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혼배식을 올리고 동반자로...

“이제 오지 마세요. 왜 자꾸 오세요?”
무뚝뚝한 그 이를 믿고 일생을 맡길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보다는 형편이 좀 나은 집으로 시집을 싶어서 였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을 일곱 번 쯤 보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 이가 나를 찾아왔고, 나는 선보러 다닌다는 말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다음부터는 자주 찾아오는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말수도 적었고 달콤한 말도 없었다. 그랬지만 큰오빠는 그 이를 마음에 들어 했다.
“네가 뭐 잘났다고 그러냐? 걔가 그래도 보니까 사람은 진실한 것 같더라. 그냥 해라”

하기는 긍정적으로 보면 나무랄 데가 없는 청년이었다. 게다가 그 이는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다만 표현력이 없어서 표현을 못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나를 수없이 찾아왔건만 환영해준 적도 없고 좋아한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형편이 너무 똑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꾸준하게 나를 찾아온, 그 진실 하나가 마침내 나를 움직였다.

“내가 어디가 그렇게 좋았던 거야?”
언젠가 술 한 잔 먹은 김에 내가 물어보자, 그 이는 통의동 시절의 나를 상기했다.
“내가 가게에 갔을 때 당신은 틈만 나면 항상 책을 보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한번은 당신네 집 화장실에 갔는데, 치약을 배를 갈라서 썼고요. 그래서 아, 이만하면 우리 집 없는 살림에 와서도 알뜰하게 살겠다 싶었고, 내 평생의 동반자로 적격이겠다 싶었지요.”

결혼 얘기가 나왔고, 그 이의 어머니를 만나 뵈러 갈 정도로 진전을 보았다. 집은 전세방이나마 새마을 동네의 주택이었고, 어머니는 인물도 좋고 귀티가 났다. 다소곳이 큰절을 올렸다.

“나는 네가 내 집 사람이 되려니까 그런지 몰라도 귀엽게 보인다.”
“예, 감사합니다.”
“너도 성당에 가서 교리를 받아라.”

어머님은 시집을 오려면 영세부터 받으라고 하셨다. 시집에서는 그 이가 먼저 입교를 한 후, 다른 식구들도 모두 입교를 한 상태였다. 시집을 가면 시댁에 모든 걸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여 말씀대로 <답동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부지런히 일하면서 교리도 열심히 받으러 다녔다. 그러던 중 안집 작은아들이 화재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었을 것을, 신앙을 가져서 그런지 영안실에서 혼자 밤을 지새며 시신을 지키기도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예비신자이긴 했어도 신앙심은 누구 못지않게 신실했던 것 같다.

1970년 12월에 개근상을 탔고, 영세를 받으며 강 수녀님으로부터 '루시아' 라는 본명을 받았다.

“루시아 성녀님은 자기 눈을 빼서 없는 사람한테 주었대요. 루시아는 봉사하는 마음이 많고 희생정신이 강하니까 루시아 성녀님처럼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강 수녀님의 기원이 담겨서 그런지 아니면 내 본디 성격이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나는 이웃에 늘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듬해 3월 16일, 안양 장래동 성당에서 양병묵 신부님의 주례로 혼배식을 올렸다. 영세 받을 때 어머님이 보내 주신 하얀 한복을 그대로 입고 면사포만 빌려다 썼다.



	▲1971년 안양 장래동 성당에서 올린 혼배식 모습

그 전날에 눈이 정강이까지 왔고 나중에는 비로 변하기까지 하여, 혼배식 날 시골에서 오신 분들을 비롯해서 하객들을 몹시 고생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비가 혼배식이 끝나니까 뚝 그치더니 해가 쨍쨍 비쳤다. 모든 분들이 우리 부부가 잘살겠다고 덕담을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