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국도 못 끓이는 새댁 (제3...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남편은 밀양 박씨 귀정공파 전한공 23대 자손이다.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남자 키가 172센티 이면 장신에 속했다. 게다가 어머님은 당신 아들이 피부가 곱고 인물도 출중하여 우리 아들처럼 잘생기고 잘난 사람이 없었다고 하셨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효자였다. 4살 때도 산으로 다니면서 놀다가 들어올 때 그냥 들어오지 않고 새끼줄에 솔가지를 땔감이라고 끼어서 질질 끌고 왔다고 했다.

어머님은 6남매를 무척 사랑하셨고, 특히 장남한테 애착이 많았다. 당신이 아프면 항상 큰아들이 죽을 쑤어드렸고, 동생들도 다 업어서 키웠으며,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하여 어머님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아들이 '장가' 문제에서 당신의 말을 거역한 것이다. 따라서 기대도 컸기에 실망도 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의 외사촌 이모님이 효자동에서 약국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참한 처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가끔 오가는 그 이를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언니네 집은 집안이 되려면 얘를 데려가야 해. 생활력이 강하니까 집안을 금방 일으킬 거야.”

그때부터 아가씨는 시댁을 드나들게 되었고, 주말마다 꼬박꼬박 와서 빨래하고 밥하고 김치를 해주곤 갔다. 그 생활을 2년간이나 했으니 어머님을 비롯해서 식구들이 다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 이는 퇴근하여 그 여자가 있으면 들어오지도 않고 나갔다가 여자가 갔을 때쯤 해서 들어오곤 했다. 아마도 그때마나 나를 찾아온 것 같았다.

“내가 약 먹고 죽는다고 까지도 해보고, 밥도 굶겨보고 별의별 수단을 다 써봤는데도 얘가 굽히지 않더라. 그래서 내가 졌다. 너는 그렇게 어렵게 왔으니 앞으로 식구들한테 잘해라."

나는 어머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일생 동안 시부모 · 시동생 · 시누이들을 잘 모시고 잘해야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결혼식을 마친 후, 신혼여행은 엄두도 못 내고, 택시를 타고 수원시를 한 바퀴 돈 다음 시댁에서 첫날밤을 지냈다.

시집 식구는 어머님을 비롯해서 큰 시동생, 둘째 시동생, 큰 시누이, 작은 시누이, 막내 시누이까지 모두 일곱 식구였다. 그런데 나는 처녀 적에 부엌일을 안 해봐서 콩나물국도 못 끓일 정도였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콩나물국도 못 끓이냐?”

하지만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해 놓는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머니, 이건 어떡할까요?”
그러면 어머님은 안에서 말씀하신다.
“그건 이리저리 하고, 나물은 이렇게 저렇게 요리를 해라.”
말씀이 빨라 한 번에 쭉 읊으시는데, 나는 머릿속으로 재빨리 입력하여 아침밥을 준비하곤 했다.

“손도 꼭 골맹이만 해가지고 저런 손으로 맏며느리 역할을 하겠나, 쯧쯧!”
골맹이는 바느질할 때 쓰는 골무의 충청도 사투리인데, 손이 작아서 일을 잘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 못하는 걸 부지런함으로 대신했고, 그 다음부터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아침밥을 먹고 다들 출근하면 그때부터 어머님과 단 둘만이 남게 된다. 하루 종일 쓸고 닦고 심부름하고 시키시는 일 다 해놓고 밤 11시쯤 되어야 간신히 우리 방에 들어가 누워볼 수 있었다.

퇴근하여 저녁밥을 먹으면 가족들은 어머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자기 전까지는 거기에서 어머니 다리 · 어깨를 주물러 드렸고, “그만하고 건너가 자라”고 명령하시면 그 제서야 우리 방으로 건너왔다. 자녀들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은 한 달쯤 삼양펄프를 잘 다녔다. 그런데 노조가 생겨 거기에 가입하고 농성을 하다가 그만두게 되었다.

집안에서 제일 큰 수입원인 장남이 직장을 그만두자, 어머님과 온 식구가 고민에 빠졌다. 남편은 잠자리에서 내게 물었다.
“여보, 내가 리어카를 끌면 당신이 뒤를 밀 수 있어요?”
“그럼요. 당신이 하라면 뭐든 할게요.”

그 이는 신문 광고를 보고 이곳저곳을 찾아가고, 주위 사람들한테 알아보기도 하면서 취직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급한 마음에 월부 책장사도 잠깐 해보다가 때려치우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날짜가 지난 신문을 보고 쌍문동에 있는 신양제지라는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미 지난 신문이었으니 사원 모집 날짜도 조금 지나 있었다.

담당자는 이미 시험을 치러 사람을 다 뽑았다고 하면서도 남편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이렇게 말했다.
“인상이 참 좋아 보입니다. 시험지가 있는데 한 번 치러보겠습니까?”“예, 정말 고맙습니다.”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동앗줄이 다시 나타났으니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으랴. 그 이는 거듭거듭 감사인사를 하고, 열심히 시험문제를 풀었다. 그런데 100점 만점에 무려 98점이 나왔고, 담당자는 그 즉시 합격 내정자 한 사람을 지우고 그 자리에 ‘박노광’을 써넣었다.

막내 시누이가 중학생 때였다.
“너 시동생도 시누이도 아직 안 들어왔는데 그렇게 자도 되는 거냐! 집에서 배운 가정교육이 그것밖에 안 돼?”
그러자 남편이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 그런 일이 없도록 제가 주의를 시키겠습니다.”
“어머님,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나도 어머님에게 얼른 용서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