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오빠와 작은 오빠 (제39회)

자화자찬이어서 쑥스럽지만, 그렇게 나는 어릴 때부터 좀 영리한 편이어서 절대 절명의 위기를 몇 번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때릴 때도 나는 소리를 막 지르면서 울곤 하는 영리함을 발휘하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그러면 남들 보는 앞이니 구타 질을 멈출 것이라는 계산이었는데, 상당히 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번뿐, 영리한 꾀도 막무가내인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년이 어디서 소리 지르나!"
아버지는 악을 쓰는 나를 획 발밑에 넣고 목을 밟아 소리를 죽인 다음 다시 엄마를 때리곤 하였다. 언젠가는 2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던져지기도 했고, 모녀가 다 쫓겨나서 계단 밑에서 가마니를 깔고 엄마랑 밤을 지새우기가 일쑤였다.

사과나 수박을 팔러 갈 때에는 양은 대야에 가득 담아서 나한테 이고 앞장서게 하였다. 몸도 빼빼한 어린 것이 목이 부러질 것 같아 움찔하는 바람에 내용물이 다 쏟아지면 또 한참 동안 맞았다. 이래저래 매 맞을 일이 그렇게 많았다.

원래 난폭한 분이었던지, 하루도 그냥 자는 날이 없어서 밤만 되면 우리 모녀는 다가올 공포에 벌벌 떨었다. 수용소에 사는 이웃사람들마저 우리를 그렇게 불쌍해 했다.

마침내 견디다 못한 엄마가 그 아버지와 8년을 살다가 헤어지기로 하였는데, 여동생을 달라고 해도 주지 않고 부녀가 방을 얻어 따로 나가 살았다. 엄마는 남의 집을 다니면서 청소하고 빨래해주시는 것으로 돈을 벌면서 자식들과 마음만이라도 편히 사시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도 지금 떠올리면 아련한 추억이고, 돌아가신 분의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남은 동생과도 격의 없이 지내면서, 고인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 한다.

큰오빠는 포항에서 부대장 운전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큰올케는 조실부모하고 작은집에 살다가 오빠를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올케는 얼굴에 주근깨가 좀 있었지만 여자답고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시집 오자마자부터 줄곧 몸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올케한테 불만이 많았고 자주 다퉜다.

올케도 우리 집에 불만이 많았다. 특히 내가 땔감을 하기 위해 조개탄이나 나무를 주워 오고 시장에 가서 남이 버린 야채 중에서 성한 것을 주워 오곤 했는데, 그런 걸 굉장히 싫어했다.

“나는 이렇게 안 살아봤어요.”

그러면서 우리 식구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닌데 그런 소리를 하니 그게 나는 싫었다. 의붓아버지하고 산다고 어머니를 무시하고, 시동생·시누이를 무시하는 것도 항상 불만이었다.



	▲ 우리 전가족과 친정식구들이 함께 했다(1974년)

옛날엔 아랫목만 조금 뜨듯했는데, 하루 종일 장사를 하고 들어오시는 엄마에게 아랫목을 양보하면 좋으련만 그러는 일마저 외면했다. 엄마는 차가운 윗목에 앉아 계시는데 자기는 환자라는 핑계로 그냥 누워 있는 거였다. 나는 그런 게 너무 눈에 거슬렸고, 그러다 보니 시누이 노릇을 하게 돼 있었다.

자기는 아프다고 하루 종일 누워 있으면서 밥도 항상 엄마가 해야 했다. 내가 하려고 들면 엄마는 손에 물을 묻히지도 못하게 했다.
“너는 시집가면 하기 싫어도 평생 해야 하니까 지금은 내가 하마.”
그래서 아침에도 저녁에도 부엌살림은 엄마가 다하셨다.

월사금을 낼 무렵이 되면 나는 그걸 오빠한테 타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서 기다린다. 그런 나를 오빠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나간다. 그러면 따라 나가면서 "오빠!" 하고 부른다. 그러면 "으응?' 할 뿐 휑하니 사라져 버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그렇게 서러운지 눈물이 굵은 소낙비보다 더 많이 내렸다.

내게는 오빠가 너무나 무서운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 눈을 한 번 치켜뜨면 그게 무서워서 눈물이 절로 나오고, 밥을 먹다가도 목이 메여 울면 또 그런다고 혼이 났다. 하지만 자기 식구들에게는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남한테는 항상 뼈가 없는 오빠가 싫었다.

큰오빠는 트럭 운전을 하시면서 사고도 잦아 교도소도 가끔 갔었는데 마음이 너무 좋아서, 자기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으면서 출소 후 올 데 갈 데 없는 사람 있으면 우리 단칸방 집에 보내가지고 숙식을 같이하게 하였다.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한 사람도 나중에 보답은 커녕 찾아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오빠는 그렇게 평생을 악의 없이 선하게만 사시는데, 아마도 복은 하늘나라에나 가서 받으시려나 보다.

큰오빠도 잘생겼지만 작은오빠는 마치 탤런트처럼 잘생겼다. 키가 크고 피부가 희고 미남자인데, 새언니도 미모가 뛰어 나서 그야말로 미남미녀가 만났다는 건 우리 작은오빠네 같은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오빠는 운전을 하다가 선학동에 농지를 구입해서 집을 지었다. 그곳에서 농사도 짓고, 본디 짐승 기르는 걸 좋아하여 소·개·토끼·닭 같은 다양한 가축들을 많이 길렀다. 그 바람에 올케가 고생 많았는데, 그런대로 잘 적응하면서 애들 공부시키고 잘살았다. 지금은 3남매가 올곧게 성장하였고 모두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