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당동 해태의 집은 제법 장사가 잘 되어서 돈을 많이 모았다. 큰시동생이나 시누이들이 돈을 허투루 쓰는 편이 아니었고, 나가는 돈을 최소한으로 절약하며 살았기 때문이었다.
재선이를 낳고 몇 개월 후, 시동생은 해태의 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신림동에 독일제과점을 내게 되었다.
대한펄프에서 남편은 성실하고 일 잘한다고 인정을 받아 동기들보다 먼저 반장까지 승진하였다. 연말이면 최화식 사장님에게 이것저것 상도 많이 받았다. 고오석 전무님은 그런 남편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세일기계를 창업하고 독립하면서 공장장으로 스카우트하였다.
한편 신림동 독일제과점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장사가 잘되어서 시동생은 돈을 많이 벌었다. 그리하여 신림동에 조그만 이층집을 사게 되었다.
세일기계로 회사를 옮기면서 우리는 신림동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작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세 번째도 딸이었다. 나는 어머님께 너무 죄송하다 못해 하느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셋째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 데도 전혀 자라지를 않았고 갑자기 자꾸 딸꾹질을 해댔다. 예방주사도 맞힐 겸 동네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라고 하여 택시를 타고 서울대학병원으로 갔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진찰을 받았더니 병명이 '뇌수종'이라고 나왔다. 뇌에 물이 찬 상태 이고, 임신 중에 산모가 쇼크를 받으면 그런 일이 생긴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와 계셨으나 큰올케 때문에 마냥 있을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셨고, 가끔씩 오셔서 반찬만 해놓고 가셨다. 남편은 아침에 두 아이를 집에 남겨두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출근해야만 했다. 아이들을 집안에 둔 채 문을 잠그고 떠나야하는 애 아빠는 얼마나 마음이 애잔하고 고통스러웠을까.
병원에서 치료는 계속 받고 있으나 차도가 보이질 않으니 마음이 초초해졌다.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가 영등포 명소아과를 권하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문전박대를 받았고, 이번에는 다시 소아병원으로 갔다. 그랬더니 거기서는 다시 큰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비몽사몽에 거의 숨을 깔딱깔딱 하는 상태였다. 서울대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뇌과로 가보았자 받아주지 않을 테니 응급실로 갔다.
남편과 나는 오직 지선이의 쾌유만을 빌면서 혼신을 다하였다. 환자는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산모도 제대로 끼니를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하고 초췌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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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를 도와 파를 다듬어 주는 남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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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깐이라도 내가 없는 동안 아이가 어떻게 될까봐 아이의 머리맡을 일 분 일 초도 비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식당에도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니, 식사시간에 복도를 다니며 환자가 남기고 내놓은 밥을 긁어먹었다.
간신히 8인용 입원실이 나서 자리를 잡았다. 남편이 가끔 애들을 데리고 오면, 엄마가 보살피지 않으니 아이들 행색은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고, 나도 마찬가지여서 병실 안 사람들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 집안에 환자가 하나 있으면 온 식구가 사는 꼴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걸 그분들도 동병상련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가끔 친정어머니가 오실 때 밥을 가져오시면 그때서야 제대로 된 요기를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 모녀를 보시며 눈시울을 붉히셨고, 사람 꼴이 아닌 당신 딸이 너무 측은하고 불쌍하였던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에미야, 애는 살아도 사는 게 아냐. 지금 약 기운으로 사는 거지. 그러니 이제 그만…….”
약 힘이나 병원 힘을 빌리지 말고 이제 그만 아이를 떠나보내자는 말씀이었다. 아이가 당신 딸을 너무 힘들게 하니까 그러신 것이지만, 그때 나는 어머니가 너무 야속했다. 치사랑보다는 내리사랑이 강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