택이었다. 그러던 것이 10년이 흐르고 나니까 완전히 역전되었다. 회사 규모도 풍남이 오하라보다 훨씬 커졌지만 풍남 쪽의 기술이 앞서게 되어 그쪽에서 오히려 풍남의 기술을 이전받게 되었다. 그렇게 역전된 상황에서도 남편은 오하라와의 초창기와 변함없이 유지해 나갔다.
1994년 싱가포르 제지전시회에 갔을 때, 우리는 핀란드 CAE의 영업책임자인 카리 라우타마키 씨를 처음 만났다. 키도 크고 노래도 잘하고 세련된 모습이 미국의 포드 대통령을 닮았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같은 업계에 있는데다가 교양이 있고 정서가 풍부하여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2001년에 CAE와 기술제휴를 하고 합작투자를 하게 된 것도 카리 씨와의 인연 때문인데, 2002년 CAE측의 변수로 인하여 합작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계속 유지사를 한 것도 카리 씨와의 의리 때문이었다. 회사 외부인들도 그랬으니 회사 직원들과는 더 할 나위가 없었다.
회사에 오래 있던 직원들이 퇴사하여 독립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지원을 해줬다. 공장장 하던 김종원 대자의 경우가 그랬고, 바스켓 실린더 개발에 공이 컸던 백남욱 상무님, 영업을 하던 나성준 씨……. 그 분들에게 풍남의 거래처를 너그럽게 양보하고 일감까지 넘겨주는 최상의 배려를 하였다.
특히 이건휘 부장님의 경우는 독립을 시키려고 기계구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IMF가 터지는 바람에 보류하게 된 케이스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너, 지금 이거 갖고 나가서 종업원 월급은 커녕 네 월급도 못 가져가면 어떻하냐?”
그래서 다시 회사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남편은 그 정도로 한 번 맺은 인연은 끈질기게 변함없이 유지해 나가고 진심으로 가꾸어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