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에서 살 때 민선이를 안고 인천 자유공원으로 나들이 갔다가 신포시장에 가서 초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여보, 오늘은 당신 좋아하는 일식 사드릴게요.”
남편은 그날 호기롭게 돈을 썼는데, 오랜만의 외출에 들뜨고 고마워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냥 따라갔다. 그런데 와사비를 너무 많이 친 건지 5천 원이라는 돈이 너무 아까워서 그랬는지 그만 배탈이 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자유공원에서 내려다보면 큰 집들이 많지만 그때에도 근처에는 부호 집들이 많았다. 너무 크고 으리으리해서 거기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부천에 살 때, 어느날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 아이들 키우고 나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셨으니 내가 선물을 줄게요. 당신 어디서 살고 싶으세요?”
나한테 집을 사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때 남편은 부천에서 남동공단까지 출퇴근하는 데 심한 교통체증 때문에 2시간씩 걸려 애를 먹고 있었다.
“자유공원이요!”
그래서 둘이서 같이 자유공원 근처를 답사해 보았다.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여보, 우리 애들이 아직 학생인데 여기는 애들 다니기에는 너무 우범지역 같아요. 옛날이나 자유공원이지 지금은 한물 갔구요. 여보, 송도가 어떠세요?”
“송도요? 송도는 시골인데…….”
내 기억에 송도는 시골로만 남아 이미지가 별로였다.
“한 번 가보십시다.”
“그래요.”
그래서 남편을 따라 가보았는데, 바다가 보이고 산도 있었고, 회사도 10분 거리에 있으니 너무너무 좋았다.
“여보, 여기 너무 맘에 들어요.”
그렇게 해서 집을 짓기로 하고 땅을 사러 다니는데 남편은 전망이 그런대로 괜찮은 곳에 있는 남향집을 원했다. 그런데 아무리 다녀 봐도 100% 만족할 만한 땅이 찾아지지 않아서, 남서향이고 평수도 적지만 바다도 보이고 뒤에는 산도 있고 그런대로 전망이 좋은 지금의 우리 집 땅을 사게 되었다. 땅값은 실랑이를 벌이지 않고 달라는 대로 주었다. 어차피 우리 것을 만들려면 기분 좋게 사야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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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살고 있는 송도의 우리 집 / 남편이 나를 위해 지은 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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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윗집에 사시는 분은 건축업자로서 우리 땅의 주인이었는데, 집을 하나 더 지어서 팔려다가 경기가 좋지 않으니 땅을 판 것이다. 그런데 도면을 필요하면 쓰라고 주어서 우리 집 구조가 윗집하고 똑같은데, 자재만 따로 써서 지었다.
지대가 높다 보니 파일을 박고 옹벽을 치는 바람에 오래 걸렸고, 자재도 좋은 걸로 써서 한 평에 보통 130만원이면 되는데 세 배를 들여 견고하게 지었다.
그때는 노인대학 봉사활동하면서 바쁠 때인데, 그래도 거의 매일 전철과 버스를 바꿔 타고 와서는 집짓는 것을 보고 갔다. 공사 중에 옆집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등 문제를 만들지 않고 무려 9개월 걸려서 지어, 아까운 부천 집을 전세를 놓고 1995년 4월 10일에 이사를 했다. 남편의 노래방 18번이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 인데, 일편단심으로 집을 지어 나에게 헌정한 것이다.
그렇게 꿈에서 그리던 집을 우리는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만들었다. 아침에 내가 잠에서 깨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남편은 금세 알아차리고 아침인사를 던진다.
"여보, 잘 잤어요?”
같이 옆에서 잤으면서도 꼭 인사를 하는 것이다.
"꿈자리가 사나워서 잘 못 잤어요."
“저런, 어떡하죠?”
그렇게 항상 배려하고 염려해 준다.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 5시, 나는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항상 감탄해 마지않는다.
“여보, 이 세상에 당신 같은 분은 안 계실 거예요. 어떻게 하루도 안 빼놓고 사람이 그렇게 오뚝이처럼 할 수가 있어요?”
그런 다음 씻고 나서 출근 준비를 한다. 내가 와이셔츠만 챙겨놓으면 자신이 넥타이까지 챙겨 입는다. 그리고 식탁에 앉기 전에 나한테 다가온다. 이쪽 뺨 저쪽 뺨에 뽀뽀를 하고 이쪽 귀 저쪽 귀에 대고 속삭인다.
"여보, 사랑해요."
