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멋 없는 남자 (제26회)

경춘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학교에 전학 온 친구였다. 선화동 우리 집에서 한 5분 거리에 있는 그 애네 집은 나한테 유일한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경춘이 아버지는 그때 함석일, 그러니까 요즘으로 말하면 닥트 공사 기술자였고, 삼촌들도 같이 일했다. 엄마는 구멍가게를 하셨다. 가서 보면 경춘이는 항상 조개를 까고 우거지를 다듬고 있었다. 그걸 삶아서 가게에서 파는 것이다.

그 애 엄마가 계모여서 그랬는지, 내가 찾아가면 부모님들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 그래도 늘 웃으면서 찾아오는 나를 그리 퉁명스럽게 대하진 않으셨다.

“야, 네 단골손님 온다!”
내가 가면 삼촌들은 그렇게 놀려대곤 하였다. 하루 종일 집에서 꼼짝 못하고 일만 해야 하는 경춘이는 친구라고는 유일무이하게 나뿐이었으니 내가 찾아가면 부모님 눈치를 보면서도 반갑게 맞이해주곤 하였다.



	▲ 꿈 많은 처녀시절

그 무렵 큰오빠가 드디어 일을 냈다. 우리 집이 가진 거라곤 전세방에, 경기도 화성군 마도면 고향에 있는 손바닥만한 전답 조금이 전부였는데, 그 땅을 팔아 새로 사업을 벌여 보겠다는 것이었다. 팔아보았자 큰돈도 아니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일한 상속물인 만큼 엄마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어서 나는 파는 것이 마뜩찮았다.

나는 당돌하게도 오빠에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뭐야! 아, 이 쬐그만 것이 걸핏하면 오래비 하는 일에 나서네! 어휴, 요걸 그냥!”

큰오빠는 나에게 발길질을 하려고 들었고, 나는 재빨리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그런데 몹시 화가 난 오빠가 나를 쫓아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신발을 신을 새도 없이 두 손에 들고 다리야 나 살려라 냅다 뛰었다.

“거기 안 서!”
오빠도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나를 뒤쫓아 왔다. 잡혔다간 그 솥뚜껑 같은 손에 맞아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겁에 질린 나는 무작정 골목길로 열심히 뛰기만 했는데, 그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오빠 손에 잡힐 것이었다. 하지만 억척빼기에 꾀쟁이에 당차기로 소문난 내가 그냥 잡힐 리도 없어서, 도망치다가 누구네 집 담벼락을 돌자마자 굴뚝과 담벼락 틈 사이에 얼른 들어가 콕 박혀 버렸다. 그러자 뒤미처 거기에 다다른 오빠는 그것도 보지 못한 채 담벼락을 돌아 골목길 저쪽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그곳에서 튀어나와 반대쪽으로 달렸다. 잡히면 흠씬 맞을 게 뻔했다.

오빠는 고향 전답을 판 돈으로 무슨 사업인가를 벌였는데 몇 달 뒤에 이내 빈털터리가 되었고, 그 후 하는 일마다 성공을 하지 못하였다.

그 무렵 , 우리 집 에는 희망의 빛이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오빠들과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 데도 다니지 말라고 했지만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기도 했고 돈도 좀 있어야겠기에 취직을 했다. 그때 신흥동에 있던 럭키소주 회사였다.



	▲ 서로 하나 되는 꿈을 키워가던 시절

그 무렵부터 그 이와 편지가 오갔는데, 고작해야 서너 달에 한 번꼴이었다. 그 이는 의례적인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감성이 풍부해서 제법 감상적인 내용을 담았던 것 같다. 얼굴을 대하지 않고 편지로 하는 말이니까 그랬던 것인데, 아마도 그 이는 그것이 자기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 후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다가 다시 와룡소주에 취직을 했다. 나는 회사에서 수많은 총각들의 구애를 받았는데, 도도하게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회사생활만 열심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