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 씨와의 협상이 원만하게 이루어져, 마침내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캐나다로 건너갔다. 우리 측은 우리 부부와 두 딸, 통역하는 여직원을 비롯한 3명에 우리 측 국내변호사가 참석하였고, 저쪽에서는 CAE의 부회장을 비롯하여 국제변호사까지 여려 명이 대좌하고 앉았다.
그런데 아침 9시부터 시작하여 점심을 지나 오후 5까지 진행되는 회의가 무려 3일 동안 계속되었으니, 말도 못 알아듣는 나는 죽을 지경이었다. 커피를 못 마시는 나는 붕어처럼 물만 연속 마셔대니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만 나고, 가만히 앉아 있자니 졸음이 밀려와 연신 내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 사업가의 아내 된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었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치밀하면서 차분하게 협상을 진행하는 남편을 보니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짚고 넘어갈 것이 많으니 별별 조항이 다 들어가 있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점검하여 서로 의견을 내고 이견이 있으면 조율하여 합의를 보고, 다음 조항으로 넘어가고……. 이러다 보니 시간이 그만큼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이견이 생기면 대개의 경우 양보를 많이 했다. CAE측의 주식을 언제든지 도로 사올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영문으로 된, 그 두꺼운 계약서를 일일이 살피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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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E와의 합작계약 체결조인식(2000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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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얘기지만, 저쪽에서는 국제변호사를 고용한 데 반해서 우리 측에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 국내변호사를 고용했는데, 그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우리도 국제변호사를 고용했더라면 그 많은 조항을 일일이 다 살폈을 것이고, 결국 회사를 CAE 측에 넘기는 곁과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CAE는 풍남에 기술을 주어 자기네 제품도 만들도록 하면서, 그 대신 풍남은 동남아 시장만 진출하고 나머지 세계 시장은 자기네가 장악하겠다는 합작 계약이 이루어졌다. CAE가 스크린 바스켓 100년 역사를 가진 원조지만 인건비나 자재비가 비싸서 타산이 안 맞았고, 기술적으로는 그쪽이 풍남을 훨씬 앞질러 있기에 그것을 풍남에서 만들어 팔면 이익이 많이 날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2001년 1월 CAE와 합작회사를 하면서 회사 상호를 (주)‘풍남CAE’로 바꾸었다. 그리고 효율적인 공장 운영과 비용 절감을 위해 2공장에 있는 기계들을 하나둘씩 옮기기 시작하여 12월까지 완전히 이전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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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바리카우스 호수 앞에서(가장 키 큰 분이 카리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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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하나에 두 공장의 기계가 모였으니 좁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또 남편의 뜯어고치기가 시작되었다. 매일 옮기고 고치고 공사를 벌여 손바닥만 한 공간까지도 적절하게 활용하여 짜임새 있게 해 놓았다.
그런데 2공장을 옮기는 와중에 CAE가 그룹에서 분리되어 AFT로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 경우에는 회사 자체가 없어진 셈이었다.
남편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합작을 깰 생각이었다. 합작을 했으나 별 이득도 없었고, 제지업계 전체가 침체돼 있어서 전망이 불투명했던 것이다. 그래서 돈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런데 또 카리 씨가 내한을 했고, 1주일 뒤 남편은 당시에 미국 유학중이던 큰딸에게 이렇게 전화를 했다.
“카리가 일할 나이도 얼마 안 남아 있고, 이걸 깨면 카리가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아서 말이다. 그냥 하기로 했다.”
나도 카리 씨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남편에게 동의하여, 풍남은 AFT와의 합작을 유지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