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보호자 소파에 누워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기가 막히고 막막했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보 괜찮아요. 난 행복하게 살았어요. 당신한테 끝까지 잘해주려고 했는데, 그게 제일 죄송해요.”
뭔가 눈칠 챈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밝힐 수가 없어서 나는 묵묵부답으로 잠자코 있었다. 무응답이 긍정이라는 걸 본인도 느꼈겠지만 그렇다고 충격을 받았다는 느낌도 없이 평온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원래 무슨 큰일이 있어도 야단스러운 성격도 아니거니와, 아직은 희망이 있고 노력의 여지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은 생각을 해둔 듯 회사의 한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차 신청한 것을 최소하고 타고 다니던 차를 팔라고 했다.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팔라는 것을 보니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자신도 아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퇴원수속을 밟고 집으로 향했다.
‘어찌 이런 일이, 이렇게 선한 사람에게 올 수 있을까. 정말 하느님이 계시다면 사회에서 필요한 이 사람을 왜 데려가려 하실까. 이제껏 죽도록 고생만 했으니 이제는 좀 편히 살도록 배려를 해주셔도 될 텐데, 어찌 이러실 수가 있을까.’
나는 암담한 마음에 온몸이 사그라들고 밑으로 한없이 꺼져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이 정도인데 본인 심정을 오죽할까. 너무도 불쌍한 마음에 설움이 북받쳤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이럴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것이다.
흩어지고 주저앉으려는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당신 대장암이래요.”
“…….”
“회사 가서 정리해야 하지 않겠어요?”
환자한테 쉬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닥칠 일이라면 차라리 미리 알고 앞으로 상황에 대처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그래요, 알았어요. 민선이 오라고 그래요.”
“예, 걔가 학점 다 따서 조기졸업이 된대요.”
민선이는 그때 미국 오리건주립대학 대학원에서 MBA과정을 끝내가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남편은 며칠동안 아침마다 정상출근을 했다. 서류나 소지품 같은 것을 정리하고 챙겨서는 점심 무렵에 집으로 돌아왔다. 점점 복수가 차오니 오후에는 힘이 들어 누워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온갖 민간요법이 다 동원되었다. 주변사람들이 놀라고 온천지에 난리가 나서 사방에서 좋다는 것은 다 우리집으로 몰려들었다. 끼니때마다 매일같이 좋다는 것은 뭐든지 먹도록 했다.
투병생활을 집에서 25일쯤 하는 동안은 그런대로 진밥을 먹어도 별탈이 없었고, 변을 보는 것도 애로사항이 심하지 않았다. 성당의 형제자매들과 이웃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우리집으로 출근하다시피 해가며 남편의 몸을 주물러주고 수지침을 놓아주었다. 수녀님과 신부님이 다 동원돼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에서까지 쾌유미사를 매일같이 드려주셨다. 영지에 웅담에 산삼까지. 아마도 그 25일 동안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방법은 다 동원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저녁때 오면 “술상을 차려주라”고 하고 자신은 못 먹고 누워있는데도 자기 보는 데서 먹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옛날 얘기를 하곤 했는데, 황달이 심하고 복수가 차니까 힘들어했지 그때까지만 해도 아파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회계사를 불러 상속에 관한 의논을 하더니 자기의 재산목록을 무도 작성하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이 바람도 쐴 겸 강화를 갔다 오자고 하여 아랫집 동생네 부부하고 길을 나섰다. 강화에 도착하여 우연하게 <강화추모원>이라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보 강화추모원이 생겼네. 한번 가봅시다.”
직접 가보니 많이 올라가지도 않고 좋아보였다.
“이거 형님 하나 사드리지요?”
우리가 2년 전 경춘선 타고 가다 대성리역에서 좀 들어가 있는 북한강 공원묘지라는 곳에 납골묘를 하나 사놓은 게 있었다. 무려 84기나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아직 미완성이어서 계약금만 치루고 있었다. 그걸 한 김에 우리 친정아버지의 묘가 비만 오면 좋지 않으니 항상 새로 사드려야겠다고 그랬었는데, 그걸 말 하는 것이었다.
강화에 다녀 온 후 남편의 병색이 점점 짙어져 가는데,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은 거기 대성리 못 찾아오죠?”
내가 길눈이 어두운 걸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신 강화도 좋아하는데 강화도로 사죠.”
“거기 사 놓은 건 어떡하고요?”
“거긴 10프로 손해 보면 해약이 가능해요. 당신은 강화를 좋아하잖아요. 강화로 사요.”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미어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묘 자리를 언급하는 남편의 마음은 더할 거라는 생각을 하니 내색을 할 수도 없어서 울음을 꾹꾹 눌러가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당신도 아픈데 어떻게 계약을 해요?”
“오라고 그러면 되죠.”
남편은 마치 업무를 처리하듯 간단히 대답했다.
이튿날 전화를 걸어 추모원 관계자가 집으로 왔고, 계약을 했다.
회사경영에 대한 후속조치가 이루어지면서 간부들도 여러 번 집으로 불렀다. “우리 민선이가 오면 사장으로 취임을 할 거다. 나 나을 때까지 업무를 봐야하니까 그렇게들 알고 잘 보조해 주고 받들어주기 바란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민선이가 귀국해 사장으로 출근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거래처 다니는 일에서부터 서초동 납골묘 호사에 가서 해약하는 일까지 웬만한 건 전부 민선이를 시켰다. 그리고 민선이가 퇴근을 하면 꼭 별일은 없느냐고 물었다.
“별일 없었니? 어려운 일은 뭐냐?”
그렇게 일일이 다 가르쳐주곤 했다.
2003년 2월, 병은 점점 더 깊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