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이 공장장으로 있을 때까지만 해도 하루에 500원씩 일급으로 용돈을 주었다. 식사는 회사에서 해결하니까 왕복 차비 260원에 나머지는 담뱃값이었다. 그 전에는 1만 5천 원씩 월급을 주었는데 후배들과 술 먹고 단번에 날려버려서 주급으로 바꾸고, 그것도 안 되어서 일급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도 남편은 전혀 불평불만이 없었다. 자존심이 상당히 상할 텐데도 언성 한 번 안 높이고 "당신이 판단하는 대로 하겠다" 면서 매일 꼬박꼬박 용돈을 받아 갔다. 그게 남편을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점인데, 물론 내가 그걸 허튼 데 쓰는 사람도 아니고 열심히 사니까 동조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다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월급생활을 할 때와는 달리 사업의 주체로서 손님들을 접대하고 거래처를 다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나는 저축을 하고 돈을 모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여보, 돈이 10억 정도는 있어야 안심이 되겠어요.”
사업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생기면 집이나 사람까지도 남아 있지 않게 되니, 애들 가르치고 먹고살려면 그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가진 게 내 돈예요? 회삿돈이지.”
그랬지만 언젠가는 한꺼번에 5백만 원을 갖다 준 적도 있었다. 우리 부부 사이에 약속한 벌금이었다.
87년도쯤인가, 공장 짓고 나서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아져서 원칙을 정했다. 12시 넘어서 들어오면 벌금 10만원에, 내 의무시간을 넘겼으니 밥은 없다. 1시 넘으면 20만원, 2시 50만원, 4시 넘으면 백만원, 아침에 들어오면 내가 부르는 대로. 그렇게 합의를 보고 자신이 직접 각서까지 썼는데, 언젠가는 술집에서 쓰러져 졸다가 아침 7시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회사로 바로 출근을 시켰는데, 그래도 정신은 있었는지 나가면서 물었다.
“여보, 벌금 얼마나 갖고 올까요?”
“천만 원요.”
“여보, 천만 원은 너무 커요. 돈이 그렇게 없어요. 저기요, 50%만 디스카운트해 주세요.”
“안 됩니다”
“돈이 없어요.”
“안 돼요!”
그렇게 출근을 했는데,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여보, 이리 앉으세요' 하고 나를 앉히더니 봉투를 내밀었다
“여보, 유용하게 쓰세요.”
“네 , 고맙습니다.”
세상 어떤 아내가 이런 남편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 것인가. 아무튼 남편이 항상 늦으니 벌금 수입이 제법 두둑했고, 나는 이것을 차곡차곡 저축하여 회사에 돈이 필요해지면 대출을 해주곤 하였다.
돈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남편은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떠받들고 존중해주었다. 모든 방면에 레이더망을 쳐놓고 있다가 내가 좋아하는 것이 걸렸다 하면 냉큼 체포하여 내 앞에 풀어놓는 것이었다.
나는 가을의 정취가 물씬 나는 코스모스 길을 좋아하는데, 어디출장을 갔다가 그런 곳을 발견하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다음에 꼭 함께 가곤 했다. 거길 가면 내가 소녀처럼 감탄사를 연발한다.
“여보, 저기 저기 좀 봐요! 와, 너무 좋다! 너무 아름다워요!”
남편은 자기가 좋은 것을 보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욱 좋은 것이다.
나한테 남편 같은 사람이 또 나타날 수 있을까? 아마도 천국에나 가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아, 한 번뿐인 인생, 하나뿐이었던 당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