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출산 (제33회)

행당동 한양대 후문 근처에 '해태의 집'이라는 가게를 열었다. 도너츠만 하는 게 아니라 냉면과 햄버거 등 분식을 파는 10평쯤 되는 가게였다. 주방은 시동생이 책임을 지고, 나머지는 나와 둘째시누이가 가게 일을 보았다. 돈이 넉넉하지 않았으니 따로 방도 못 얻어, 밤이면 가게 바닥에 베니어판을 깔고 그 위에서 허드렛잠을 잤다.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고 잠자리마저 부실한 데다가 아이를 내 품에서 떼어놓았으니 나한테는 사는 게 안타까움뿐이었다.


	▲1973년 큰 딸 민선이와 친정 나들이 중 자유공원에서

민선이는 밤에 잠투정할 때면 할머니가 달래고 막내삼촌이 얼러주고 별짓을 다해도 엄마만 찾아대고, 견디다 못해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주면 철없는 모녀는 울기부터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또 애가 들어서서 입덧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찌나 입 덧을 심하게 했던지, 손님한테 햄버거 하나 갖다 주려고 하다가 나가서 토하고, 갖다 주고 나서 또 토하고, 도너츠 갖다 주려고 하다가 또 토하고…… 그런 식이었는데, 도너츠 튀기는 기름 냄새, 버터 냄새, 케첩 냄새가 그렇게 역겨웠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케첩을 싫어하는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내 심한 입덧은 우리 가족을 다시 모여 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내 입덧도 입덧이지만 그 이도 너무 힘들어 하고, 무엇보다도 어머님과 가족들이 민선이 때문에 너무 안쓰러워 했기 때문에 의정부 호원동에 방을 얻게 되었다.

산기가 있어 또 시댁에 갔다. 1975년 12월 22일 어머님의 도움을 받아 몸을 풀었다. 또 딸이었다. 아이가 나오자마자 몸이 떨려 왔다. 옆을 보니 어머님이 탯줄 자를 생각은 안 하고 망연자실 앉아 계셨다. 또 딸인 것에 실망이 크셨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더욱더 사시나무 떨듯이 떨려 오고, 이내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탯줄을 잘라 주었는데도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 이부자리가 다 젖고 온 방바닥을 다 적실 정도가 되었는데도 그치지 않는 가운데 나는 그만 정신을 놓고 말았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안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강보에 싸인 아이는 쌔근쌔근 옆에서 잘 자고 있었다. 천사같이 평화로운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 졌다.

어머님이 밥을 해다 주셨는데 참, 그런 와중에서도 왜 그렇게 그 밥과 국이 달고 달던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도 미역국을 먹을 때마다 그때 그 맛을 느낀다.

남편은 퇴근하여 시누이에게 그 말을 전해 들었다
“오빠, 또 딸 났대. 공주 또 났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없던 오빠가 여동생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가서 소주 몇 병 사와라.”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두 병을 안주도 없이 벌컥벌컥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산모한테 오지도, 전화를 하지도 않았던 기억 이 난다.

남편은 내가 몸을 푼 지 12일 만에 전화를 했다. 퇴근해서 온다는 것이었다.
“여보, 젖이 안 나와서 그러니 돼지 족발 좀 사다주실래요? 그걸 먹으면 젖이 잘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미안한 마음에 신경을 너무 써서 그런 건지, 젖이 전혀 돌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왔을 때 나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볼 낯이 없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여보, 수고 많으셨어요. 너무 애쓰셨어요.”

내 얼굴을 덮고 있는 이불이 젖혀지고 미소를 띄우고 있는 남편이 보였는데, 그 이는 옆에 누워 있는 애기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얼마나 서운할까를 생각해 보니 남편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었는데, 나는 또 아무것도 모른 채 미안함의 대상이 된 우리 예쁜 둘째딸에게 더욱 미안했다.
“여보 애기 좀 보세요.”
하니까 남편은 멀리 앉아 눈길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 이가 신당동 집으로 돌아간 후, 돼지 족발을 삶아서는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부엌에 서서 물렁뼈까지 오독오독 씹어 가며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렇게 먹고 나니 기운이 돌아 눈도 훤히 떠지는 것 같고 애기 젖도 잘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