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친목계의 김옥희 회장님이 제주에 있는 법성사에 부탁하여, 그 곳 보살님으로부터 환자 치료를 한 번 해보겠다는 연락이 왔다. 1%의 가능성만 있으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처지라 내려가 보기로 결정했다. 내 차를 가지고 가기로 하고 승용차에 짐을 실어 먼저 배로 부치고 비행기를 타고 갔다. 그 때부터 남편의 제 2의 투병생활이 시작되었다.
절의 보살님에게 된장을 이용한 민간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배에 거즈를 놓고 뜨겁게 덥힌 된장을 부치는 치료법인데, 며칠 계속하니 복수가 조금 내려가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물리적으로 주사기를 넣어서 뺐고 그렇게 빼고 나면 도로 차곤 했는데 이번에는 좋은 방법 같았다. 그런 다음 지압으로 환자의 뼈 마디마디를 모두 훑어 주었다. 그렇게 하면 암도 깨져서 소변 대변으로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워낙 병이 깊어서 효험을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보름만 일찍 왔다면 내가 어떻게 해볼 텐데…….”
보살님은 자기한테 와서 잘못된 사람이 없었다면서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박 사장님은 공을 들여서 난 사람이라 불자가 되셔야 했어요. 그랬더라면 인연이 닿을 수 있었을 텐데…….”
남편의 귀가 부처님 귀처럼 생겼으니 그도 그럴듯한 말씀이었다.
아침에 절에 가서 몇 시간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집에 오면 병수발하면서 할 일이 무척 많았다. 나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서 시골언니가 제주도로 와서 나를 돕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은 뭐든지 내 손으로 하는 걸 원했다. 자꾸 남편이 압력을 넣어 하는 수 없이 언니도 가시라고 했다. 나는 할 일도 많아서 힘들고 무엇보다도 갑자기 무슨 일을 당할까봐 무서운데…….
남편은 보살님에게 치료를 받고 나서 복수가 빠지니까 죽는다는 생각은 접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지압을 받는 것이 무척 아픈 데도 꾹꾹 잘 참았다.
제주도로 병문안을 온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극구 오지 말라고 했다. 아픈 모습 보이기도 싫고 조금만 있으면 다 나을 거니까 오지 말라며 거절하고 둘이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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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제2의 투병생활을 했던 제주도 별장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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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는 말은 안 했지만 괴로운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거실에 흔들의자를 갖다놓아라, 이불을 깔아놓아라, 소파에도 깔아 놓아라, 안방에도 침대를 사다놓아라, 이층 방에도 침대 사다놓아라, 텔레비전도 갖다놓아라……. 요구사항이 많았다. 다 사다가 해놓으니 여기 가서 누웠다 저기 가서 눕곤 하였다. 아래 위층으로 다니며 제주도 별장 평생 사용할 걸 짧은 그 시간에 다 쓴 셈이었다.
그때 거실에 앉아서 정원을 내다보면, 전지를 해준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꺼칠하게 서 있는 소나무가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혼잣말처럼 되 뇌이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저 나무가 내 신세하고 똑같구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소리 없는 오열을 터뜨렸다. 몸을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억장이 무너졌지만 나보다 더할 남편 본인을 생각하여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에서 치료를 받는데 갑자기 코피가 나기 시작했다. 몸속의 장기들이 기능을 다해 밖으로 터진 것인데, 단순한 코피라고 생각하여 코를 막으니 입으로 흘러나와 눕게 하였다.
“여보, 목으로 자꾸 넘어가.”
집으로 돌아와 찬물과 얼음으로 마사지를 열심히 해 주어도 멎지를 않았다. 다시 절에 가서 피가 멎는 지압을 해주고 얼음으로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화장실도 자주 가고 혈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은 재기에 희망을 보이며 수혈을 받길 원했다. 피를 쏟은 만큼 보충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귀포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았는데, 남편은 나가라 하고 나만 남기더니 빨리 집으로 가시라고 했다.
“환자 분 5일 정도밖에 안 남았어요. 조금 있으면 혼수도 오실 것 같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