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쌍문동 신양제지에 다닐 때 우리는 창동에서 살았다. 그쪽엔 성당이 없어서 도봉성당까지 다녀야 했는데, 논둑길 밭둑길을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일요일 저녁 미사를 꼬박꼬박 다녔다. 큰애를 임신했을 때도 빠지는 적이 없었다.
갈 때는 아직 덜 어두울 때라 둘이서 마냥 걸어갔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사방이 캄캄했다. 지금이야 그 길들이 전부 아파트며 빌딩들이 꽉 들어서서 휘황찬란하지만, 그때는 집들도 별로 많지 않고 나머진 거의 논밭에다가 전력 사정도 워낙 좋지 않아 완전 시골같이 온 사위가 암흑천지였다.
성당을 나와 한적한 곳에 다다르면 남편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내 앞에 앉아 등을 들이밀었다.
"여보, 업히세요."
내가 임신 중이어서 걸음걸이가 불안하니 넘어 질까봐 그렇기도 했지만, 남편은 평소 그렇게 나 업어주기를 즐겨했다.
“안 무거우세요. 2인분인데?”
“무겁기는…… 너무 가벼워서 당신 살 좀 쪄야겠는데요.”
가다 보면 저 멀리 불 켜진 빌딩들이 보였다. 지금이야 5층 정도는 빌딩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때는 2, 3층만 돼도 빌딩이라고 불렀다.
“저런 집에는 누가 살까요?”
“왜요, 부러우세요?”
“그럼요.”
“여보, 걱정 말아요. 내가 이 다음에 돈 벌어서 저런 빌딩 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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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은 기회만 있으면 나를 업어주곤 했다 / 호주여행 때의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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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항상 말을 그렇게 점잖게 했다. 나한테도 반말을 하는 적이 거의 없었다. 어머님은 그런 점이 더 못마땅 하였는지 “너는 얘가 그렇게 이쁘냐?” 는 말씀을 가끔 하시곤 했다. 아무튼, 그 당시의 나는 빌딩을 사준다는 남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순진한 저한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도 마세요. 지금 알량한 월급조차도 어머니 다 갖다드리고 사는데, 언제 집 사고 언제 시동생시누이 다 결혼시키고 저런 걸 사겠어요? 저한테 감언이설하지 말아요.”
“아니예요. 사람이 꿈이 있어야 목표가 생기죠. 나도 꿈은 있답니다.”
그 당시야 남 얘기처럼 들렸기에, 나는 그 말을 믿지는 않았어도 내가 기댈 수 있는 널찍한 등판만큼이나 남편이 듬직했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남편은 눈썰미가 참 좋았다. 그때는 가내수공업이 참 많았는데, 안집의 큰딸 연숙이 처녀가 미아리에 가서 양말에 수놓는 일감을 가져와 각 셋집에 나눠주었다. 전구를 양말에 끼고 수를 놓는 건데, 손재주도 없고 바느질하고는 담을 쌓은 내가 그걸 쉽게 해낼 리가 없었다. 그걸 가지고 아주 실랑이를 벌이니 아줌마들이 찬찬히 가르쳐 주었지만, 내가 그걸 잘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3교대 밤일을 하고 와서 낮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은, 양말을 가지고 씨름 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물었다.
“여보, 그게 그렇게 안 돼요?”
“저는 이게 도대체 이해가 안 돼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해보면 그게 아니고……”
“이리 줘보세요.”
하더니 잠깐 살펴보고는 수를 놓기 시작하는데, 술술 잘 하는 거였다. 남자가 그렇게 수를 잘 놓는 사람은 처음 보았는데, 역시 머리가 좋으니까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시작되어, 남편은 내가 수놓는 일을 참 많이 도와주었다.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창피하니까 방문을 꽁꽁 닫고 수를 놓았는데, 지금에 사 밝히지만 솔직히 처음엔 거의 남편이 다 해주었다는 결 여기서 고백한다.
그렇게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악착같이 일해서 아껴가면서도 무슨 일이든지 한 것은 돈을 많이 모아서 오로지 시어머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어떤 어르신은 항상 알뜰하면서도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사는 부부, 모범 부부라면서 젊은 사람들한테 본받을 게 너무 많다고 감타하실 정도였다. 참 열심히 살던 시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