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에서 쌍문동까지 출근을 하는 일이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71년 당시는 전철도 없어서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다녀야 하니 너무나 힘들었다.
남편은 체격은 큰데 가난한 살림에 잘 먹지 못한 탓인지 좀 무른 편이었다. 저녁에 집에 오면 눈이 다 풀려 있는 것이다. 어머님은 그런 아들을 보며 너무 안쓰럽고 가슴 아파 하셨다.
"노광아, 안 되겠다. 너 출퇴근하다가는 사람 잡겠다. 자취를 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
그래서 남편은 쌍문동 회사 옆에 방을 얻어 혼자 나갔다. 결혼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신랑이 나가게 되면 신부가 따라 나가야 하는 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어머님 말씀대로 순순히 따랐으며, 새댁이던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려니 하면서 무슨 일이든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새색시를 그렇게 적지(?)에 홀로 둔 것이 안 됐던지 신랑은 1주일이면 두 번씩 집에 왔다. 그것도 힘들어 하니 이번에는 망원동에 있는 외숙모네 집에서 다니게 하였다. 그리고 또 그것도 힘들어하니 그 제서야 신랑신부를 합쳐 주었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남편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내 땅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재산이 많은 부호의 손자로 태어나, 초등학교 때까지 머슴 등에 업혀 다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성실한 막내아들에게 집안 살림을 맡겼다. 그 막내아들이 시아버님이었는데, 그 후 뜻하지 않은 일로 가산은 탕진되어 가고 집안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시아버님은 슬하에 모두 6남매를 두셨다. 하지만 시아버님은 어머님과 사이가 안 좋으셔서 거의 바깥 생활을 하셨다. 그러다 보니 어머님이 집안을 돌보셔야 했다. 어머님은 장사를 시작하셨고,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셨다.
잠시라도 눈앞에 자식이 안 보이면 애를 태우시며 불안해 하시고 또한 자녀교육에도 엄하게 질책을 하셨다고 했다.
그러다가 큰시누이가 방직회사에 취직을 해서 올라왔고, 몇 년 일하여 자리를 잡자 온 식구가 안양으로 온 것이다.
시아버님은 우리 큰딸애가 두 살 때인 74년쯤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길고 긴 논둑길 밭둑길을 상여가 가는데 그 뒤를 따르는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집안이 워낙 번성해서 누가 보기에도 흐뭇하고 좋은 광경이었다.
시아버님께서는 살아생전에 말씀이 없으시고 형제간에 우애가 좋았으며 매우 자상한 분이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시댁 식구들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힘을 합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얼마나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는지 잘 알기 때문에 어머니를 한결같이 위하고 어머니 말씀이라면 그야말로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효자들이었다. 장남이 그렇게 솔선수범하니 밑의 동생들도 보고 배우는 것이었다. 그러던 남편이 결혼문제로 어머니의 뜻을 거역했으니, 어머님이나 식구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이해할 만했다.
창동에 이사 온 얼마 뒤, 어머님의 생신이 돌아왔다. 어머님 생신 선물을 사드리려니 돈이 없었다. 그때 나에게는 결혼 패물로 이모님이 주신 루비반지와 외숙모님이 주신 목걸이와 금반지가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일부를 활용하여, 어머님께 십자가상이 달린 다섯 돈짜리 금목걸이를 해드렸다.
남편의 월급은 2만 8천 원. 그걸 어머님께 봉투째 다 드리고 5천 원을 타와 3천원은 월세를 내고 2천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
콩나물 5원어치를 사도 그걸 반으로 나누어 국을 끓여 두 번을 먹고, 아침에만 밥을 하여 남편 도시락을 싸주고는 점심 저녁엔 밀가루만 먹었다. 워낙 생활비가 쥐꼬리만 하니 알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서도 나는 가내수공업을 하여 한푼 두푼 저축을 했다. 그래서 동네에서 ‘알뜰부인' 이라고 별명이 붙었다.
그렇게 알뜰부인으로 돈을 모아 어머님께 텔레비전을 사다드렸다. 어떻게 해서든지 어머님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사를 나왔지만 2, 3일에 한 번씩은 어머님께 갔다. 그런데 창동에서 버스를 타고 미아리까지 와서, 차부에서 서울역까지 타고 가서, 거기에서 다시 안양 가는 버스를 타고 안양에 내려서는 다시 걸어가야 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도 내가 부지런한 건 인정을 해주셨다.
안양에 가면 어머님이 일할 것을 지정해 주셨다. 뭐가 없고 뭐가 떨어지고 빨래는 무엇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가 더러워졌고…….
그러면 시장부터 가서 장을 봐온다. 배추부터 씻어서 절여놓는다. 그런 다음 청소와 빨래를 해놓고, 이것저것 반찬을 만든다. 양념을 만들어 김치를 담그고, 우거지를 삶아 놓거나 두부라도 사다가 찌개라도 만들어 저녁 먹을거리를 해놓은 다음에야 창동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못 가게 되면 편지를 썼다.
‘어머니, 못 찾아뵈어서 죄송해요. 힘드신 건 다 놔두세요. 제가 가서 해드릴게요. 항상 맏며느리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점 용서하십시오. 며칠 뒤에 가서 뵈올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나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하여 어머님을 감복시켜 드리고 싶었다. 어머님에게 좋은 며느리로 남기 위해 그야말로 성심을 다해서 해드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