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재가 (제37회)

나는 경기도 화성군 마도면 쌍송리 54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김교금)와 어머니(곽천순)는 2남 3녀를 두셨는데, 나는 막내딸이었고, 바로 위 언니가 병사하여 2남 2녀가 되었다.

우리 마을은 경주 김씨 집안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고, 특히 큰집과 이웃하고 있어서 서로 의지하며 잘 살았다. 큰집은 큰아버지·큰어머님을 비롯하여 사촌오빠 다섯 분에 사촌여동생까지 여덟 식구였는데, 특히 사촌동생 순화는 나하고 동갑이어서 친구처럼 잘 지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면 큰어머님 댁에 가서 순화하고 개구리 잡으러 다니다 거머리에게 물려서 도망 다니면 순화가 막대기로 떼어준다고 쫓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원두막에서 얼마나 뛰어 놀았는지 피곤함에 지쳐 둘이 잠들었는데 순화가 먼저 밑으로 떨어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또 그 위에 떨어진 채 그대로자고 있는 것을 집안 어르신이 지나가시다 놀라 깨워서 일어나 보니 순화는 내 밑에 깔려 온몸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때 병사하셨고, 31살 청상과부가 되신 엄마는 대부도에서 참맛을 캐어 수원까지 맛살장사를 다니셨다. 논둑길을 건너고 산을 넘어 가야 하는 80리 길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장사를 다니시니 살림은 언니가 했다. 맛살장사로는 자식들 배를 채우기 힘들었고, 아들들의 장래가 걱정이 된 엄마는 우리를 언니에게 맡기고, 옛날 수인선의 종점인 인천 수인역 식당에서 먹고 자며 일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당신 몸도 고달프시면서도 두고 온 자식들 걱정에 잠을 설치시고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우리를 데려와서 같이 살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가 이렇게 권했다.
“그러지 말고 영감 하나 얻지 그래.”

▲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님을 모시고

영감을 얻으면 애들을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김종철이라는 함경북도 출신 분과 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그분은 일본 사람의 수용소로 썼던 2층 집에 방 하나를 갖고 있었다. 마루에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방이었다.

엄마는 살림을 차리자마자 우리들을 다 데려왔다. 아버지는 마누라를 얻었는가 했더니, 딸린 자식들이 줄줄이 넷씩이나 되니 매일같이 술 먹고 엄마를 때리고 우리도 때리곤 했다

“나는 너를 보고 살자했지, 니 새끼들까지 책임질 이유가 없지 않니!”

그 바람에 큰오빠는 트럭 조수로 나가고, 언니는 부산에 가서 남의 집살이를 했고, 작은오빠는 구두닦이에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러 나가 집에는 나와 엄마와 아버지만 남았다. 작은오빠는 나중에 트럭 조수로 취직하여 큰오빠와 마찬가지로 평생을 운전으로 살게 되었다.

엄마는 아버지 사이에 아이를 둘 낳았는데, 남동생은 여섯 살 때 엄마가 일하는 수인 역으로 오다가 큰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숨을 거두고, 여동생까지 네 식구가 살게 되었다.

나는 7살 때 인천으로 와 때늦은 9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매번 월사금을 못 내서 아침마다 출석부로 머리를 맞았다.
“집에 갔다 와!”
집에 온들 돈이 있을 리가 없어서, 집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목재소 앞에서 놀다가 오후에 다시 학교를 가곤 했다.

아버지는 밤만 되면 매일 엄마를 때렸다. 나도 언니처럼 가출을 하여 남의 집 살림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까봐, 그리고 동생들을 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조그마한 목판을 만들어 주어 초등학교 3학년 때 사탕장사를 했다. 동인천 역전에 있는 옛날 시외버스터미널이 내 시장터였다. 창문을 통해 승객한테 주문을 받아 사탕을 파는 것이다.

어린 것이 그걸 팔면서 얼마나 먹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단 한 개도 축내지 않고 열심으로 팔기만 했는데, 그래도 밤에 들어오면 아버지한테 매를 맞았다.
"왜 이것밖에 못 벌어 왔어!"
엄마가 말리면 매질은 또 엄마한테로 옮겨 갔다.

과일 장사도 했다. 한겨울에, 아버지는 만석부두 기찻길 옆에 동그란 멍석을 펴놓고 사과를 한 가마 쏟아주었다
“너, 이거 여기서 팔아갖고 와.”

추워서 부두에 오가는 사람도 없었고, 집이라야 저 멀리 판잣집 몇 채 있는 허허벌판에서 10원짜리 국광이 팔릴 리가 없었다. 그래도 한 푼이라도 더 벌라는 거였다. 지금도 석남동에 있는 친정을 가다 보면 그곳을 바라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