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제지 다닐 때의 일이었다. 남편이 야근을 하고 아침에 퇴근할 시간이 됐는데도 오지 않아서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자마자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두꺼비집 위에다 국을 올려놨다가 밥을 올려놨다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저 왔어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그러면서 보니 신문으로 얼굴을 가렸다. 깜짝 놀라 치워보니 얼굴이 멍이 들고 부어 있었다.
“여보, 자리 좀 펴주세요.”
걸음걸이도 시원찮아서 얼른 부축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이부자리를 펴서 눕혔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했어요, 당신같이 착한 사람한테?”
“여보, 진정하세요, 제가 얘기할게요.”
남편은 공무과에서 워낙 성실하고 능력이 있어서 동기를 뛰어넘어 고참 선배보다도 직급이 먼저 올라갔다. 그런데 아침에 근무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그 선배가 이리 와봐라 해서 따라갔더니 느닷없이 주먹질에 발길질을 하더라는 것이다.
“너는 이 새끼야, 너무 아부를 잘하는 놈이야”
실력이 아니라 아부를 잘해서 직급이 자기보다 올라간 것이니 나쁜 놈으로서 맞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마구 들고 치는데,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건 못난 사람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그냥 맞고만 있었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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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말 어느날 남편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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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부한테 얘기할까?”
“그렇게 해요, 우리!”
당시 종로구 효자동에서 약국하시는 이모부님이 명예경찰서장으로 계실 때니 말만 하면 그 선배를 당장 경찰서에 잡아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합의를 보고 남편은 일단 잠들었는데, 그동안 나는 수를 놓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남편이 야근을 나가기 위해 눈을 떴을 때 내 생각을 밝혔다.
“여보, 그렇게 하지 맙시다. 그 사람이 그렇게 나온다고 우리도 그렇게 나가면 안 되지 않겠어요? 그 사람도 그 사람 입장이 있을 테니 한 번 기다려 봅시다.”
“그래요? 그럼 당신 말씀대로 한 번 기다려 봅시다.”
“출근은요? 하실 수 있겠어요?”
“그래도 가야죠.”
팅팅 붓고 꺼멓게 멍든 얼굴이 처참했고, 밥을 먹고 힘겹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마음이 아파 오열이 터져 나왔다. 남편을 보내놓고는 마음도 좋지 않고 이 궁리 저 궁리 생각이 많아 밤잠을 설쳤는데, 이튿날 아침에 남편이 와서는 달걀 두 개를 내놓았다. 출근해서는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찾아와 달걀을 주면서 멍을 풀라고 주더라는 거였다
“내가 잘못했네. 욱하는 마음에 그만…….”
“내가 사실 우리 집사람이 참으라고 해서, 상대방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고 해서 참은 겁니다.”
“그랬나? 내가 한 번 찾아뵙고 꼭 인사를 드리고 싶네. 내가 참 잘못했네. 용서해 주게. 정말 미안해.”
그러면서 달걀을 주더라고 했다.
“근데 여보, 이걸 어떻게 하는 거요?”
“글쎄 말예요.”
그 용도를 나도 몰라서 안집 아주머니께 여쭤보고 알 수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달걀이 흔하지도 않은 데다가 고급식품이어서, 하나로만 멍을 풀고 나머지 하나는 남편에게 반찬으로 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